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잔류하는 것들은 모두 비 너머에 [도서/문학]

글 입력 2023.12.0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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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잔재가 꿈의 형성 과정에 참여하게 되면 무의식에서 억압된 소망이 가동시킬 수 있는 원동력을 빌려올 뿐만 아니라, 전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무의식에 제공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 Sigmund Freud의 주장을 토대로 말해보자면, 우리가 꾸는 꿈은 현실에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형성된다. 일상에서 영위했던 것들이 다양한 꿈을 ‘형상(eidos)’하기 위한 ‘질료(hýlē)’로서 꿈 형성 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양경언 문학평론가는 신용목 시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마치 이런저런 질료들을 끓여냄으로써 순수한 결정체를 얻고자 하는 연금술처럼 시는 어떤 이들이 ‘그저 그런 것’으로 여기면서 지나칠 풍경에 담긴 순수한 가능성을 건져내는 일에 열심이다.” 즉, 무의식의 공간에는 삶을 구성하고 지나쳤던 사소한 것들이 잔류하고 있다. 이러한 꿈은 현실과 굉장히 긴밀하게 작용하는데, 신용목의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 속 꿈과 현실의 세계는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변주한다.

 

 

 

꿈과 현실은 창 하나를 두고


 


너무 늦게까지 자지는 마

어둠은

꿈이 현실 속으로 잠입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국경수비대 같은 것인데,

잠든 채 아침이 오면

위험해

 

- 「오르골」 일부 발췌

 

 

다시 날아오를 수 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누가 나를 깨웠다.


(…)


눈사람.

그는 구름의 종족이지만, 언제나 바닥에서 태어난다. 언제나 몸부터 태어난다.

드디어, 머리를 굴리려는데

누가 나를 깨웠다. 나는 깨어 있었는데.


(…)


정오의 태양, 불길을 흉내내며 일렁이는 여름 바다에서


누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쳐다보면,


내 어깨를 짚고 내가 서 있었다. 막 깨어난 내가 나를 깨웠던 나를 알아보고는,

인사를 했다.

고맙다고 말하고 잘 가, 라고 말했다.


아주 짧고 슬픈 인사였다.

 

- 「나를 깨우고 갔다」 일부 발췌

 

 

우리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 창가에 앉아 매운탕을 먹고 있는데, 다시는 여기 오지 말자

(…)


이제 여기서,

우리는 바다가 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마음까지 잊어먹을 지경인데


(…)

갑자기 환하게 밝아지는 창문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바다……


(…)


돌아왔다

17층


이 집은 남동향이다


내가 여기서 매일 쓰러지는 이유, 꿈을 말리던 기억으로 엇갈리게 눕던 우리의 시간처럼

검은 블라인드 사이로 햇살이 들어와


내 몸에서

청어의 뼈를 발라낸다

 

- 「헤링본」 일부 발췌

 

 

시인은 ‘꿈’을 시집 전반적으로 배치하며 마치 자각몽을 꾸는 듯한 신비의 체험을 선사한다. 이 시집의 첫 번째 시 「오르골」에서의 화자는 ‘잠든 채’ 오는 ‘아침’을 두려워한다. 아침은 꿈을 꾸는 밤에서 일상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깨어나야 하는 ‘현실’의 순간이다. 이를 통해 시집 전반적으로 ‘밤’이 오고 ‘어둠’이 깃들면 화자가 존재하는 곳은 꿈이고, 아침이 드리우면 현실로 되돌아왔음을 느끼게 된다.


어둠은 이러한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게 하는 ‘국경수비대’ 혹은 문지기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어둠이 가고 현실이라는 아침이 찾아왔을 때 여전히 잠든 채라면 화자는 그건 위험하다며 너무 늦게까지 자지는 말라는 조금 다정한 조언을 남긴다. 그래서인지 「나를 깨우고 갔다」에서는 누군가가 자꾸만 ‘나’를 깨운다. ‘다시 날아오를 수 있’게 할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순간과 온전한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굴리려’는 순간, ‘불길을 흉내내며 일렁이는 여름 바다’를 보려는 순간에 자꾸만 ‘나’를 깨워 행동을 멈추게 한다.

