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생물성과 무생물성의 경계에서 재창조되는 이미지, 블라디미르 쿠쉬展 리뷰

글 입력 2015.02.06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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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트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문화예술 초대를 통해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블라디미르 쿠쉬전에 다녀왔다. 작년 12월 23일에 오픈했던 쿠쉬전은 2015년 4월 5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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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에 살고 있는 한 작가의 작품으로만 전시를 기획한다는 것부터 조금 놀라웠다. 전시에 가기 앞서 블라디미르 쿠쉬와 그의 작품에 대해 조사하면서부터 큰 기대를 품게 되었다. 오랜만에 미술관을 찾은 이유도 있었지만, 작은 컴퓨터 화면을 통해 작품을 몇 개 보는 것만으로도 작가의 독특한 발상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무의식과 욕망, 환상의 세계를 동화적 상상력으로 표현해내는 작가라고 소개된 쿠쉬는 말 그대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를 통해 현실에서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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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 Of Wander 24x21 Inches


블라디미르 쿠쉬는 살바도르 달리의 계보를 잇는 러시아의 초현실주의 작가다. 쿠쉬는 1965년 모스크바 생으로 어릴 때부터 예술적인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랐다. 7살 때부터 아트클래스를 다니면서 다양한 화풍의 그림들을 습작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초반에는 세잔느 등의 인상파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리다가 14세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이 돋보이는 그림을 그렸다. 러시아에서 군 제대 후 쿠쉬의 화풍이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부대 사령관의 지시로 프로파간다 성향이 짙은 벽화, 포스터 작품을 그리는 시간들이 작가 스스로 작업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쿠쉬는 1997년 러시아출신 작가들을 초대해 열린 'Union of Artist' 전시를 참여하면서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표현과 인상주의 모티브를 결합시킨 작품으로 공상적 인상주의의 시조가 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쿠쉬는 '사실주의(Real)'와 '은유(Metaphor)'의 합성어인 'Metaphorical Realism'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미술계의 독자적 위치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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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ve the Sea Level 46x26 Inches



쿠쉬의 독특한 분위기를 풍겨내는 화풍에 대해 '동화적 상상력'이 돋보인다는 말을 곱씹어보면,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발랄하고 경쾌한 동화의 느낌은 아니다. 세심하게 관찰한 듯, 사실적으로 표현된 대상은 몽환적이면서도 심오하다. 즉, 쿠쉬의 작품세계는 어른을 위한 동화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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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ration 34x20.5 In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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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ach 30.5x38 Inches



물론 쿠쉬의 상상력을 통해 현실에서의 제약으로 인한 억압을 해소시켜주는, 밝은 색채의 이미지가 돋보이는 작품도 많았다. 사실 블라디미르 쿠쉬전을 소개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처음에 몇 개의 작품만을 접했을 때는 쿠쉬의 화풍에서 기발하고 유쾌한 위트를 먼저 발견할 수 있었다. *데페이즈망 기법이 돋보이는 점이 르네 마그리트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데페이즈망 - 전치(轉置), 전위법 등의 뜻이다. 본래는 ‘나라나 정든 고장을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초현실주의에서는 어떤 물체를 본래 있던 곳에서 떼어내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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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master 39x29.5 Inches



하지만 막상 전시회에서 본 쿠쉬의 그림이 보여주는 세계는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서 좀 더 심오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전시장 입구에서 김경주 시인이 쓴 전시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이 담긴 글을 볼 수 있었는데, 그는 '이미지의 생물성'이라는 주제로 작품의 전반적인 부분을 해석하고 있었다. 그의 해석을 토대로 나는 쿠쉬의 작품에서 생물과 사물의 관계를 생각했다. 내게는 쿠쉬가 그리는 대상에서 '생물성'만이 두드러지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생물을 기계화하는 방식으로 생물성을 지우고, 다시 사실적인 묘사로 사물화된 대상에서 생물성을 발현시켰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난 존재는 생물성을 완전히 지울 수도, 단순한 사물로도 취급할 수 없는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겠다. 

앙드레 브르통이 말한 "두 개의 다소 어긋나는 현실의 병치"하는 초현실주의의 파열적인 방식처럼, 쿠쉬는 현실에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물의 병치를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고 있었다. 또한 이미지의 변이와 창출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군중이 출현하는 작품에서 쿠쉬의 세계관이 뚜렷하게 그려졌다고 느꼈다. 얼굴이나 형체가 명확하지 않은 사람들은 한 개인으로서의 의미가 지워진 느낌이다. 그런 개인의 의미가 지워진 군중은 기계를 작동시키는 하나의 목표로 향하고 있는데, 이 기계는 곤충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것을 거대한 곤충이라고 확신할 수도, 기계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무엇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대상에서는 쿠쉬의 상상력이 발현한 생동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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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s 26x20 Inches



쿠쉬가 만들어내는 생동성은 신화를 새롭게 해석하는 데서 발현되기도 했다. 쿠쉬는 밀랍으로 만들었다가 태양빛에 녹아내렸던 이카루스의 날개를 과일의 잎사귀에서 발견한다. 쿠쉬가 그리는 날개는 녹아내리고 추락하지 않는다. 다만 비상하지도 못하고 지상을 완전히 떠나지도 못한다. 

하나의 작품이 아닌, 전시되어 있는 여러 작품간에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가 조화롭게 펼쳐져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쿠쉬가 쓰는 색채가 서로 다른 분위기가 풍겨지는 작품들간에 조화를 이루어주기 때문이었을까? 쿠쉬의 회화를 하나의 이미지로 떠올린다면 '푸른 이미지'가 생각난다. 꼭 푸른색 계열을 쓰지 않아도 쿠쉬의 작품에서는 대체적으로 색채가 차갑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이런 차가운 색채를 기반으로 삼는 쿠쉬의 세계는 보면 볼수록 묘하고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작품 곳곳에 숨겨진 낮달이 쿠쉬의 세계를 더 몽환적으로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처럼 가벼울 때도 있고, 세밀한 부분까지 사실적으로 그려진 생물의 이미지가 묵직하게 다가오기도 하는 쿠쉬의 환상 세계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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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슬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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