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꿈과 환상, 그리고 현실 [영화]

글 입력 2018.07.1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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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쥬란, 불어에서 온 말로 '경의의 표시' 또는 '경의의 표시로 바치는 것'이라는 뜻이다. 예술작품의 경우 어떤 작품이 다른 작품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일부러 모방을 하거나, 기타 다른 형태의 인용을 하는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표를 사고 극장에 들어간 후 몇 분 지나지 않아 영화가 시작됐다. 그리고 시작한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채 나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친구와 시선을 교환할 뿐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몇 번이나 도입부 영상을 찾아 볼 정도로 라라랜드의 도입부는 강렬하게 관객을 압도하는 완벽한 도입부였다. 하지만 이런 도입부가 오마쥬였다니! 알고 있었는가? 그리고 도입부 외에도 수많은 오마쥬가 나오는 것도 알고 있었는가? 나에게 라라랜드는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신선한 충격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영화를, 심지어 여러 장면을 오마쥬했다는 것에 대해 살짝 배신감이 들었다. 나중에는 생각이 바뀌었지만 말이다.
 
아래는 라라랜드가 오마쥬한 영화의 장면과 라라랜드의 장면을 비교해놓은 영상이다.


 

나는 이 영상을 수업 시간에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좀 의아했다. 고전 영화들의 다양한 부분을 뽑아 현대의 느낌으로 다시 만들고 이어붙인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라랜드가 그런 영화에 불과하다면 골든글러브의 작품상-뮤지컬코미디, 여우주연상-뮤지컬 코미디, 남우주연상-뮤지컬 코미디, 감독상, 각본상, 음악상, 주제가상까지 7개 부문이나 수상하진 않았을 것 아닌가? 영화를 잘 알지 못하는 내가 ‘오마쥬’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선 공부가 필요했다. 다미엔 샤젤 감독이 오마쥬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영상 속 오마쥬들은 크게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보았다.



해질녘 탭댄스 씬
 
탭댄스2.jpg
 

라라랜드를 대표하는 씬이자, 탭댄스가 펼쳐지는 배경의 하늘은 CG 논란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장면은 무려 6분이 넘게 롱테이크로 찍었고, 하늘이 이렇게 환상적인 색깔을 만들어내는 2시간 동안만, 4일에 걸쳐 촬영했다고 한다. 이 씬이 오마쥬한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 (1952): 보랏빛 영화 세트장 속에서 춤추는 장면
-Shall we dance(1937): 앉아있다가 탭댄스를 시작하는 장면
-The Band Wagon(1953): 두 배우가 서로 호흡을 맞추며 탭댄스를 추는 장면
 

 
환상 씬

환상 장면은 라라랜드에 꽤 오랜시간 상영되며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환상, 꿈 이런 단어들은 주제와 관통하기도 한다. ‘라라랜드’라는 제목은 LA의 별칭이라는 의미와 현실과 동떨어진 상태 즉 꿈과 환상의 상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도겸 칼럼니스트는 La La La-and처럼 들려서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한다. 일단 주인공들부터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모두 알다시피, 미아는 배우 지망생이며 세바스찬은 자신만의 재즈 펍을 차리고 싶어 한다. 라라랜드에서 환상 장면은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그리고 꿈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 등장한다.

 
Moulin Rouge 편집전.jpg
Moulin Rouge! (2001)
반짝이는 별들이 빼곡한 검푸른 하늘 위에
두 남녀가 떠올라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


원색 장면 편집전.jpg
Singin' in the Rain (1952)
화려하고 인위적인 세트장에 원색 옷을 입은 댄서들이
다수 등장해 군무를 추는 장면


파리의 미국인.jpg
American in Paris (1951)
말 그대로 그림 같은 배경


Broadway melody of 1940.jpg
Broadway Melody of 1940
마치 검은 하늘에 별이 박힌 것 같은 공간에서
두 남녀가 춤추는 장면
 

하늘 속의 별과 세트장처럼 보이는 배경은 미아의 꿈이 이뤄질 것을 암시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알고 보면 보이고, 모르고 보면 지나치기 쉬운 오마쥬 씬

Le ballon rouge.jpg
빨간 풍선 (1956)


On the town.jpg
춤추는 대뉴욕 (1949)


기.jpg
셰르부르의 우산 (1964)
 

영상의 1분 50초부터 1분 55초까지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다미엔 샤젤 감독은 꿈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고전 뮤지컬 영화들과 헐리우드 영화들이 주는 특유의 느낌이 자신이 표현하고자하는 느낌과 비슷했을 것이다. 옛날 영화를 보면 대사를 뱉는 느낌, 카메라 기법, 색감 등 현대의 영화와 다른 점이 많다. 그런데 현대와 다른 특유의 느낌,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오히려 주제인 ‘꿈’을 표현하는데 적합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이 여러 영화에서 작은 부분을 가지고 와 하나의 영화 속에 환상적으로 어우러지게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위의 영상을 여러 번 보며 오마쥬에 대한 나의 생각도 변화했다. 감독과 배우들이 작품의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느껴지기 때문이다. 처음엔 단순히 따라하기 정도로 생각했다면 이제 영상을 보면 진정한 존경심이 느껴진다. 선배 영화감독들과의 합작 같은 느낌이었다.



새드 엔딩인가?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고 몇 년이 흘러 그 둘은 세바스찬이 꿈에 그리던 그만의 재즈 펍 Seb's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두 배우의 당황스러운 눈빛교환 후 세바스찬은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피아노 연주와 함께 감독은 둘의 사랑이 이루어진 모습들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연주가 끝나자 또 한 번의 환상 장면은 끝이 난다. 영화는 다시 Seb's 로 돌아온다. 미아가 남편 옆에 앉아 세바스찬의 연주를 듣고 있는 그 곳으로. 그녀의 남편은 미아에게 한 곡 더 듣고 싶은지 물어본다. 미아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억누르며 괜찮다고 대답하고 둘은 자리를 뜬다. 미아는 애써 확 나가버리려다가 세바스찬에게 마지막일 수도 있는 눈빛을 보낸다. 둘은 말 한 마디 없이 눈빛만으로 폭발적인 감정을 주고받는다. 꿈을 이룬 서로의 모습이 멋있다고, 앞으로도 응원하겠다는 의미가 담긴 눈빛. 눈빛만으로 대사가 읽히니 관객들의 감정도 함께 극대화됐던 장면이었다.


엔딩.jpg
 
엔딩 엠마.jpg
 

라라랜드에는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붕 떠 하늘에서 춤을 추고, 그림 속에 들어가 역시 그림 같은 댄서들과 함께 춤을 추는 등 당황스러울 정도의 환상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 영화가 환상으로만 가득 찼다면 진부했을 수도 있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꿈을 이루기까지 거친 과정은 처절하고 안타깝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사랑은 실패한다.
 
라라랜드는 환상적이어도 너무 환상적인 장면과 현실적이어도 너무 현실적인 장면이 섞여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탭댄스를 추는 보랏빛 시간은 하루에 단 2시간밖에 주어지지 않는 시간이다. 샤젤 감독이 말하고자 한 것 중 내가 캐치한 것은 두 가지다. 먼저 우리의 인생에는 환상적인 장면도 존재하지만 한여름 밤의 꿈처럼 일시적이라는 것. 그리고 환상은 현실 속에 존재하므로 환상과 현실은 대립되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 즉 현실도 환상만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에디터 강혜수.jpg
 
 
[강혜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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