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15 예술가청소년창작벨트 창작희곡 낭독 쇼케이스 [공연예술]

그렇다. 잘 듣겠다. 당신이 하는 말을. 말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도 잘 듣자고 하겠다.
글 입력 2015.12.1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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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할 때에는 쌍욕을 합시다.
오른쪽 뺨을 맞으면 정강이를 다섯 번 걷어차 줍시다.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으니 재미있게라도 지내봅시다.
그리고 비 오는 날 우산 없는 사람을 돌아봅시다.
 
Every day is like survival.
You're my lover, not my rival.
  - Karma Chameleon (Culture Culb)
 
- 작가의 말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는 어린이청소년극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작품 개발을 수행할 국립 연구소로 국립극단어린이청소년극단 설립을 목표로 2011년 5월 2일에 출범하였다. 우선 청소년 관객층에 대한 연구와 공연제작을 통해 청소년 연극의 새로운 방향성과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곳이다. 주요 사업으로는 청소년극 작품개발 및 현장 순회공연, 국립어린이청소년극단 사례 및 제작과정 연구 책 발간, 국제심포지엄과 이야기판, 교사 세미나, 젊은 작가·연출가·배우 육성을 위한 창작 인큐베이팅 작업으로, ‘예술가청소년창작벨트’, ‘작은극장 프로젝트’, 그리고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예술가탐색전’ 등이 있다.
  주요 레퍼토리로는 2011년 국립극단 첫 번째 청소년극 <소년이 그랬다>를 시작으로, <레슬링 시즌>, <빨간 버스>, <노란 달 : 레일라와 리의 발라드>, <타조 소년들>, <비행소년 KW4839> 등을 무대에 올렸다.
 
  먼저 세 명의 젊은 작가가 빚어낸 우리 안의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청소년 희곡으로 태어난 ‘2015 예술가청소년창작벨트’의 세 작품을 간략히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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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가미 (이라 작, 윤한솔 연출)
  
  아가미를 가지고 태어난 소년 목.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와 시선
 
  “난 물 속에 있는게 편해. 아니 물 속에 있는 편이 더 행복해. 정상적인 게 뭐길래 있는 것까지 도려내야해?”
 
  아가미를 가진 소년 ‘목’. 태어날 때부터 아가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목의 엄마조차도 그의 아가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목은 아가미를 제거하기 위한 수술을 앞두고 괴로워한다.
  자신이 오타쿠라는 것을 숨기고 사는 소녀 ‘비비’. 어느 날 엄마에게 숨겨두었던 코스프레 의상을 들키게 되고, 엄마는 비비가 소중히 모아 온 물건들을 모두 망가트린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으로부터 막다른 길로 몰린 두 사람은 이 세상에서 탈출하기로 하고 무작정 바이칼 호수로 길을 떠난다. 목의 아가미를 제거하기 위해 의사들은 도망친 목과 비비를 추격하고, 비비는 마지막 남은 코스프레 의상을 입고 무기를 든다. 목과 비비는 헤매면서도 바이칼 호수를 향해 계속 걷지만 의사들은 계속해서 쫓아오는데...
  과연 목과 비비는 바이칼 호수에 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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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날아가 버린 새 (장지혜 작, 전인철 연출)
 
  연민의 굴레. 외면할 수 없는 동요
 
  “내가 애 하나 낳자고 뭘 포기하는데.”, “뭘 포기하는데? 담배? 본드? 술?”, “내 이름”
 
