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9월의 다짐, 나에게도 상냥할 것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9.0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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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나는 덜렁대는 성격으로 인해 큰 사고를 치고 나면, 항상 내 자신에게 화가 치밀었다. 내 화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나를 집어삼켰다. 동시에 멍청한 내가 미웠다. 나의 감정을 통제할 줄 모르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 내게는 참 어렵다. 이 상황에 따른 최종의 최종의 결과를 가장 극단적으로 예측하고, 최초의 최초의 원인으로 소급하여 끊임없이 후회한다. 과거의 안 좋았던 경험까지 몽땅 끌어내서 지금과 결부시켜 버리고 만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했던 비슷한 실수, 우울함이 극에 달했던 작년의 내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그리고 결국은 나의 형편없음을 탓한다. 왜 나는 후회와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내 마음처럼 맘대로 되는 것이 없다고 느낀다. 이렇게 내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면 가족이나 친구의 작은 실수에도 쉽게 예민해진다. 나에게 실망하는 것만큼 그들에게도 실망한다.

얼마 전 역시나 나의 꼼꼼하지 못한 성격으로 인해 나름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예전 같으면 앞에서 말한 감정의 침몰이 그대로 재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짧은 인생이지만 살아오면서 약간의 내공이 생겼다. 문제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나아갈 에너지를 만드는 기술이랄까. 바로 ‘자기 자비’이다. 실패로 인해 자신의 부족함을 마주하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을 너그럽게 위로하고 다독일 줄 아는 것이다. 우리는 곤경에 처한 친구를 비난하지 않고 위로할 줄 안다. 하지만 정작 어려움에 빠진 내 자신은 따뜻하게 돌보지 않는다.



결국 나를 평가하는 것


최근 자기계발서나 교양 프로그램과 같은 출판, 방송계의 최대 화두는 ‘자기존중감’, 즉 ‘자존감’이었다. 자존감은 쉽게 말하면 자신의 가치에 대한 판단과 이에 관한 감정이다. 따라서 자존감이 높다는 것은 내가 충분히, 꽤, 높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이는 나 자신에 대한 ‘평가’에 기반 한다. 계속된 성공으로 실패해본 적이 없는 사람의 자존감은 꽤 높을 것이다. 예를 들어 원만한 인간관계, 높은 성적, 사랑스러운 외모, 수입이 좋은 직업 등을 가진 사람은 자신에 대해 우호적인 평가를 내리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도 자기 스스로에게 전혀 자비롭지 않을 수 있다. 평가는 기준이 있기 마련이고, 기준에 따른 우열이 나누어진다. 결국 나 자신도 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순간 가치는 떨어지고 자존감은 추락한다. 이것이 바로 자존감만을 중요한 심리적 가치로 강조할 때 생기는 맹점이다. 또한 자기 자비 없이 높기만 한 자존감은 해롭기까지 하다. 자신의 성과를 위해 타인을 이용하거나 깎아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존감이 매우 중요한 심리적 가치인 것은 분명하지다. 그러나 이렇게 자존감만 높은 이는 삶의 질을 향상하지 못하며, 정서적 부침 또한 심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자기 자비의 3요소


그래서 열심히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그리고 끔찍한 한 달을 보낸 나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자기 자비이다. 심리학자 Kristin Neff는 자기 자비의 요소를 자기 친절(Self-Kindness), 인간 삶의 보편성에 대한 이해(Sense of Common Humanity), 그리고 마음 챙김(Mindfulness) 세 가지로 나누었다. 자기 친절이란 비록 내 약점을 보더라도 나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긴장해서 시험을 망친 친구에게 ‘거봐. 그럴 줄 알았어.’라는 식의 비난은 절대 하지 않는다. 친구의 약점이 무엇이든 간에 기운을 북돋워주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결핍에 자조하지 않으며, 실패에도 상냥할 줄 알아야 한다.

두 번째 요소인 인간 삶의 보편성에 대한 이해는, 삶에서 경험하는 좌절과 실패는 나만이 겪는 불행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인간은 나약하고 나는 홀로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의 불행을 이용해서 나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조금은 부족한 모습으로 저마다의 어려움을 경험하며 삶을 헤쳐 나가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의 슬픔이 나에게만 주어지는 가혹하고 불행한 경험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진 보편성을 이해하면 나와 타인을 분리하여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공감이 가능해진다.

세 번째 요소는 마음 챙김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비판단적인 시선’으로 나와 타인을 바라보는 것으로 설명한다. 즉 누구든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어설픈 자존감과 큰 차이를 보인다. 나에 대한 잣대를 내려놓으면 내 마음과 몸의 상태를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고작 이런 일에 울다니’가 아니라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내가 지금 슬프구나.’하고 그저 담담하게 지켜봐주는 것이다. 고통의 감정을 과장하거나 억제하지 않아야 한다. 마음 챙김은 불교수행 전통에서 유래한 심리학 개념이다. 이 개념은 1979년 존 카밧 진(Jon Kabat-Zinn) 교수가 불교의 명상법을 이용해 스트레스를 감소하는 프로그램인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program)을 개발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마음 챙김은 이후 다수의 연구에서 삶의 만족도를 장기적으로 상승시키는 데 유의미한 결과가 있다고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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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배운 것을 써먹을 차례이다. 나는 나에게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나 자신에게 상습적으로 하던 폭언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 잘못을 합리화하면서 문제 상황을 애써 부정하는 것도 삼갔다. 있는 그대로 느끼기 위해 호흡을 고르고, 산책을 하며 나를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정말 아쉽네. 이렇게 속상한 걸 보면 그만큼 나에게 중요한 일이긴 했구나.’하고 움츠러든 내 어깨와 표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기분이 안 좋다고 밥을 굶거나 폭식을 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따뜻한 저녁과 맥주로 속을 달랬다. 우는 아이를 달래줄 때 사탕을 주듯이, 나에게도 예능 방송을 보여주고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러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다가도 문득 후회의 눈물이 밀려왔다. 세상의 그 누구보다 나에게 자비롭기는 참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목까지 차오르는 비난의 말을 기어이 뱉어버려야 직성이 풀렸던 과거의 나보다는 한결 능숙하게 위기를 극복하는 중이다. 곧 죽을 거 같은 기분도 예전만큼은 들지 않았다. 내가 나에게 자비롭지 못하면서 다른 누구에게 자비를 기대할 수 있을까. 또 베풀 수 있을까. 아침과 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다. 9월의 나야, 감기 걸리지 않기 위해 부디 옷 따뜻하게 챙겨 입길 바란다. 그리고 내 마음도 잊지 않고 잘 챙겨주길 바란다.




[최희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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