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연휴로 쉬기 딱 좋은 수요일, 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의 초대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연극 맘모스해동을 보았다. 맘모스가 어떤 의미로 해석이 될 지, 이 연극은 꿈과 희망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드러낼지 기대하면서 갔다. 연극을 보고 나오니, 극 중에서 아주 직접적으로 모든 것들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깔끔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생각이 많아졌다. 어찌 보면 극 중의 인물들이 소리치는 말들이 하나하나 이해가 되어서 이젠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나 보다 하는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두고 두고 곱씹어보고 싶은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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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먹고 살기 위해 시어머님이 물려주신 보신탕 식당을 하고 있는 부인과 교수 임용을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해온 남편.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의 집에 손님이 방문한다. 손님은 부인의 보신탕 식당에 개를 대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남편은 천박해 보이는 손님에 대응하고 즐거워하는 부인의 모습이 상당히 낯설다. 부인은 남편이 자신을 시장통의 사구려 여자로 변했다고 규정하는 것이 기가 막히고 원망스럽다. 그들이 대화는 진행될수록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갈등만 고조시키다 결국 폭발하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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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후기는 리뷰인만큼,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음을 사전에 밝히며 후기를 작성하고자 한다.
연극은 암전이 된 후 조용하게 노래가 깔리며 시작되었다. 익숙한 선율이 흘렀다.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유명한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Una furtiva lagrima).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음성으로 듣던 그 애절한 곡조가 극장을 가득 채웠다. 공중에서 울려퍼지는 남성 성악가의 목소리에 더하여 무대 위의 한 여성이 그 어둠 속에서 같이 그 선율을 부르기 시작했다. 마치 오페라 무대의 주인공마냥 화려한 드레스에 붉은 깃털 장식을 머리에 꽂은 한 부인이었다. 그녀는 관객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눈 앞에 존재하고 있는 자신의 딸에게 박수칠 것을 강요하며 자신은 곧 무대에 올라 노래를 계속 부를 것이라 주장했다. 영화감독인 남편은 대작을 준비하러 떠났으니 자신은 그가 성공하면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된다며 꿈에 겨워 소리쳤다.
그러나 딸은, 관객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아마 자신의 엄마인 그녀를 불신하는 눈빛으로 바라본 듯하다. 부인은 딸에게 격노하며 들어가서 피아노나 치라며 딸에게 역성을 냈다. 이전까지 행복에 겨워서 무대에 오를 거라던 그 외침은, 극한에 몰린 상황에서 유일한 도피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집을 나간 남편을 찾지 않고 그저 희망만 꿈꾸며 살았던 그 어머니 밑에서, 딸은 행복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유년기를 보낸 것이다.
다음 막에서 딸은 장성한 모습으로 남편과 가정을 꾸린 모습으로 등장한다. 박사 논문이 통과되고 강사활동을 하며 교수 임용을 준비하는 남편, 그리고 그런 남편을 돕기 위해 자신의 꿈인 피아노를 접고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보신탕집을 운영하는 여자. 비록 단란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들이었지만, 서로 대면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그들은 뭔가가 삐걱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었다면 두 사람이 소통하며 서로를 잘 알 법도 한데, 남편과 아내는 어딘가 서로를 배려 아닌 배려로 거리를 두고 있는 것만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글을 쓰고 미술을 좋아하는 남편 그리고 피아노를 쳤던 아내. 두 사람은 소위 '고상한'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은 개고기 냄새가 진동하듯 괴리가 있었기 때문인지 부부의 사이도 묘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겉으로는 안정된 듯하면서도 속으로는 위태위태하던 부부가 갈등으로 치닫게 된 것은 개고기 장수의 방문에서 비롯되었다. 여자를 누님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하는 손님, 그런 손님에게서 나는 개고기 냄새로 역겨움을 표출하는 남편. 그런데 여자에게 시덥잖은 농담같은 말들을 던지면서 친근감을 표하는 손님에게서 남편은 왠지 모를 열등감을 비치기 시작했다. 아내와 친근해보이는 손님의 모습에서, 자신이 공부하는 동안 아내는 일하면서 저런 사람을 만나 바람을 폈던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마음 속에서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손님에게 대화를 맞춰주며 시덥잖은 소리에도 웃어주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아내가 싸구려같아졌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손님이 돌아간 사이에 아내와 언쟁을 벌이며 천박하다고 소리를 쳤다.
남편은 아내의 마음이 변심했다고 혼자 믿고서는, 자신도 아내와 같이 일을 하고 그녀의 마음을 다시금 자신에게로 되돌리겠다며 그녀를 붙잡았다. 이 대사로 극은 절정에 치닫게 되었다. 극 초반부터 일관되게, 아내는 남편이 박사 논문을 통과했으니 이제 출판하고 곧 교수 임용이 될 거라는 얘기를 지속적으로 반복했다. 그녀에게는 오직 그것만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남편은 돌연 그녀에게 여태껏 벌어온 돈이 대학강사 강의료가 아니고 택배 알바나 과외 등을 하며 벌어온 돈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자신도 일을 하면 그 손님처럼 잘 할 수 있다고 아내에게 어필했다. 이것은 결국 아내가 자신의 꿈인 피아노조차 접고 남편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며 견딜 수 있었던 최후의 보루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내는 남편과 언쟁하던 와중에 자신의 어머니를 회고한다. 어머니는 항상 자신이 오페라 가수가 될 것이라며 얘기했지만, 사실은 영화감독이라던 남편이 집 밖에서 포르노 영화나 찍고 있어서 그 작품을 보고 남 몰래 눈물 흘리곤 했다는 것이다. 딸이었던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왜 아버지를 찾아가 진실을 캐내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남편이 사실은 교수 임용을 목전에 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상황에 이르러서야 여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왜 그랬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허황된 꿈일지라도 그것이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극적인 결말로 인해 다시금 이 연극을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저 연극을 보러 가기 전에는, '박제되어 버린 꿈이라 할지라도 인생에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려 한다고만 생각했다. 물론 그것이 표면적으로 보이는 결론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이 연극은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극의 도입부에 나왔던 '남몰래 흘리는 눈물'은 어머니, 그리고 그 딸이 그리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준 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제목 자체로부터 어머니와 그 딸의 모습을 연상하게 만드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어머니도, 딸도 자신의 남편에게 솔직하게 그 무엇하나 터 놓지 못한 채 진실을 덮어두고 헛된 희망을 붙잡고 살면서 속으로 숱한 눈물들을 흘리고 삼켜야 했으니 말이다.
이 연극이 매력적인 이유는 아주 극적인 결말로부터 관객이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충분히 자신의 색깔대로 해석할 여지를 주었다는 점 때문이다. 나는 이 연극이 끝난 후 곱씹으면서, 고통스럽다 할 지라도 현실을 자각해야 하고 그 현실을 타개해나갈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재확인했다. 그리고 이 연극은 충분히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나와 생각이 다른, 어쩌면 극 중 딸이자 아내 그리고 주요 화자인 여자와 동일하게 '맘모스 같이 박제된 꿈'이라 할 지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극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여자의 마음에 동조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부인 역의 문형주, 남편 역의 오민석, 손님 역의 신용진, 부인의 엄마 역의 김시영 배우 모두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동시에 아주 직설적이게 내용을 전개해나가면서도 관객들이 충분히 생각하고 곱씹어볼 여지가 있는 소재들을 풍부하게 구현한 극단 공상집단뚱딴지의 연출도 인상적이었다.
가볍지 않지만 너무 무겁지도 않게, 관객 자신이 원하는 만큼 꿈과 희망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보물같은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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