  훌쩍 떠나버린 엄마를 기다리며 작은 쪽방에서 아빠, 동우와 단 둘이 살아가는 소년, 용식, 한때 유일한 탈출구와도 같았던 본드를 끊기 위해 노력하지만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다. 금단현상으로 인한 환각상태 속에서 찾아오는 엄마, 미리의 존재를 밀어내려 하지만 용식은 차마 엄마를 밀어낼 수도, 외면할 수도, 잊은 수도 없어 늘 고통스럽기만 하다. 어느 날, 단짝친구 강호가 찾아와 여자친구, 예리와 자신 사이에서 아이가 생겼다고 말하고 용식은 아이가 자신처럼 불행하게 살아갈까 우려스러운 마음에 강하게 반대하지만, 강호와 예리는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결정한다. 용식은 아이를 지켜나가는 둘의 모습을 통해 미리의 또 다른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용식은 과연, 환상 속 족쇄와도 같았던 ‘엄마’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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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등어 (배소현 작, 이래은 연출)
 
  친구가 되는 가장 멋진 방법
 
  “경주야, 우리 고등어 보러 갈래? 살아 있는 고등어”
 
  지호는 평범한 열일곱 살. 일기장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쓴다. 별 탈 없이 학교에 다니지만 친구가 별로 없고, 지금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방법을 알지 못해 답답하다. 지호와 같은 반인 경주는 교실이라는 작은 세상에서 지호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산다. 그런 경주를 남몰래 동경하던 지호는 어느 날 용기를 내어 경주에게 편지를 쓰고, 무관하던 두 사람은 그렇게 친구가 되어 서로를 통해 조금씩 자신을 배워간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지호는 경주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황급히 뛰쳐나간다. 경주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같은 밤을 함께 지새운 두 사람은 다음 날 첫 차를 타고 살아있는 고등어를 보러 바다에 간다. 두 사람은 정말로 살아있는 고등어를 볼 수 있을까? 조금은 무모한 여행의 끝에서, 지호와 경주는 무엇을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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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공연이 아닌 낭독 공연을 정식적으로 본 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그냥 배우들이 앉아 대본을 보고 읽는 말 그대로 ‘낭독’ 공연이라고 생각했는데, 관객석이 신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관객석 사이사이에 대본 거치대와 배우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고 서로를 마주보게끔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냉큼 낭독할 배우가 앉는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시작하길 기다렸다. 신기한 건 관객석 배치뿐만이 아니었다. 중앙이 비어 있었는데 이 곳을 vcr 빔을 쏘아 배경으로 삼고 무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점이었다. 낭독을 하는데 있어, 자리에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하고 무대를 돌아다니며 관객들의 귀와 눈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었다. 기타를 들고 있던 배우는 기타도 치고 각 상황에 맞는 노래도 부르면서 장면들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어 우리들의 이해를 높이는데 기여한 것 같았다.
 
 
  첫 번째 낭독공연 <아가미>
 
  아가미. 소재부터 굉장히 신선했다. 초반에 아가미를 가지고 태어난 ‘목’ 역할을 맡은 배우가 무대 중간에서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물에서 갓 건져 올라와 땅 위를 힘겹게 돌아다니며 아가미를 팔딱거리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듯한 광란의 몸짓은 연기를 하는 배우라기보다 그냥 한 마리의 물고기 그 자체였다. 아가미를 비정상이라고 치부하며 어떻게든 제거하려는 의사와 엄마, 도대체 정상인 것이 뭐냐고 도망치는 목과 새로운 오타쿠 친구 비비. 극의 중반부는 비비가 코스프레를 하며 총을 쏘고 폭턴을 터트리는 장면으로 다소 공상과학영화 같은 느낌도 들었다. 바이칼 호수라는 어딘지도 모르는 목적지를 향해 둘은 계속해서 달리고, 끝끝내 아가미를 지키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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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낭독 공연 <날아가 버린 새>
 
