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드가 보여줄 수 있는 것들 [전시]

테이트 명작전: NUDE
글 입력 2017.10.06 16:58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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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테이트 미술관이 한국을 찾았다. 시대적으로도, 장르적으로도 방대한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는 테이트에서 이번에 한국 관객에게 보여줄 작품의 소재는 ‘누드(Nude)’이다. 우리는 살면서 타인의 벗은 몸을 보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술에서는 빈번하게,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그리고 캔버스 위에, 혹은 조각 작품, 사진 작품의 누드는 생각보다 다양한 의미로 나타난다. 누드가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테이트 명작전: NUDE 전시에서는 여덟 개의 테마로 구성하였지만, 이 글에서는 다섯 가지의 주제로 정리해보았다.



육체의 아름다움과 고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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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네빈슨
<몽파르나스 스튜디오>
1925, 50×30 (127×76), 캔버스에 유채 ⓒTATE


인간의 몸이 미술작품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가진 아름다움일 것이다. 1 전시실 ‘역사적 누드’ 테마의 18-19세기 고전주의 누드뿐 아니라 2 전시실 ‘사적인 누드’의 몇몇 누드 작품에 등장한 인간의 몸은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표현된다. 특히 여성의 몸의 곡선과 희고 부드러운 살결의 표현을 보면 왜 예술가들이 여성 모델들의 누드를 자주 캔버스나 조각으로 옮겼는지 이해가 된다. 남성의 몸도 마찬가지다. 이상적인 비율과 탄탄히 잡힌 근육의 표현에서는 인간의 신체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이 전시의 메인 작품 중 하나인 허버트 드레이퍼의 <이카루스를 위한 애도>에서는 신화의 한 장면을 아름다운 인간의 몸의 표현을 통해 옮겨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메리트의 <닫힌 사랑>, 크리스토퍼 네빈슨의 <몽파르나스 스튜디오>에서는 벗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에서 우아함과 관능미가 엿보인다.



형태의 실험


3 전시실에서는 조각, 5 전시실에서는 회화 작품으로 소개되는 ‘모더니즘 누드’ 테마의 작품들은 몸이라는 형태에 대한 작가들의 실험의 결과물이다. 헨리 무어와 쟈코메티의 조각을 보면, ‘이게 사람인가?’ 싶다가도 ‘아, 사람이구나’ 납득하게 된다.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정밀한 인체 묘사를 보면서 그것이 사람의 몸이라 느끼지만, 초등학생 아이가 그린 졸라맨 그림을 보고서도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인체를 인체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피카소는 평면 조각들의 집합으로, 헨리 무어는 둥글거나 각진 양감으로, 쟈코메티는 길쭉한 뼈대로 저마다의 실험을 거듭하며 답을 찾는다. 그것을 보는 관람객들은 때로 아주 세밀한 소묘보다 아무렇게나 뭉개 놓은 것 같은 한 덩이의 조각 작품을 보며 그것이 더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단순화된 형태일수록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진다는 점이 확인”되는 순간이다(쟈코메티 작품 설명 중에서).


헨리 무어, <쓰러지는 전사>
1978, 브론즈 ⓒTATE

  

은밀한 욕망


아마도 사람들이 이 전시를 보러 온 가장 강력한 동기가 아닐까? 감히 추측해본다. ‘누드’, ‘벗은 몸’이라는 단어에는 성(性)적이고, 은밀하고, 에로틱한 이미지가 항상 따라붙는다. 누드는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기 때문에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것 같다. 가림막이 쳐져 있어 더욱 은밀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4 전시실에는 윌리엄 터너와 파블로 피카소, 데이비드 호크니, 루이즈 브루주아의 드로잉이 전시되어 있다. 동성애나 사창가의 현장, 혹은 사적인 공간에서의 장면을 묘사한 드로잉을 자신도 모르게 집중해서 보는 관람객들은 그 역시 ‘관음’이라는 행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오귀스트 로댕, <키스>
1901-4, 대리석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오귀스트 로댕의 <키스>는 한동안 외설 논란에 휩싸였던 작품이다. 실제로 마주하면 그것이 이해가 된다. 두 남녀가 맞대고 있는 입술뿐만 아니라, 남자의 목에 두르고 있는 여자의 팔과 그녀를 잡고 있는 남자의 손, 남자의 발 위에 살며시 올린 여자의 발까지 에로틱한 분위기를 강렬하게 풍긴다. 거대한 대리석 조각의 크기만큼 더욱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 같다.



