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광석의 두 노래 [음악]

어느 예술가의 위대한 몰락
글 입력 2024.01.2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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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위대한 문화적(혹은 문학적) 발명품이다. ‘음악’이 아닌 ‘노래’를 특정한 것은 그것이 포괄적 문화의 영역에서 특정한 문학의 영역으로, 조금 더 세밀하게 진입하기 때문이다. 음악에 노랫말을 입혀 부르는 가창 행위로 인해 음악은 느끼는 것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감상하는 것에서 실행하는 것으로 변한다. 음악은 가사와 가수(목소리)를 통하여 듣는 이의 삶에 한결 직접적으로 파고든다는 말이다. 음악에 삶을 내밀하게 끼어 넣을 때 노래는 위대해진다.

위대한 노래는 분명 여럿이지만 나에게 직접 파고드는 어느 하나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발견되는 순간은 그야말로 문득인데, 지하철을 기다리며 평소와 같이 듣던 노래가 짯짯하고 선명한 번뜩임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 그런 순간 우리는 익숙한 노래에서 위대함을 느낀다. 알고리즘이 인도한 플레이리스트에 잇달아 나온 두 곡에서 연달아 위대함이 발견되는 순간이라면, 그 노래들을 부른 가수는 또 한 번 위대해진다.

가수 김광석의 노래 두 곡을 듣는다.
 
 
느낀 그대로를 말하고
생각한 그 길로만 움직이며
그 누가 뭐라 해도 돌아보지 않으며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가려 했지
그리 길지 않은 나의 인생을
혼자 남겨진 거라 생각하며
누군가 손 내밀며 함께 가자 하여도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고집했지
 
 
스스로 엄청난 외골수이자 고집쟁이임을 고백하는 당신이 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우직하게 걸어갔던 당신은 약간은 자랑스러운 어조로 자신을 소개하는데(실제로 김광석은 이 부분을 덤덤한 듯 당당하게 부른다), 당신은 아마도 “느낀 그대로를 말하”는 일, 즉 예술의 일을 하는 사람일 테다. 물론 자신이 “가고픈 그곳으로만” 고집하는 일은 예술의 영역 바깥의 평범한 일상에서도 발생하므로, 우리는 당신의 삶에 우리의 삶을 포갤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노래의 위대함은 불현듯 시작된다.

“함께 가자” 손 내밀던 누군가를 애써 밀어내면서, 외로움을 “길지 않은” 인생의 필연으로 생각하며 걸었던 당신은 어느 고지 앞에 다다랐을 테다. 그곳만 넘어간다면 외로움과 다투며 걸었던 당신의 길이 끝내 완성될, 후회로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훌륭한 언덕. 하지만 이어지는 ‘그러나’라는 접속사는 그곳을 앞에 둔 당신의 삶을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빨리” 전복시킨다.
 
 
그러나 너를 알게 된 후
사랑하게 된 후부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나의 길을 가기보다
너와 머물고만 싶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
우 너무 빨리 변해가네

- 김광석, <변해가네> 중에서
 
 
어느 날 외로운 당신은 우연히 “너를 알게” 되고, 이내 사랑에 빠진다. 그 사랑이 얼마나 강렬했던 것인지, 당신은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사랑의 시작을 막지 못했으므로, 이제 남은 것은 당신의 응답이다. 사랑마저 포기한 채 몸을 돌려 고지로 향한다거나, 훌쩍 찾아든 사랑을 아름답게 예찬한다면 좋은 노래에 머물고 말 것을, 고집스러운 예술가는 기어코 이 노래를 위대한 경지로 올려놓는다. “나의 길을 가기보다 너와 머물고만 싶네.” 이것은 굉장한 사랑의 고백임과 동시에, 무서운 속도로 나를 잠식하는 사랑에 대한 두려움의 비명이다. 그렇게 비명을 지르면서도 당신은 차마 사랑을 놓지 못한다. 삶의 길에서 우회도 유턴도 없던 고집쟁이 당신에게 정지는 곧 몰락이다. 당신은 이처럼 위대하게 무너진다.

