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타인의 행복에 쉽게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 [문화 전반]

사람들은 왜 남의 SNS에 지적하는 댓글을 달까?
글 입력 2023.12.1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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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한때는 SNS 중독자였다. 별일이 없어도 다른 사람들이 올린 ‘스토리’를 통해 그들의 일상을 염탐했고, 세계 곳곳의 유저들이 만든 짧은 숏폼 영상인 ‘릴스’도 매일 보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SNS를 하는 것이 피로해졌다.

 

왜일까? 물론 이유는 여럿이 있을 수 있다. 나의 일상을 ‘자, 보세요!’하고 공개하는 것에서 오는 피로도 있을 수 있고, 남들이 ‘자, 보세요!’하고 올려놓은 일상을 보는 것에서도 피로를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분명한 피로감을 줬던 것은 SNS 속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잔뜩 ‘날 서 있는’ 유저들이었다.

 

하루는 릴스를 넘기다가 강아지가 집에 돌아온 주인을 보고 기뻐서 와다다 달려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지어지는 주인과 강아지의 영상이었고, 나도 그 영상을 보며 ‘귀엽다’는 생각에 푹 빠져있었다. 하지만 댓글 창은 그런 긍정적인 감정과는 거리가 먼, 날 선 글로 가득 차 있었다.

 

거기에는 바닥에 매트가 깔려있지 않으니 강아지의 관절이 아플 수 있다는 걱정 아닌 비난 댓글부터 시작하여, 이와 관련된 주인의 부주의함을 꾸짖는 댓글들이 제법 있었고, 또 그 비난하는 댓글에는 또 다른 유저가 댓글을 달아 논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피곤해지는 글이었다. 제삼자인 나로서는 댓글 창을 나가면 그만인 글들이지만, 자기 반려동물과의 행복한 일상을 기록, 혹은 자랑하려고 올린 주인에게는 무슨 봉변인가.

 

또 한 아이돌 팬덤 계정의 릴스도 본 적이 있는데, 운영자가 자신의 아이돌이 자랑스러워서 올린 것이 분명한 영상에는 해당 아이돌을 타 아이돌과 비교하고, 또 거기서 논쟁하는 댓글이 가득했다. 그 아이돌과 운영자는 그 영상으로 누구에게도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피해를 끼친 적이 없는데 말이다.

 

정말이지, 왜 이렇게 남들이 올린 영상을 자신의 기준에서 검열하며 공격하지 못해 안달 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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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상황의 원인을 설명하라면 여러 접근이 가능하겠지만 필자는 근본적으로 행복이 얻기 힘들어진 사회에서, 누군가가 기뻐하거나 행복해 보이는 요소에 쉽게 적대감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SNS를 살펴보면 남의 옷차림에, 남의 가족/반려동물/애인/친구와의 행복한 시간에, 남의 행복 그 자체에 ‘민폐가 되는 행동’을 굳이 찾아내서 지적하는 댓글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댓글들은 ‘진짜’ 경제적 자랑이나 학벌 자랑을 앞세운 영상보다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소중한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더 자주 공격한다.

 

값비싸기로 이름난 고층 아파트 내부를 자랑하는 영상을 올리거나, SKY 대학을 앞세운 고학력자의 영상에서는 다른 유형의 영상에서는 마음껏 불편해할 점을 찾던 사람들이 유난히 차분히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그런 자랑을, 그런 행복을 누릴 만큼 노력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개인들은 ‘인정받은’ 개인의 영상을 볼 때는 적절한 거리를 두고 점잖게 감상한 이후 ‘이런 점이 있군요’ 하며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다.

 

반면 특출나지 않은 누군가가 자신의 가족을, 일상을, 반려동물을,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는 무엇인가를 올릴 때는 이러한 점잖음이 사라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고작 그런 것을 자랑하냐는 듯 그들의 불완전성을 번쩍 들어올리기 위해 달려든다. 경쟁을 통해 쟁취한 것이 아닌 요건은 행복과 자랑의 수단이 되기에는 불완전하거나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일상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니 타자의 기쁨이 드러나는 영상에 피해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이 피해의식은 공격할 ‘건수’를 찾아서 전개되는데, 영상과 관련이 없거나 주된 주제가 아닌 것의 꼬투리를 잡아서 공격하는 식이다. 그리고 특히 쉽게 공격하거나 딴지를 걸 수 있는 부류의, 즉 사회적 명망이나 소득의 우월성이 보장된 부류를 제외한 대상이 목표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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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앞서 말한 내용과 연관이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이 차별과 혐오의 문제가 경쟁적이고 쉽게 행복해질 수 없는 ‘사회’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해당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 행복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행복이 된 기이한 사회에서, 어쩌다 성공한 하나의 사례를 마치 누구나 달성할 수 있는 자기 계발의 목적지인 양 일반화시켜 개인을 압박한다면? 32p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자기 발전을 하며 앞으로 달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이 논리는 불가피하게 열외가 되는 사람들을 패배한 것과 같이 판단한다. 경쟁과 발전에 동력을 주기 위해 사회는 앞서 나간 사람들이 곧 행복을 성취하였다는 신화를 반복적으로 생산하며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행복은 희귀한 것이 되며, 행복을 얻는 것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경쟁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는 사유가 형성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행복한 사람들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우월한 것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착각하고, 우월한 조건이 없는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한다.

 

그리하여 이십 대들은 ‘스스로’라는 의미가 담긴 자기계발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이 엄격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61p

 

이른바 개인의 신분 상승이 실현되기 힘든 세상에서, 적어도 자기 노력의 결과가 평가절하되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남의 추락은 마다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149p

   

남들보다 혹은 남들만큼 잘 살기 위해 달리는 20대 청년으로 볼 수 있듯이, 성공에 대한 환상의 쳇바퀴는 자연스럽게 자신과 타인을 평가하는 척도를 형성하기 마련이다. 앞서 SNS에서 타인의 자랑 섞인 행복의 영상을 가만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대감을 가졌던 이유는, 자신들의 일상은 그토록 치열한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여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의 외부적 표출이며, 이는 행복을 위한 길이 어렵다는 사회적 인식의 결과이기도 하다.

 

*

 

결국 SNS상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현상이 되어버린 지적과 비난은, ‘행복’이라는 것이 얻기 힘든 가치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끝없는 경쟁과 자기 발전을 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내면화한 높은 기준과 조건을 척도로 타인을 평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차별을 위주로 다루고 있으나, 이를 통해 우리 사회를 해석할 때 필요한 기본적인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 경쟁이 일상이 되는 사회에서는 책의 내용처럼 차별에 찬성할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도 등장하고, 내가 목격했던 지점처럼 타자의 행복을 달가워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서로 다른 영역의 상황이지만 결국 같은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타인의 행복에 누군가의 행복을 자랑하는 영상을 그저 ‘그렇구나’하고 넘길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행복에 대한 재정의가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남이 행복하다고 해서 내가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자신의 행복은 자신의 기준에서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자기 행복을 볼모 삼아 경쟁을 촉구하는 사회 구조에서 한 발짝 멀어진 시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된다면, 그래야 한다는 착각이 없어진다면 우리는 타인의 행복을 축하하며 지나치고 자기 행복을 단단히 지킬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해본다.

 

 

 

박소은 컬쳐리스트 태그.jpg

 

 

[박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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