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생생한 '살아보기'의 현장, < 맨발의 학자들 > [문학]

글 입력 2016.03.2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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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류학 수업시간에 읽었던 흥미로운 책에 대해 소개해보려 한다. 우선 책의 제목이 ‘맨발의 학자들’인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현장 속에서 맨발로 걸어 다니는 것처럼 그 지역이 주는 기운을 그대로 느낀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동시에 6명의 인류학자들이 모두 무더운 동남아시아를 연구했기에 말 그대로 ‘맨발’로 다녀야 할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맨발의 학자들’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에 익숙한 나에게 현장으로 가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욕구를 불러일으킨 첫 번째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책은 6명의 인류학자들이 동남아시아의 각 나라, 그 안에서도 특정한 지역에서 적어도 1년 이상을 거주하면서 특정 주제를 중점적으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연구의 과정에 대해 간략하면서도 생생하게 묘사한 에세이 형식을 취하고 있다. 6개의 연구가 모두 각각의 묘미가 있었지만 몇 가지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선택적으로 언급하고 종합적인 감상을 통해 글을 마무리하겠다.



첫번째는 93년 5월부터 94년 6월까지 말레이시아 빠시르마스 지역에서 진행된 농촌 무슬림 마을의 이슬람화와 사회변동 사이의 관계에 관한 연구이다. 부두라는 전통 음식을 먹음으로서 연구자가 현지인들로부터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는 부분이 재밌었다. “부두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루를 살더라도 끌란딴 사람이 될 수 있지만 부두를 먹지 못하는 사람은 수 십 년을 살아도 결코 끌란딴 사람이 될 수 없다.”(121쪽)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끌란딴 사람에게 부두를 먹는 것은 문화적으로 중요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마치 한국에서 외국인들이 ‘김치’를 먹음으로서 “한국사람 다됐네.”라는 말을 듣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연구자는 현지인들과 라포를 형성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조사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한다. 말로만 상대를 이해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 문화적 경계에 있는 어떤 행위를 함께 공유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마음의 문이 열리고 그 이해가 진심으로 와 닿을 수 있는 것 같다.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때 상대의 마음도 열 수 있는 것이다.


다음 연구는 베트남 노동자가 새로운 노동 환경에 대응하고 저항하는 구체적 방식과 이유에 대한 연구이다. 외국 자본, 특히 한국의 공장이 베트남에 세워지는 상황 속에서 베트남 노동자들이 어떻게 외국 자본에 순응하거나 저항하는지를 찾는 것이다. 이 연구는 마을이 아닌 공장에 접근한다는 점, 즉 일상생활이 아닌 일의 터전에 접근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기밀의 유출해 대한 경계와 업무 방해에 대한 우려가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연구자가 현장 매니저나 노동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다른 연구들은 함께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라포를 형성하였다면 이 연구에서는 조금 더 노골적이고 의도적인 접근이었기에 그만한 노력이 요구되었다. 연구자는 점심식사, 저녁 술자리, 주말 볼링을 함께 다니며 친밀감을 쌓았고 노동자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외우고 개인사를 챙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심지어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조사를 위해서는 청일점으로 가라오케까지 따라가 놀림거리를 자청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언제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을 텐데 새삼 그 열정에 감탄하였다.

 

 마지막 연구는 2004.07-2005.07 태국 미얀마 국경 도시인 매솟에서 현지조사 수행한 태국-미얀마 국경에서의 현지 연구이다. 이 연구는 다른 연구들과 달리 이동하면서 현지에 대해 조사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일명 ‘모바일 참여관찰’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석사와 박사에 걸쳐서 두 번의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현장에서 카렌족이 어떻게 난민촌에 적응하며 살아가는가를 우선 연구하다가 매솟이라는 지역에 흥미가 생겨 국경 도시의 구성원리를 파악하는 방향으로 연구의 방향이 바뀌었다. 인상깊었던 것은, 연구자가 최대한 객관적으로 관찰하려는 뜻을 밝히는 부분이었다.



 “과도한 인도주의적 입장으로는 난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순수한 인권 옹호 차원의 연구는 난민들을 단지 피해자적인 관점에서만 다루고 그들이 갖고 있는 적극적인 삶의 의지를 보지 못하는 측면이 컸다.




 현지 조사는 그곳에 가서 현지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생활방식을 체험해본다는 입장에서 자칫 재미난 하나의 경험으로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선 여섯 명의 연구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닥친 어려움은 ‘언어의 벽’ 이었다. 질적 연구에서 특히, 이와 같은 현장 연구에서는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언어 자체가 불가하고, 또한 간단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 언어 자체에서 오는 미묘한 뉘앙스들을 파악할 수 없다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은 한층 어려워진다. 이에 대하여 대응하는 방식은 각기 조금씩 달랐는데, 몇 가지 언어를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과외를 받기도 하며 거리의 언어를 배우는 경우도 있었다.


 다음으로 라포, 즉 연구자와 연구 대상간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은 연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일상 속에서 인간관계의 유대감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경우 연구를 위해 어떻게 보면 인위적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가야 하는 것이고 이것은 연구자들도 사람인지라 늘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유대감 형성을 위해 그들의 음식을 먹고, 그들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함께 참여하며 최선을 다했다. 이때 핵심은 조급해하지 않는 것인 것 같다. 실제로 연구자들이 현장에 가자마자 연구대상들과 친해진 경우는 없었다. 모두 천천히 시간을 두고 여유롭게 다가가는 것이 핵심이었다.


 마지막으로 인류학적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윤리의 문제이다. 조사자는 내용을 임의대로 조작하거나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되며 조사 결과를 현지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언제나 염두 해야 하고 비밀을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된다. 한 연구자는 “이러한 윤리 사항이 있기에 현지조사 과정은 자신의 문제를 끊임없이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하겠다. 현지조사자의 윤리에 입각해 조사를 행하고, 이것을 통해 지역과 문화 나아가 인간에 관한 심도 깊은 이해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것이야말로 현지조사의 강점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윤리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결국 그것을 통해 인간에 대한 연구의 과정 속에서 인간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인 것이다.



 이 책은 '인류학'이 낯선 사람들에게 인류학이 어떤 학문이고 특히 현장 연구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입문서가 될 것 같다. 또한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동남아시아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색다르다는 점도 있으나, 이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연구자’들이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성장해가는 흐름을 함께 따라가며 함께 배워간다는 데에 있다. 한 연구자는 “현지조사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거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문화의 일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현지 문화에 관한 이해를 통해 자신을 늘 비춰보려 하는 자세를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그들의 문화 속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낯섦의 미학을 통해 나의 익숙함을 낯설게 만들고, 겸손한 자세로 그들의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나도 그 속에서 함께 배워가는 느낌을 받았다. 
 

[박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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