사회의 현실과 그에 대한 반항


앞에서 여성의 신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이러한 작품들이 20세기 이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고 있다. 주로 남성 예술가의 시선으로 묘사된 여성의 모습에서 성의 권력관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6 전시실 ‘몸의 정치학’ 테마에서는 여성 예술가, 페미니즘 예술가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20세기 중반 이후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여성의 시각에서 본 여성의 몸, 혹은 남성의 몸을 표현한 작품에서 그동안 누드에서 놓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주목할 만한 작품은 바클리 헨드릭스의 <줄스 가족: NNN(나체 흑인 금지)>. 소파 위에 전통적 여성 누드모델의 자세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흑인 청년의 도발적인 시선에서 이런 외침이 들린다. “왜, 나는 이렇게 벗고 누워있으면 안 돼?”


바클리 헨드릭스
<줄스 가족: NNN(나체 흑인 금지)>
1974, 168.1 x 183.2, 섬유에 유채.



육체의 유한함과 연약함

5 전시실의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 누드’, 6 전시실의 ‘연약한 몸’ 테마 역시 육체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미술의 역사에서 고정관념처럼 여겨진 주제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스탠리 스펜서와 같은 사실주의 작가의 작품을 보면, 피부는 생기 있기보다 창자나 고깃덩이를 떠올리게 하는 창백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인간의 몸이다. 육체라는 것이 조금은 징그럽고, 언젠가는 썩어 땅으로 돌아갈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상화하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낸 묘사가 인상적이다. 존 코플란스의 <자화상(프리즈 No.2, 네 패널)>이라는 사진 작품 또한, 털이 북슬북슬하고 살이 축 늘어진 남성의 몸에서 위풍당당함보다는 세월에 풍화되는 인간의 신체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한다.


루치안 프로이트
<헝겊 뭉치 옆에 선 여인>
1988-89. 168.9×138.4㎝, 캔버스에 유채. ⓒTATE
   


“나체 초상은 얼핏 볼 때 인체의 내면보다도 겉모습에 관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몸이란 겉옷이나 가식을 배제한 자아를 상징한다.” (마틴 햄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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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2017년 8월 11일 ~ 12월 25일
장소 소마미술관 (올림픽공원 내)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입장 마감 6시)
전시문의 02-801-7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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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저의 브런치에서 연재된 글입니다.


[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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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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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인
    • 안녕하세요 두레 중인 최지은입니다. 누드에 관한 다섯가지 생각들 잘 읽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누드를 감상하는 것과 누드 작품을 창작하는 등 누드를 즐기는데요, 누드에 관한 생각들을 정리해주셔서 공감을 많이 하며 잘 읽었습니다. 육체의 아름다움과 인체 조형의 실험,  관음의 욕망, 사회에 대한 반기, 육체의 사실성 등 각 항목별로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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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매나무
    • 안녕하세요 두레 참가 중인 김소원입니다. 평소 누드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현진님의 글을 읽으며 인간의 육체를 다양한 방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문단이 적절하게 나뉘어 있어서 읽기에 편안하고 내용도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형태의 실험' 부분과 '육체의 유약함과 연약함'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분야보다 미술관 쪽에는 관심이 적은데도 현진님의 글을 읽으니 테잍 명작전에 가보고 싶어지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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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앤
    • 안녕하세요 두레참가자 류다연입니다ㅎㅎ
      현진님의 글을 읽고나니 이 전시를 직접 관람해 보지 않았지만 마치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미술관에 다녀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시와 미술에 대한 풍부한 상식을 바탕으로 잘 정리된 글 같다고 느꼈어요.
      기회가 된다면 전시회도 직접 관람해 보고 싶습니다.
      오늘도 편안한 하루 보내시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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