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토록 사랑스러운 파스텔

마리 로랑생展 @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글 입력 2018.01.02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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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프랑스 화가 '마리 로랑생'의 전시에선 그녀가 살아가는 동안 그렸던 거의 모든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그녀에겐 죽기 전까지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던 일생의 사랑이 있었고 절망 속에서도 아름답고 화려한 그림을 그려내는 용기가 있었다. 자연의 색과 닮은 파스텔컬러를 활용해 그려낸 그녀의 작품들은 보는 이들에게 따뜻함과 희망을 선사한다. 물론 일부 작품은 그녀가 겪었던 힘든 시기들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며 어딘가 서글픈 느낌이 들게 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작품, 그녀의 세계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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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내부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카메라 표시가 있는 작품만 촬영할 수 있었는데 그 수가 극히 적어서 내 마음에 들었던 작품들을 휴대폰에 담을 수 없던 점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동시에 그 어떤 전시보다도 작품 자체를 조용히 감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고른 작품 앞에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가 되어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오랫동안 감상했고 결과적으로 기념품 숍에서 망설임 없이 엽서를 고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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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총 8개 섹션으로 구성되어있다. '벨에포크 시대로의 초대' '청춘시대' '열애시대' 등을 거쳐 '컬래버레이션' '밤의 수첩'을 마지막으로 전시는 막을 내린다. 나는 이중 5번째 섹션인 '열광의 시대'와 6번째 섹션 '컬래버레이션'을 특히 관심 있게 살펴보았다. 우선 열광의 시대는 마리 로랑생 특유의 색채감과 스타일이 완성된 시기로 코코 샤넬, 헬레나 루빈스타인 등 유명 인사들이 줄지어 자신의 초상화를 주문하던 이른바 마리 로랑생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절친했다고 알려진 코코 샤넬과의 일화가 눈길을 끈다. 코코 샤넬로부터 자화상 의뢰를 받은 마리 로랑생은 그녀의 의상실을 수시로 방문하며 작품을 완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완성작을 본 샤넬의 반응은 싸늘했다. 마리 로랑생 특유의 흐린 윤곽선이 그녀를 '나약해 보이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마리 로랑생이 완성한 코코 샤넬의 초상화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게 되었다. 현재 프랑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소장 중이며 미술관의 대표작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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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의 시대에 그녀가 그린 작품들은 이전과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인물들의 눈동자엔 생기가 돌며 전체적인 색감도 뚜렷하고 힘차다. 하지만 마리 로랑생이 직접 그린 자신의 초상화는 어딘가 슬픈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그녀가 외로워하고 완전히 밝아지지 않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지만 마리 로랑생 스스로는 그렇게 느끼지 않은 모양이다. 그녀는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독의 힘을 통해 작품 세계를 더욱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주변인들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킨 하녀 수잔 모로를 양녀로 들일 수 있었던 마음도 이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그녀의 파스텔 세계는 슬프지만 참 아름다웠다. 잠재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고 간혹 그 에너지를 표면에 나타냄으로써 그 어떤 것보다 화려한 희망을 선사하기도 한다. 솔직한 얘기는 강한 힘을 지닌다.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이 담긴 고백은 그것이 어떤 형태든 오랫동안 전해지고 기억된다. 그녀의 작품들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보는 이들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런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마리 로랑생, 그리고 그녀가 보여준 사랑스러운 파스텔 세계. 2017년의 마무리를 함께 해서 행운이라는 생각이 밀려든다.


[이형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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