 

이러한 순간에 ‘나’를 깨운 이는 모두 ‘나’였다. 그리고 화자는 자신을 깨운 ‘나’를 향해 고맙다며 잘 가라고 인사한다. 그런 다음 화자를 깨운 ‘나’는 지나간다. 이를 시인이 사용한 표현을 빌려와 ‘흘러간다’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밤 악몽의 출연자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슬쩍 들춰보는 검은 커튼처럼

 

- 「아무도 없을 때」 일부 발췌

 

 

아직 꿈은 시작되지 않았는데

누군가 커튼 뒤에서


커튼을 움켜쥐었다 놓는 것 같다

 

- 「이 세계」 일부 발췌


 

밤의 창가에서는 허공과 사람이 하나의 창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다인실 다인꿈」 일부 발췌

 


‘꿈’은 커튼 뒤에서 ‘허공’처럼 자신의 존재를 수없이 화자에게 타전한다. 창 하나를 기점으로 이 꿈은 ‘순서를 기다리며’ 차례대로 밀려 들어오는 커튼 너머의 배우이자 ‘악몽’이기도 하지만, ‘다시 날아오를 수’ 있게 할 ‘바람’이 불기도 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이처럼 꿈의 세계는 계속해서 화자를 유혹한다. 프로이트의 꿈에 대한 이론에 따르면 “꿈의 목적은 소망 충족에 있다”라고 한다. 꿈은 “자극이 깨어 있는 동안 겪는 생활의 잔재에서 비롯”되며 “또 꿈에 필요한 원동력을 어떤 소망이 제공한다”라는 것을 미루어 보았을 때, 이 시집에 등장하는 꿈은 시인이 갈망하고 상실한 대상들의 집합체가 된다.


다시 「나를 깨우고 갔다」로 돌아와서, 화자는 왜 ‘소망 충족’을 위해 발현된 꿈속에서 자신을 깨운 대상에게 고맙다고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첫 번째로 수록된 시 「오르골」에서의 조언을 바탕으로 생각하였을 때 위와 같은 꿈의 순간들은 꿈속에 머무르게 하려는 ‘밤’의 계략처럼 보인다. 화자는 ‘흠뻑 젖은 꿈’에서 깨어나면 ‘소주를 사왔던 봉지가 찢긴 채 구석에 버려져'(「유령비」 中)있는 공간으로, 또 ‘바다가 보이지 않는 창가에 앉아 매운탕’을 끓여 먹다가 환한 아침이 되자 ‘검은 블라인드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는 아무도 없는 ‘17층’의 빈방으로 회귀한다(‘17층’은 헤링본 무늬의 바닥이 있는 방이자 화자가 현실에서 귀속되어 있는 공간이다).


이처럼 꿈의 여정의 끝은 다시 현실을 마주하는 아침이다. 깨우고 지나가고 또다시 깨우고 흘러가는 반복.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화자의 삶은 일상의 되풀이다. 꿈은 ‘흠뻑 젖’기 마련이고, 현실에서 화자는 ‘희망에 찔린 영혼’(「수중 도시」 中)이라는 것을 알기에 꿈에서 젖어 녹아내리지 않도록 자신을 계속해서 깨운다.


이렇듯 화자의 현실은 쓸쓸하고 외로운 상황이다. “심심함은 외부로 펼치고 싶은 마음이라면, 외로움은 내부로 펼쳐지는 마음”이라는 시인의 말에 기인하여, 우리는 이 시집에서 내부로 펼쳐지는 ‘슬픔’의 세계를 살펴볼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이 시집은 ‘매일매일 같은 물속으로 더 무거운 추를 달고 뛰어드는 것처럼, 매일매일 더 무거운 인생이 뛰어드는 몸’(「종례」 中)을 가진 채 살아가는 우리에 관한 이야기다.

