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되어버린 제기차기

유일한 장난감
글 입력 2016.02.20 21:2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제기차기도 역사가 되어 버렸다.
어렸을 적 놀 거리가 없었던 시절 여자아이의 고무줄 놀이와 남자아이들의 제기차기는 유일한 재미였다. 아니 약간은 사치스런 놀이기구였다. 왜냐면 엽전과 한지로 만든 제기는 동네에서도 엽전이 거의 없어질 시기였고 한지 또한 일상에서 쉽게 구하지 못했던 시절이라 제기를 가지고 있는 아이는 동네에 한두 명밖에 없었다. 가을쯤이면 구멍 난 문풍지와 일년 동안 사용한 문에 붙인 한지를 새로 붙여 월동 준비할 때 자투리로 나온 한지로 엽전을 곱게 싸서 제기를 만들면 남자아이들의 제기차기 시즌이 돌아 온다.


엽전과 제기.jpg
<엽전과 한지로 만든 제기>


동네에 한 두 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애가 오지 않으면 제기차기 대용으로 길섶에 밟혀 단단하고 질진 질경이(차전자)를 뽑아 흙을 잘 털고 잎사귀를 잘 정리하여 무게 중심을 맞추면 그럴싸한 제기를 만들어 놀기 시작한다.  여기서 풀 제기를 만들 때 매우 중요한 사항은 오래 묽고 큰 질경이여야 뿌리부분의 무게가 엽전 무게만큼 묵직하여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큰 질경이 잎사귀를 잘 정리하면 찰 때 안전하고 똑바른 비행하는 풀제기 만들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것도 잘 보관하면 잎사귀가 떨어져 다 없어질 때까지 한 일주일은 너끈히 사용할 수 있었기에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심심할 때면 꺼내서 친구들과 내기 제기차기를 했었다.
그때는 가끔 학교에서 선생님이 호주머니 검사해서 제기가 나오면 매 맞던 시절이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 이겠지만 공부는 안하고 놀기만 한다는 이유였지만 선생님들도 다 알았었겠지만 시간날 때마다 교실이건 운동장에서건 할 것이라곤 제기차기 고무줄 놀이 밖에 없었다. 6학년쯤 되어서야 운동장에 시이소가 설치되어 1학년때 배웠던 시이소의 실물을 처음 보았을 정도로 기구놀이라고는 제기차기 자치기 널뛰기 그네타기 정도였으니 말이다. 소지품 호주머니 검사에서 남자는 제기 여자는 고무줄이 단골 단속대상이었다.
이유야 공부 안 한다고 매질이었지만 제기나 고무줄 없는 아이는 상대적 빈곤감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특히 늦가을 겨울철에 밖에서 놀면 감기 걸리기 십상이어서 대부분 수업시간에 콜록거리는 아이 코 찔찔 이가 절반은 넘었을 것이기에 예방 차원에서 금지시켰을 것이고 놀고 나서 요즘같이 손을 씻는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위생적으로도 더 단속대상이었을 것이며 하물며 풀 제기를 항상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바지 주머니는 흙투성이였을 것이다. 목욕은 물론 더럽혀진 아이들 옷은 요즘같이 자주 세탁하지 않았을 것이고 밖에서 지칠 때까지 놀아버린 코 찔찔 이들이 기침하고 있는 장작난로 겨울철 교실은 가히 상상 초월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당시 도회지에서 교육받은 자식 상류층이었던 선생님은 입장은 그러한 시절을 보냈던 추억과 이러한 현실을 이해하면서도 난감하였을 것이다.
원래 제기의 재질이 엽전과 한지에서 시대가 변하면서 재질도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골 구멍가게까지 유리병에 담은 사이다가 등장했다. 사이다가 제기의 재료를 조달해 주었다. 병은 모아 두었다가 엿이나 아이스깨끼와 바꿔먹고 그때 우리는 양철 뚜껑이라 불렀던 왕관은 엽전을 대신할 수 있었던 좋은 재료였다. 왕관을 잘 두들겨 펴서 가운데 구멍을 내면 엽전 대체제로 충분하였고 엽전 무게만큼 되려면 왕관 3개를 모아 합쳐 사용하면 우주 근사하였다.


한지제기와라면봉지 비닐제기.jpg
<한지제기와 라면봉지, 비닐제기>


또한 삼양라면은 만능제기를 만들어 주었다. 원래 제기의 재질 중 한지가 물에 취약해서 한참 열기가 고조되어 힘차게 차다가 시궁창 같은 곳에 빠지면 말리거나 다시 만들어야 하는 난감한 문제가 있었다. 제기 수술이 한지였을 때는 물에 젖거나 비가 온다든가 냇가에서는 불가능 했지만 수술을 삼양라면 봉지 비닐로 만들면 전천후 제기가 되고 설사 시궁창 같은데 빠지더라도 씻어 쓸 수 있고 하얀색 제기가 라면봉지 빨간 색깔을 띠고 있어서 좀 더 특이해서 좋았다.
여하튼 고무신 싣고 제기를 잘도 차는데 단둘이 시합을 하면 100개를 먼저 차는 사람이 이기는 방식으로 내기를 한다. 내기를 해 봤자 줄 것도 벋을 것도 없으니 이긴 사람이 엉덩이 무릎으로 올려 차기가 고작이었고 명절이 다가 올 때쯤이면 떡 내기를 하곤 했는데 막상 명절 때가 되면 동네 방네 집집마다 우르르 모여 가서 주는 음식 나눠 먹으면 그만이었지 누가 이겼고 떡 달라고 받으러 가지도 안 했고 떡 주러 가지도 안 했지만 목표는 분명했다.


제기차는모습.jpg
<제기차는모습>


분명한 목표가 있었으니 시작하면 해질 때까지 다리가 안 올라 갈 정도에 이르기까지 열정적으로 놀았던 기억이 있다. 단순히 한 발차기에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양 발 차기, 안 발 바깥발차기, 한발을 땅을 안 집고 차는 한발 차기 등으로 난이도를 높이기까지 했다. 돌이켜 보면 어떤 운동보다 하체 운동 및 전신 운동에 그만한 몸동작이 없었으니 집에 가면 그대로 곯아 떨어지게 마련이다.
체력에는 상당히 보탬이 되었지만 공부와는 상당히 먼 놀이로 숙제가 없을 때면 학교 끝나고 책을 싼 책보를 휙 던지고 나가 놀면 다음날 아침에 학교는 어제 내던진 책보를 그냥 매고 갔었다. 제기차기는 둘 이상이면 아무 때나 어느 장소에서도 놀 수 있는 수단이었고 많을 때는 편을 갈라 놀기도 하고 둥글게 원을 그려 주고받기를 하며 놀기도 했다.
지금은 학교에서 제기차기를 가르치고 있다는 말에 세대 차를 넘어 아득한 과거의 일처럼 깜짝 놀랄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어렸을 때 신나게 놀았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벌써 전통놀이로 되어버렸고 과거의 유물로 취급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나에게 남은 아름다운 추억은 시간의 화석이 되어버렸다.


[나기권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5.02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