그리고 알고리즘이 이어주던 또 한 곡의 노래. 당신은 앞서 당당했던 삶의 태도를 경쾌한 음률로 변주하며 노래하고 있는데, 이 노래에서 당신이 추구했던 바로 그 고집이 무엇인지 한결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는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아무도 뵈지 않는 암흑 속에서
조용한 읊조림은 커다란 빛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
 
 
고집쟁이 당신은 사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다. 그렇게 아득한 삶의 “암흑 속” 당신에게 “애달픈 양식”이자 “커다란 빛”이 되는 것은 오직 “나의 노래”뿐이다. 당신은 “흔들리고 넘어져도” 꿋꿋하게 노래하며 나아가기로 매 음절마다 다짐하는데, 그토록 고독하게 노래를 부르며 나아가는 당신이 정작 도달하고 싶은 곳은 자기 자신의 명예와 영광이 아니다.
 
 
수많은 진리와 양심의 금문자
찬란한 그 빛에는 멀지 않으리
이웃과 벗들의 웃음 속에는
조그만 가락이 울려 나오면
나는 부르리 나의 노래를
나는 부르리 가난한 마음을

그러나 그대 모두 귀기울일 때
노래는 멀리 멀리 날아가리
노래는 멀리 멀리 날아가리

- 김광석, <나의 노래> 중에서
 
 
당신의 노래는 “수많은 진리와 양심의 금문자”를 새기는 일이다. 당신의 언어와 목소리는 “이웃과 벗들의 웃음”이 살아나는 세상과 “그대 모두 귀기울”여 “가난한 마음”을 위로 받는 시간을 노래한다. 그런 시공간을 꿈꾸며, 당신은 “마지막 한 방울의 물”로 연명하며 수행하는 쓸쓸한 구도자처럼 나아가던 것. 이토록 소박한 구세의 소망이 험난한 기류를 뚫고 “멀리 멀리 날아가”면 노래가 되고, 고된 비행을 마치고 어딘가에 도달한 노래는 반드시 위대해진다.

위대한 두 노래는 끝이 나고, 이제 이 노래들의 서순에 따른 두 가지 방향의 해석이 남는다. 우선 <변해가네>를 먼저 부른 후 뒤이어 <나의 노래>를 만든 경우. 고독한 예술가이자 구도자였던 당신은 강렬한 사랑을 시작한 후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이 걸었던 길이 통째로 부정될 것이 두려웠던 당신은, 과거의 빛나는 다짐이던 <나의 노래>를 되새김하며 구도의 길에서 이탈한 현재의 자기 자신을 긍정한다. 나는 지금껏 이런 노래를 불러왔으므로, 이제는 똑같이 부를 수 없게 됐을지라도, 나의 업은 완성됐으리라는 필사의 합리화. 이 경우 <나의 노래>는 당신 자신을 위한 노래가 된다.

다음은 <나의 노래>를 먼저 부르다가 <변해가네>를 완성한 경우. 꿈과 이상을 찾아 <나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아가던 당신은 고지를 앞두고 언젠가 지쳐서 멈춰 선다. 노래를 잠시 멈추고 머물던 자리에서 사랑을 발견한 당신은 거대한 행복감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다. 사랑의 품속에서 아늑한 죄책감으로 삶을 돌아보던 당신은, 거부할 수 없는 지금의 사랑이 당신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혹은 최후의) 과업임을 마침내 깨닫는다. 그래서 당신은 다시 노래를 부른다. 모든 것은 반드시 변해간다는 진실에 대한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품은 노래. 이런 노래는 우리의 진리를 위한 노래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해석이 더 마음에 든다. 아직은 거대한 삶의 진리보다 섬세한 자신의 진실을 찾는 일에 마음이 더 끌리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노래가 만들어진 순서는 이렇다. <변해가네>(1988), <나의 노래>(1992). 물론 노래 두 곡으로 그 노래를 부른 가수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발견한 삶의 진실에 대해서는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순서는 아무래도 좋다. 위대한 노래는 시공간을 자유롭게 타고 넘어 흐른다.

부기)
<변해가네>를 먼저 부른 건 그룹 동물원의 박기영이다. 나는 김광석과 함께 동물원의 멤버였던 박기영이 부른 같은 노래에서 동일한 위대함을 느끼진 못했는데, 그것은 노래를 위대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가 목소리이기 때문일 테다. (물론 박기영의 노래 역시 충분히 아름답다.) 어떤 목소리에 대한 애착은, 그 노래에 대한 평가만큼이나, 주관적이다.


 

 

컬처리스트 명함.jpg

 

 

[차승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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