 

 


분열되었지만 결국 하나인


 


돌 속에는 돌이 있고 그 속엔 또 돌이 있다는 이야기 같다 중얼거리는 것이 꼭 누군가에게 속삭이는 일 같다, 속삭이는 일이 돌에게서 돌을 벗겨주고 물에게서 물을 말려주는 일인 것 같다

 

- 「오르골」 일부 발췌

 


「오르골」에서 화자는 ‘돌 속에는 돌이 있고 그 속엔 또 돌이 있다는 이야기’를 중얼거리며 겹겹이 쌓인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위의 말은 흔히 아이들 장난에 이용되는 ‘상자를 열었더니 작은 크기의 상자가 나오고 그 상자를 열었더니 또 그것보다 작은 상자가 있다’라는 이야기 같다. 마치 마트료시카나 나무의 나이테를 연상케 하기도 하는 이러한 적층 구조는 앞으로 펼쳐질 시 속 분열의 세계를 암시한다.


 

내 필통 속에 삼색볼펜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가방 속에 필통이 있고 필통 속에 여러 개 볼펜이 있다는 것과

하나의 볼펜 속에 세 개의 심이 있다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


(…)


세 개의 눈동자를 갈아끼우는 소리가 들린다

 

- 「삼색볼펜」 일부 발췌

 

 

내 꿈속에는 철로의 길이만큼 긴 기차가 있다, 타자마자 도착하는 기차

아침마다

꿈속에서 뛰어내린 몸으로 하루하루 외국어를 배우듯 어른이 되었지만


저녁은 오래전 세 명의 아이로 기차에 올랐다가 혼자 내리는 날들의 연속,


(…)


또 한 명은 내 몸의 바닥을 따라 그리며 자꾸 상한 것들을 토해놓는다


(…)


그림자는 상한 몸에서 흘러나온 저녁이라서


칸과 칸 사이를 건넌다

밤이 와,


한 사람에게서 떨어진 그림자가 그 사람을 싸고 또 한 사람을, 돌돌 어둠으로 말아

가장 먼 곳의 제자리로 옮겨놓는다


그 자리에


아직도 쪼그려앉아

나머지 한 명이 울고 있다

 

- 「그림자역」 일부 발췌

 


「삼색볼펜」은 위 「오르골」과 비슷한 적층 구조를 보이고 있다. ‘내 가방 속에 필통이 있고’ 또 그 필통 속에는 여러 개의 볼펜이 있고, 또 그중 ‘하나의 볼펜 속에’는 ‘세 개의 심이’ 들어있다. 이 3이라는 숫자는 이 시집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내 꿈속에는 아무도 살지 않'고 '누구도 제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무턱대고 걸어나온」 中)라는 말은 화자가 제 안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했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쓸쓸한 자의식은 곧 화자의 분열로 이어진다.

 

「그림자역」에서 등장하는 ‘세 명의 아이’는 모두 화자이다. 화자는 ‘세 명의 아이’로 ‘기차에 올랐다가 혼자 내리는’ 삶의 연속을 산다. 한 아이는 ‘꿈속에서 뛰어내린’ 뒤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 어른이 되어 갔고, 한 아이는 ‘상한 것들을 토해놓’은 ‘그림자’가 되었고, 마지막 한 아이는 ‘아직도 쪼그려 앉아’ ‘울고 있’다.


