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현미 찹쌀밥을 짓기 시작했다: 대학생도 잘 차려 먹습니다.[음식]

글 입력 2024.03.2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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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봉.jpg
조그마한 협탁에 놓인 밥솥과 전기포트. 내 살림 밑천이다.

 

 

 

1. 자취 2년 차, 밥솥을 선물 받았다


 

20살부터 시작한 타지 생활. 어쩌다 보니 기숙사 생활을 패스하고 거의 바로 자취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장 문제는 역시 밥을 해 먹는 것. 집에서 항상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만 먹다가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는 게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1학년 때는 거의 매일 약속이 잡혀 늘 외식을 했고, 그러다 보면 부모님이 보내준 반찬이며 각종 식품들이 냉장고에서 방치되어 결국 혼자 있을 때도 샌드위치나 간편식품을 사 와서 때우곤 했다.


21살이 되어서는 요리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건강 이슈. 바깥에서 파는 자극적이고 영양상으로 균형 잡히지 않은 음식을 계속 먹다 보니 가뜩이나 별로 좋지 않던 체력이 더 안 좋아지고 피부도 나빠지는 것 같아서 적어도 하루에 한 끼는 꼭 집에서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가장 처음에 도전했던 것은 계란찜. (물론 레시피는 엄마가 가르쳐 준 것이다) 전자레인지로 만드는 계란찜은 놀라울 만큼 쉽고, 맛있었다.


<전자레인지 계란찜 만들기>

 

준비물: 계란 2개, 물 반 컵, 소금 ⅓ 숟가락, 연두 ½ 숟가락

준비한 재료를 다 담고 나면 전체 용량의 ¼ 정도는 여유 공간이 남는 용기에 재료를 모두 넣고 젓가락으로 여러 번 저어준다.

전자레인지에 대략 2분 정도 돌려준다. (전자레인지 기종마다 출력 와트가 다르지만 보통 2분 정도면 충분하다)

꺼내보면 적당히 몽글몽글 뭉쳐있는 계란 물의 형태인데, 이때 젓가락으로 다시 골고루 저어준다. (치즈 계란찜을 원한다면, 이때 체다치즈 한 장을 위에 얹어준다)

다시 2분 돌려주면 완성!


자취방에서 친구들과 시험공부하다 밤을 새우고 밤샘 해장으로 계란찜에 계란 라면을 같이 만들어 먹고 시험을 치러 갔던 날 아침이 떠오른다. 밤새 활자와 싸우느라 느끼해진 속이 그나마 풀렸던 기분이었다.


계란찜 마스터 이후 조금씩 요리를 하는 것에 취미를 붙여서 엄마가 보내준 떡갈비를 활용해 아보카도 계란 샌드위치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등의 활약을 했다. 그리고 그런 음식 사진을 종종 찍어 보내던 딸이 기특했는지 2학년 2학기에는 엄마가 통 크게 큼직한 에어프라이어를 선물해 주었다. 좁은 자취방에는 어울리지 않는 세련되고 큼직한 에어프라이어는, 주로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탓에 잘 쓰지 않았던 1인용 인덕션의 자리를 대신 떡하니 차지했다. 이 이후 비약적으로 해 먹을 수 있는 (엄밀히 말하면 사다가 돌려먹을 수 있는 냉동) 음식의 양이 증가한 시기가 도래한다.


그리고 3학년 1학기. 자취 어언 2년 차를 맞이했다. 그때까지는 싸게 파는 미니 즉석밥을 대량으로 구매해서 쟁여놓고 돌려먹던 내가 갑자기 밥을 해 먹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인 것도 이때의 일이다. 자취를 이제 막 시작한 대학원생 친언니의 집에 놀러 가서 본 1인용 밥솥이 바로 그 원인이었다. 어릴 때 멀찍이서 보기만 했던, 쌀을 씻고 안치고 불려서 밥을 짓는 그 행위가 참 어려워 보여서 해볼 엄두도 내지 않았는데, 언니 집에 있는 작고 귀여운 밥솥을 보고 나니 나도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스스로 밥을 할 수 있지 않아야 하나, 라는 이상한 생각도 한몫했던했던 것 같다.


그렇게, 딸이 밥을 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자 엄마는 밥솥을 선물해 주고, 자취방에 오셔서 쌀 씻는 법과 물양 맞추는 법, 뜨거운 물로 쌀을 불리면 30분 만에도 불릴 수 있다,라인 것 등을  가르쳐주시고는 야무지게 흰쌀과 현미 찹쌀까지 시켜서 플라스틱 쌀통에 소분해주시고 돌아가셨다. 이렇게 나는 자취 2년 차, 따뜻한 현미 찹쌀밥을 지을 수 있는 어른이 된 것이다.

