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심우영 (아트인사이트 편집팀장)

1,2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국민악파의 등장, 무조음악의 도래 등 사회적으로, 음악적으로 격동의 시기를 산 라흐마니노프. 불안정한 시대 속에서도 라흐마니노프는 서양과 러시아 클래식음악의 전통을 이어간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다.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뛰어난 지휘자이기도 했던 라흐마니노프는 심포니와 독주악기를 결합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었고 그 열망은 4개의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으로 완성이 되었다. 공식적으로 그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분류되는 작품은 4개이지만 오늘은 그의 5번째 협주곡이라 불리는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이 캐치한 동기는 리스트, 브람스, 루토슬라브스키, 보리스 블라체 등 후대의 많은 작곡가들에 작품에도 차용되었기 때문에 이 동기를 이용해 새로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작곡가는 리스트와 브람스 이후 나오지 않을 듯이 보였다. 

허나 1934년 멜로디의 귀재였던 라흐마니노프의 손을 거쳐 이 동기는 피아노 협주곡의 형태로 변모되었고, 전에 없는 신선함까지 입게 되었다. 원작자인 파가니니가 카프리스 24번을 통해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매력을, 브람스가 피아노의 매력을 극대화시켰다면, 라흐마니노프는 악기와 악기 사이의 전체적인 앙상블에 중점을 두어 마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경쟁하듯, 대화하듯 연주되는 것이 특징이다.

구성에 있어서 빠르게(1~10변주), 느리게(제11~18변주), 다시 빠르게(제19~24변주)로 이루어져 있어 전형적인 협주곡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그 스스로도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인 만큼 뛰어난 기교와 감수성,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풍부한 색채를 자랑한다. 

경쾌하고 강렬한 멜로디와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서정성, 그리고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달으며 휘몰아치는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곡으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필레오폴드 스토콥스키 지휘로 초연되었다. 미국 망명 후 근 10년간 작곡가로서 침체기를 겪었던 라흐마니노프가 말년에 남긴 걸작으로 20세기 작곡된 피아노 협주곡 작품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작곡한 마지막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 작품’으로 피아노협주곡 5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영상 :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피아노: 다닐 트리포노프)

얼마 전 지휘자 성시연이 이끄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마스터 시리즈로 열린 공연에서 연주된 한 프로그램이 화제를 낳았다. 공연 전부터 클래식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 프로그램은 바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5번”이었다. 잘 알려진대로 라흐마니노프 총 4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다. 그렇다면 그의 이름을 붙인 협주곡 5번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실제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위한 구상을 하긴 했지만, 그 것을 완성하지는 못했다. 새로운 피아노 협주곡을 위한 아이디어가 담긴 한 페이지 분량의 짧은 스케치를 발견한 라흐마니노프의 손자 알렉산더 라흐마니노프가 음악학자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알렉산데르 바렌베르크에게 이 짧은 스케치를 이용해 피아노 협주곡 작곡을 요청을 하면서 피아노 협주곡 5번이 탄생하게 되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이라 평가한 알렉산데르 바렌베르크는  편곡 작업을 통해 네 악장으로 구성된 교향곡 2번을 협주곡의 형식에 맞게 3악장으로 간추렸다. 원곡의 1악장의 서주 뒷부분을 피아노 카덴차 부분으로 녹여냈고 2악장 알레그로 몰토와 3악장 아다지오를 합쳐 협주곡의 2악장을 만들었다. 이렇게 느린 악장 중간에 스케르초가 나타나는 것은 라흐마니노프의 다른 협주곡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어서 해당 악장은 라흐마니노프 스타일을 잘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라흐마니노프 작품 특유의 웅장함과 화려한 피아노의 테크닉과 관현악과의 조화가 그대로 살아있는 이 작품은 2007년도에 발표되어 2010년 피아니스트 김정원의 협연으로 국내 초연되었다. 2012년에는 메이저 클래식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모폰(DG)을 통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동일한 연주자의 협연으로 음반이 발매되기도 했다.

영상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5번 (피아노: 데니스 마추예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