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가 몰랐던 뷔페의 모든 것 - 베르나르 뷔페展

글 입력 2019.07.0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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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뷔페의 작품세계는 내 예상보다 더 풍부하고 다양했다. 어두운 우울부터 화려함, 정물화부터 풍경화와 인물화까지.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어 다만 '뷔페'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밖에 없는 그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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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뷔페展>에서는 뷔페의 초창기부터 말기까지의 다양한 작품을 시기별로 전시하고 있다. 먼저 그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초기의 정물화, 즉 날카롭고 딱딱하고 어두운 단색의 그림들이 단연 눈에 돋보였다. 전시 동선 상으로도 가장 먼저 만나게 되거니와, 익숙하면서도 강렬한 작품이었다.



#초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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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테이블 위에 놓인 과일 하나, 꽃 한송이일 뿐인데 세상의 모든 우울을 삼킨 것 같았다. 메마른 사물만큼이나 사람들의 모습도 생기 없긴 마찬가지다. 인물들은 평면적이다 못해 껍데기만 남은, 죽은 사람처럼 보인다.

작품의 제목은 대개 (대강 떠올리자면) '생선 가게', '소녀', '꽃병' 등 그림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옮겨놓은 것들이었는데, 제목에서 우리가 연상하는 이미지와 실제 그림은 전혀 딴판이다. 예컨대 '생선 가게'라 하면 쉽게 신선한 생선과 장사를 하는 주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뷔페의 그림에서 생선은 신선은 커녕 썩은내가 진동할 것 같고, 가게 주인은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굳어 있다. 그림 하나하나, 파격적인 표현과 그로테스크함에 놀라게 된다.

단지 '보이는 것'을 그릴 뿐이라고 했던 작가의 말대로, 그림은 뷔페가 주변 사물을 보았던 시선 그 자체일 것이다. 중요한 점은 그 시선이 사회를 보는 당대의 시선을 대변했다는 점일 테다. 시대의 감정을 그림이라는 언어로 날카롭게 묘사했던 것이다.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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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라운 점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작품의 다양한 변화에 있었다. 굵고 날카로운 직선, 평면성과 같은 특징은 그대로였지만 작품의 주제와 세부적인 표현은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국가들의 랜드마크, 아내 아나벨,  그의 자동차 등 특정 주제가 돋보이는 그림도 있었고, 호전적인 색을 사용한 <미친 사람들> 연작과 같이 표현이 눈을 사로잡는 그림도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작품의 변화를 두고 당대 사람들은 '변절했다'며 비난을 쏟아냈다고 한다. 데뷔와 동시에 큰 주목을 받으며 성공하자 시대의 아픔에는 등을 돌렸다고 말이다. 그러나 몇십년에 걸친 그의 작품을 돌아보면 변화는 필연적인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자체가 그의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대한 양의 그림을 통해 그 시기에 뷔페가 어떤 대상에 몰두했는지, 어떤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봤는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변화와 함께 작품의 일관성을 발견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미친 사람들>과 같은 화려한 작품에서는 표현과 대상을 달리할 뿐, 삶의 공허함을 포착하는 시선이 여전했다. 과장된 '껍데기'가 오히려 그 속의 공허함을 처참하게 강조했던 것이다.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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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어떤 작품에서는 초기의 그로테스크함이 더 극화되는 반면, 후기 광대 연작에서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우스꽝스러운 겉모습과 대조되는 우울한 표정, 거친 표현 등 '뷔페스러움'은 여전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전작에서 느끼지 못했던 '밝음'이 느껴진 것이다. 단순히 색상이 밝아졌다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가 그렇다는 뜻이다.

말년에 병을 앓았던 뷔페는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있었고, 병중에도 끝까지 그림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를 두고 아나벨은 "편안하게 미소짓고 있었다"고 했다. 죽음이 다가옴을 받아들인 채 삶, 그림에 대한 의지를 이어가려 했던 그의 모습이 어쩌면 작품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대는 슬픔과 기쁨의 이중적인 이미지를 지닌다. 광대의 웃음이 어쩐지 슬픈 이유는 겉치장에 가려진 '진짜 인간'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 슬픔이 '비극'으로까지 치닫지 않는 이유는, 부조리한 삶에서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뷔페는 특유의 시선으로 인간 삶의 이런 이중성을 포착하고, 또 스스로 느꼈던 것이 아닐까. 광대를 그리며 위안을 얻었을 뷔페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해본다.




[박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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