  학창시절 누구나 다 겪어 본 적 있을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불안한 심리상태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는 자신만의 아픔. 그것을 검은 봉지 안에 가둬두고 자신만이 들여다보고 아파하면서도 위로 받는 것. 누구에게 자랑하지도 못하면서 버리지도 못하는 것. 흔히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 한다. 청소년기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청소년기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작품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가장 청소년다운 극이었으면서도 가장 공감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관객들 중에 실제 청소년인 중고등학생들도 많았는데 이 두 번째 공연이 끝나고 하는 이야기를 얼핏 듣게 되었다. 배우들이 쓰는 일상적인 언어(비속어나 은어)가 살아있어서 우리가 쓰는 말이어서 이해하긴 쉽고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본드나 음주, 임신과 같은 비행(?)과 같은 부분은 나처럼 공감이 덜 가는 모양이었다. 집을 나간 엄마와 친구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아이 역할을 한 배우가 연기한 연출은 마음에 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다르지만 어떻게 보면 둘 다 ‘엄마’라는 굴레를 가진 역할로, 중간 중간 어느 역할인지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오히려 좋았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런 연출 방법에 대한 질문이 나왔는데, 사실 처음에는 여자 배우가 한 명밖에 없어서 두 역할을 한꺼번에 맡게 된 것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우호적인 반응이 많았다고 해서 놀랐다고 했다. 이 희곡을 쓴 작가는 이 이야기가 사실은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한 것이며, 주인공 용식이가 하는 대사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투영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상처로 가득한 봉지가 이제는 행복으로 가득 차고,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용식이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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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낭독 공연 <고등어>
 
  성격이 정반대인 두 친구의 이야기이다. 한 명은 흔히 말하는 날라리, 한 명은 너무나 내성적으로 일기장을 유일한 친구로 생각하는 아이. 이 두 아이는 친구가 되었다. 고등어 튀김과 자반은 좋은데 비린내 나는 무 조림은 싫다는 말이 오가고, 가정 폭력으로 가출한 날 둘은 어느 날 살아있는 고등어를 보고 싶다고 무작정 통영으로 출발한다. 마지막에 고등아가 날아가는 모습이 조명으로 처리되었는데 좀 더 꼬리를 흔들고, 꿈틀거리면서 날아갔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통영으로 가서 고등어 회나 먹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배우들이 관객석에 앉아 있다가 무대로 나오면서 극이 시작된다. 고등어 모형을 손에 들고 세 명의 배우가 돌아가면서 고등어의 특성들을 읊기 시작했다. 푸른 등과 은빛 배는 살아남기 위한 보호색이며 잡히면 온 몸의 힘이 다 소진될 때까지 격렬하게 움직이다 까무라쳐 죽어버린다는 고등어. 작가는 고등어의 푸른 등과 은빛 배, 격렬한 몸부림에서 청소년들의 펄떡이는 생명력을 엿보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청소년들은 빛나는 성장의 시기를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으며, 이 작품이 지금의 청소년들과 만날 수 있고 또 그래서 살아 숨쉬는 삶의 순간을 찾아 함께 헤엄칠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덧붙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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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닥 파닥 뻐끔 뻐끔. 비릿하지만 싱싱한, 비록 어설프지만 생동감 있는, 살아 있는 날 것의 목소리들로 가득했던 공연들이었다. 세 작품을 보고 꿈틀거리고 싱싱한 날것의 생동감을 가슴에 가득 담고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법적으로 아직 청소년인 나이라고 자칭하는, 또 법적으로 어른이 된지 얼마 안 된 나도 함께 공감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대개 ‘청소년’ 하면 어른의 시선에서 보거나 뻔한 이야기로 마무리 되는 작품이 많은데, 이번 작품들은 일상적인 것을 일상적이지 않게 풀어내는 이야기였고 공연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관람객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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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창작희곡낭독공연의 장을 마련해 준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팀에 감사드리며, 작품을 준비하느라 고생한 작가, 연출가, 배우, 스텝 모든 분께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직까지 어린이청소년극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앞으로도 이렇게 훌륭한 어린이청소년극들이 자주 올라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
잘 듣겠다. 당신이 하는 말을.
말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도 잘 듣자고 하겠다.
말하기보다는 잘 듣자고 하겠다.
진정 애써보겠다. 듣는 일에.
그리고 두리번거리겠다.
그리고 바지주머니 속 주먹을 부끄러워 하겠다.
 
- <아가미> 연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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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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