 

 

 

2.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 밥 해주기


 

밥솥을 선물 받기 전에도 집에서 누군가를 초대해 참 밥을 많이 차려줬다. 밖에 나가서 약속을 잡는 것보다 저렴하기도 해서 주머니 사정이 가벼울 때 집에서 밥 먹을래? 라고 해서 한 것도 사실 있지만, 주된 이유는 나에게 밥을 차려주고 대접하는 행위란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받은 사랑의 형태로 사랑을 한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집은 거의 외식을 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절약해서 살림을 운영해 나가려는 엄마의 계획도 물론 있었겠지만,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고 자란 기억이 얼마나 한 사람에게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던 엄마 나름의 사랑 방식이기도 했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바빴던 엄마의 엄마, 즉 할머니를 대신해서 어린 두 동생에게 초등학교 때부터 밥을 해 먹였다고 한다. 평생 손수 밥 한번 차려 먹은 적 없던 장남인 아빠와 결혼해서도 작은 신혼집에서 오므라이스며, 잡채를 만들어내고, 돈가스를 튀기고 심지어 카스텔라까지 오븐에다가 해서 만들어 먹였다고 했다. 나도 그런 사랑을 받으며 컸다. 고등학교 때 7시까지 스쿨버스를 탔어야 했는데, 딸 아침을 챙기기 위해서 매일 6시에 일어나 3년 내내 밥을 차려주셨다. 그것도 체중에 예민했던 딸을 위해 각종 나물과 단백질 균형을 맞춘 건강식으로.


그러다 보니 서울에 와서 요리를 하기 시작하면서는 줄곧 없는 요리 솜씨라도 사람들을 초대해서 밥을 먹이곤 했다. 지금은 헤어졌지만, 과거의 연인에게도 밥을 차려줬다. 집에서 밥을 해 먹지 않고 거의 배달이나 냉동식품을 먹는다는 게 왠지 마음에 걸려서 (물론 지금 생각하면, 그건 그냥 그 가족의 삶의 방식인 거다. 옳고, 그른 게 아니라) 밥을 만들어 먹였다. 그 아이는 알았으려나, 그게 내 나름의 사랑 방식이었음을.


밥솥을 선물 받고 새 학기 개강을 맞이한 이래로 이틀에 한 번은 밥을 하고, 어쩔 땐 연속으로 3일 밥을 지었다. (아침마다 샤워하고 나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밥을 씻고 불린 후 안치는 대학생, 너무 멋있지 않습니까?) 친구들을 초대하고 밥을 차려내는 것은 그 전과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그래도 즉석밥이 아니라 약속 시간에 맞춰 지어놓은 따끈한 새 밥을 먹이는 게 괜스레 뿌듯해지는 것이었다.

 

 

민서 바.jpg
나름대로 열심히 차려냈는데 사진이 영 이상하다.

 

 

대학교에 합격하자마자 고향에서 잡힌 과외를 2년 동안 했다. 그 친구가 올해 내 학교 근처의 대학교에 입학했고 기숙사에 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나 마라탕을 먹는데, 매일 외식을 하고 기숙사에서는 컵밥이나 샌드위치로 밥을 대충 때운다는 말을 듣고는 집에 데려와서 새로 밥을 해 저녁을 차려 먹였다. 현미 찹쌀밥, 순두부찌개, 스팸 구이, 계란찜. 그 아이도 항상 집에서 어머니가 밥을 해주시는 가족의 장녀였는데, 타지에서 집밥을 오랫동안 못 먹어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내가 고작 2살 많지만, 그래도 고향과 떨어진 서울에 의지할만한 어른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날 누군가에게 뚝딱 따뜻한 밥을 차려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더욱 다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현미 찹쌀밥을 만들면서 조금 더 어른이 되고 있다.


 

 

3. 오늘도 집에서 나를 위한 밥을 한다


 

그렇지만 이런 나라도 매일 매일 약속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집에서 나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집 청소도 하고, 경제신문도 읽고 과제도 한다. 그렇지만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할 때도 잘 차려 먹으려고 노력한다. 직접 지어 소분해 놓은 밥을 다시 레인지에 데우고, 같이 먹을 간단한 국이나 반찬을 만들고 식전 과일이나 야채도 꼭 챙겨 먹는다. 나 혼자의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나에게 차려주는 밥에도 정성을 기울이려 하는 것이다.


사실 작년까지는 그렇지 못했다. 외로움을 많이 타서 혼자 있는 시간에는 에너지를 낼 수 없고, 약속이 없으면 집도 잘 치우지 않고 밥도 대충 때우곤 했다. 혼자서의 시간을 잘못 보내는 내가 어쩔 땐 한심스럽기도 했다. 왜 나는 지나치게 관계 의존적인 것 같은지, 왜 이렇게 귀는 얇고 줏대는 없는 것 같은지.


“그런데 말이야, 너처럼 사람 속에서 잘 어울리는 사람이 혼자 보내는 시간까지도 잘 보낸다면 너의 그러한 성격은 엄청난 너의 강점이 될 거야.”


(지나친 마마걸 같지만) 이번 겨울방학, 엄마가 이렇게 말해주었다. 엄마는 말했다. 자신은 상처받을 것 같아서 사람과의 관계 맺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오히려 가족이라는 울타리 내에서는 그토록 노력하고 자신만의 안락한 왕국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고. 하지만 나의 딸인 너는, 사람을 좋아하는 밝고 사랑스러운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혼자 서는 연습을 한다면 그 에너지가 너의 큰 강점이 될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에게 사랑을 더 많이 주자고. 그래서 그 사랑을 먹고 커진 내가 더 많은 사랑과 에너지를 가지고 타인에게 또 밥을 차려주며 사랑을 하자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나를 위해 집을 청소하고 따뜻한 밥을 지어 먹여야 한다. 그래서 역시나, 오늘도 나는 나를 위해서, 쌀 1컵과 현미 찹쌀 1컵을 가지고 따뜻한 밥을 지어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다.



[김정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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