‘한 사람을 여러 칸으로 나눠담고’(「책」 中) 있는 화자는 그 ‘칸과 칸 사이를’ 건너거나 ‘세 개의 눈동자를 갈아끼우는’ 본체이자 세 아이 중 어른이 된 맨 처음의 아이일 것이다. 그림자는 상한 것을 쏟아부어 둔 어두운 면이고, 울고 있는 아이는 시집에서 수시로 '슬픔'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수록된 시 중 「미래」에서는 '슬픔'을 가진 이는 ‘물에 담가둔 고깃덩이’처럼 ‘아무리 온도를 낮춰놓아도’ 서서히 ‘조금씩 상해’ 간다. 상한 걸 토해내는 그림자처럼 말이다. 이 또한 세 아이의 존재를 암시한다.


화자는 이러한 분열된 두 명의 자신을 보듬고, 또 애틋한 시선을 내비친다. 어쩌다가 ‘잠의 창문을 열고 들여다보며 내 속의 아이들을 부른다, 밥 먹고 울어야지’(「대부분의 나」 中) 하기도 하고, ‘물속에서도 젖지 않던 그림자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며’ ‘기꺼이 눈 하나를 뽑아 그림자에게 건네주고’(「밤과 단 하나의 그림자」 中) 싶어 한다. 결국 ‘세 개의 심’은 ‘하나의 볼펜’이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 같아도



 

창문 너머로 비가 떨어져 죽고 있다


물이 되고 있다

 

- 「유령 상자」 일부 발췌

 

 

이곳의 비가 저곳의 눈인 것처럼, 구름이라고 하면 물은 하늘에서 사라진다.

비라고 하면 물은 빗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눈이라고 하면 비는 겨울 속으로


사라지고,

다른 곳으로 가면 다른 곳은 사라지겠지.

 

- 「슈게이징」 일부 발췌

 

 

지금 여기서 사라지는 것이 있다 물 끓는 소리에서 피어나는 물방울처럼

 

- 「생활사」 일부 발췌

 


우리의 삶은 ‘물’을 끓이고 ‘물방울’처럼 ‘사라지는 것’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 물은 하나의 질료가 되어 시집 안에서 여러 형상으로 나타난다. 시집 전반에서는 물을 끓이자 수증기가 되고, 그것들이 쌓여 구름이 되고, 이내 비가 되면서 다시 수직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 비는 바닥으로 떨어져 물이 된다. 이러한 시 속 물의 순환 구조는 물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를 시집 전체로 확장했을 때, 시에서 사라졌다고 언급한 것들은 실제로 사라진 것이 아니게 된다.


 

머리에서부터 조금씩 투명해지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기다린다


그때


신호등이 바뀌고 야 벌써 시월이야! 앞질러 뛰어가는 소년의 목소리가


(…)


괜찮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건너편을 가지고 있으니까

간다


그때


기린의 무리 속에서 투명한 눈망울 하나가 천천히 목을 비틀어


나를 바라보았다

 

- 「모든 우산은 비의 것」 일부 발췌

 


시인의 인터뷰 중 이런 말이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모두 비 맞을 운명이다. 그 비가 무엇이든 간에… 사랑과 이별과 죽음과 운명을 빌려 쓰는 모든 것들이 비처럼 내릴 테고, 우리는 젖을 것이다. 슬픔과 고통 같은 것에…. 그때, 비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투명한 눈망울 하나를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 장 7부의 유일한 시이자 가장 마지막으로 수록된 시 「모든 우산은 비의 것」에 사람들은 화자와 같이 ‘모두 같은 건너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비의 건너편에는 ‘투명한 눈망울’이 있다. “정신적으로 일단 받아들인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힐데브란트의 주장처럼, 그리고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낮의 잔재’처럼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은 물이 되어 ‘투명’하게 ‘비 너머에서’ 잔류한다.

 

슬프지만 담담하게 흘러가 보도록 하자. 당신이 비에 도착했을 때는 제시간일 테니, 그 너머에는 사라졌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잔류하며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슬픔에 젖고 고통스러워 자신이 분열되는 것처럼 느껴져도, 그러한 우리는 사라지지 않고 물처럼 순환하며 이 세계에 존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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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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