[PRESS] 고통의 응시, 서로의 응시 - 고통 구경하는 사회

글 입력 2023.11.0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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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지 못했던 삶에 대해 묘사할 때면 내가 가진 말의 가벼움을 새삼스레 알아차린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담고 싶을 땐 불안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언어는 결국 대상을 재현하는 데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예상.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 대해 말하는 지금이 그렇다. 이 작은 종이 꾸러미 안에 담긴 풍부한 이야기는 가능한 한 많은 이들에게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먼저 한계를 고백하는 것은 이 책을 대하는 내 최선의 태도다. 겸손한 마음으로 사담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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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는 저널리스트 김인정이 바라본 뉴스와 세상의 여러 단면을 담고 있다. 응시한 세월이 두터워짐에 따라 늘어난 윤리와 상생에 관한 딜레마도 함께 묻어 있다. 김인정은 무엇보다 응시하는 자고, 바라본 대상을 묘사하기에 가장 적절한 재료가 무엇일지 고민하여 가공하는 자다. 그 모든 고민의 총체로서 나온 뉴스를 접했을 때야 독자는 비로소 그녀가 바라본 대상을 응시한다. 


시선 대물림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기자의 고민은 그래서 중요하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우리’라는 공동체가 무엇을 바라볼지 설정하고, 어떻게 해석할지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사회 안의 어떤 존재를 인식하고 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일련의 고민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대중에게 뉴스는 평면으로 다가온다. 짧은 송출 기간, 극적인 편집방식, 천편일률적인 구성. 대상과 사건은 저마다 다른 형상을 가질 수밖에 없음에도 그것들이 뉴스라는 결과물로 태어날 땐 비슷한 행색을 띠게 된다. 그에 따라 수용자 역시 범람하는 사건들을 동일한 프로세스로 처리한다. 


김인정은 가공된 뉴스 이전, 보다 원초적인 모양의 사건을 소개한다. 뉴스 이전의 사건을 저마다의 입체적인 모양으로 바라봤을 때 어떤 새로운 단면을 발견할 수 있는가. 보다 가까이서 바라본 그녀의 시선엔 수많은 모순과 회의와 신기루 같은 희망이 담겨있는 듯하다. 그 산발적인 사념들을 하나로 엮는 실은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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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거리, 그중에서도 많은 관심을 끄는 소재는 당연 ‘고통’이다. 뉴스를 본다는 것은 곧 누군가의 고통을 접한다는 것과 같다.

 

김인정은 고통이 관성적이고 피상적으로 처리되는 흐름에 의문을 제기하는데, 논의는 고통을 향한 관심을 ‘목격’과 ‘구경’으로 분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대상을 가치중립적으로 바라보는 눈’과 ‘흥밋거리로 바라보는 눈.’ 수많은 고통을 쉽게 마주치고 바로 잊고 살 수 있는 이 시대에서 우리의 눈은 점점 고통을 오락으로 소비하는 구경꾼의 눈이 되어 간다.


뉴스 이전의 사건을 응시하는 그녀는 고통의 목격이 무책임하고 쉬이 이뤄져서는 안 되는 것임을 분명히 말한다. 이 고통을 적절히 응시하는 눈과 태도야말로 폭력과 단절이 난무하는 시대의 공백을 채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그녀가 목격한 고통의 모습은 구체적이다. 뉴스라는 형식에선 삭제되었던 고통들의 형상. 

 

이태원 참사, 기후 위기의 불공평함, 서울과 비非서울, 서울 뉴스와 지역뉴스 사이의 권력관계, 산업재해, 세월호, 5.18 민주화 운동, 환경미화원, 가난한 사람의 기부, 미국 내 아시아계 증오 범죄, 홍콩 시위, 젠더 갈등, 텐더로인의 마약 거리. 

 

그들을 완벽히 바라보고 묘사하고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라지만, 오래도록 구체적 형상을 바라본 김인정은 완벽한 응시와 묘사는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고통의 재현이란 사실 전달과 적극적 조명, 착취와 대상화라는 상이한 평가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추를 따라다니는 일과도 같”음을, 매 순간의 실패를 증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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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김인정은 고통의 곁에서 계속 질문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걸 보면서도, 인간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게 가능할까? 우리가 절망하지 않는 게 가능할까? 우리는, 지치지 않을 수 있을까?” 


“뉴스는 약자를 슬쩍 도구로 삼아 섣부른 계몽을 하며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고자 하는 걸까?” 


“우리는 어떤 고통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하고 응시를 참아내야 하는가? 고통을 얼마나 보여주고, 또 가려야 하는가?” 


“내가 맡고 있는 취재 영역을 넘어선 기이한 책임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인종과 언어, 계급을 모두 뛰어넘어 누군가의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

 

턱 막히는 중압감을 주는 질문들은 우리가 책임감 있게 느끼고 해결해야 했던 고민과 고통의 크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 앞에선 관성적인 사고의 흐름을 멈추게 된다. 이 정지는 소중하다. 멈춤 없는 사고는 마치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 차창 너머로 0.1초의 잔상을 남기며 사라지는 풍경을 즐기는 것과 같을 테니까. 어쩌면 이것이 지금껏 우리가 세상과 고통을 바라보는 방식일지도 모르니까.

 

김인정은 고통을 적절히 바라보기 위해 수많은 질문을 주고받으며 함께 고민하자고 초대한다. 흔들리고 부족할 수밖에 없는 자기와 타자의 시선을 용인하면서 더 먼 곳을 바라보자고 격려한다. 같이 목도한 고통을 구경거리로만 소비하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의 정치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외친다. 

 

공동체의 감각을 인지하고 사회적인 대화를 해야 한다고. 본 뒤에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설령 죄책감과 무력감과 자만심 앞에 실패하더라도 응시와 대화를 멈추면 안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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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으로 불순한 결과를 맞이할 것이란 걸 알면서도 그녀가 이 일을 지속하는 이유는, 타자의 고통을 응시하지 않았을 때 필연적으로 붕괴될 세상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숱한 모순과 고민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일만큼은 멈춰선 안 된다는 사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변화라는 건, 개인들의 자유로운 반응 속에서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화학작용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발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말처럼, 뚜렷한 목적과 의미가 없어 보이는 수고스러운 고민과 행동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김인정의 흔들림은 그 잠재력이 분명 우리 안에 있을 것이란 묘한 낙관을 준다.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상하리만치 연결되어 있음을 망각하지 않는다면. 그런 무모한 믿음이 결국은 어딘가, 기왕이면 빛이 드리운 어딘가로 우리를 이끈다는 걸 믿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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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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