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탈완벽주의 선언 [문화전반]

효율을 고민하는 창작자라면 누구든,
글 입력 2019.05.29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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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풋을 내느라 고된 하루를 보낸 어떤 크리에이터에게, 일말의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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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창작의 고통을 제외하고서 라도, 어떤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혹은 좀 더 폭넓게 어떤 콘텐츠를 제작할 때 썩 효율이 좋지 못함을 비교적 최근 느꼈다. 속도가 안 난다고 느낀 빈도는 더 많아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흔히들 어떤 일에 능숙해지면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진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나는 그 경력이 쌓일수록 뜻밖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이었다. 안목이나 보는 눈이 생겨서 그런 것일까. 그래서 자꾸만 고쳐야 할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일까.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그것보단 좀 더 궁극적으로 효율이 떨어진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다 문득 스쳐 지나가는 말, 완벽주의.


작업에 있어, 혹은 태도에서 주변에서 종종 나를 두고 완벽주의라고 말하는 걸 들을 테면 난 늘 부정하곤 했다. 나는 구멍이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덧붙여가면서. 하지만 꽤 최근에서야 인정했다. 내가 완벽주의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효율에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것도.




1. 뭐라도 하면 되는데 내가 정한 기준치에 한해, 완벽하지 않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디자인 과를 다니며 수업과제를 낼 때, 내가 생각했던 퀄리티가 나오지 않으면 아예 내지 않아버렸다. 비록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적당히 구색을 갖춰 내도 됐을 텐데 그러지 않았던 것은, 어중간한게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제를 대충이라도 해서 내는 사람은 아예 내지 않겠다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또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역시 그때부터 진즉 깨달아야 했었다. 내가 완벽해지길 바랐다는 것을.




2. 어떤 콘텐츠의 주제를 선정할 때에도 자꾸만 더 나은 걸 찾느라 시간을 할애했다.



모든 콘텐츠엔 주제가 있기 마련이고, 설령 주제가 없다 치더라도 소재 자체는 존재한다. 나는 소재나 주제를 정할 때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몇 가지 떠오른 것들은 분명 있음에도, 더 나은 게 있을 거란 여지를 두고 유보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코앞에 온 데드라인에 판단력이 흐려져 산으로 갈 때도 있었다.




3. 완벽주의이자 욕심쟁이였다.



작업이나 프로젝트를 하면서 내가 바랐던 건 기승 전 하이퀄리티였다. 수많은 중간과정은 생략한 채로 말이다. 예를 들면 프로들의 엄청난 아웃풋을 보며 목표를 잡다 보니 하이퀄리티가 아니면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했다. 그러니 당연히 퀄리티를 내기 위해 수정을 거듭했고 그런 나를 두고 누군가는 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특성은 나를 더 오래 일하게 하고, 더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있게 했다. 분명 다른 방향으로 퀄리티를 내는 길도 존재할 텐데.




4. 주변 사람들이 왜 작업물을 보여주지 않느냐고 물어본다.



그럼 나는 대답한다. 내가 만족스럽지 못해서라고. 작업을 안 해서 보여줄 게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내 작업들을, 내 자식들을 꼭꼭 숨겼다. 일, 외주, 이 외에도 어떤 형태로든 타인이 얽혀있는, 그래서 좋든 싫든 꼭 꺼내 보여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면 안 꺼내려고 했다.


종종 개인 작업이 해당되는데, 내 작업을 누구보다도 객관화해서 뜯어보니 여간해서는 만족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허점이 보이는 작업들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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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이유를 들며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어지간히도 팍팍한 인간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잘 만족하는 법이 없고 눈이 높으니까. 또, 완벽주의자의 탈을 쓴, 그냥 실패하기 싫어하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사람이야말로, 대충이라도 좋으니 빨리 완성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젠, 탈완벽주의 선언을 해본다. 시간과 그 이외의 모든 자원을 적절히 사용하며 효율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그래서 완벽함의 그늘에 가려 놓쳐버린 기회를 붙잡기 위해.


언젠간 나도 연비가 좋은 차처럼 효율적인 창작자가 될 수 있길 바라며.



열심히 생각하고 보고하기까지 시간을 길게 확보해도 결국 아웃풋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바로’ 아웃풋을 하라고 요구한다. 아웃풋이 있으면 데이터나 다른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받을 수있는 기회가 는다. 그런 조언들을 더하면 ‘좋은 기획’이 생긴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은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생각에 특히 상사에게 ‘인정받고 싶어’ 혼자서 좋은 기회를 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좋은 기획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각하면 완전히 시간 낭비일 뿐. 기획의 질은 모두에게 받은 정보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에 비례한다.


자신의 데이터나 자신의 프로그램 따윈 특별할 게 없다고 겸손함을 가질 것. 그래서 마스다는 항상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종이에 써서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다.


이것을 계속 했더니 머릿속 생각을 종이에 쓰는 것도, 이야기하는 것도, 파워포인트를 만드는 것도, 어느새 능숙해진 것 같다.


-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서점 츠타야의 창업자, 마스다 무네아키의 책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중에서

 


*


추가로,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에 나와 같이, 작업하다가 효율을 고민하는 이가 있다면, 환기도 할 겸 아래의 영상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Procrastinators.> from Nas Alhusain on Vimeo.



짧은 모션 영상 콘텐츠인 이 작품은 Vimeo에서 Staff Pick에 선정된 작품으로, 일을 미루는 사람, Procrastinatiors의 유형에 대해 감각적인 그래픽을 더해 재치있게 풀어낸 작품이다. 혹시 이 중 내가 몇 가지나 해당하는지 잠깐의 자아 성찰을 해보는 건 어떨까.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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