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이를 뛰어넘은 진정한 친구- 영화 헤롤드와 모드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1.16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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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롤드와 모드' (1971)>
 
감독 : 할 애비쉬
출연: 루스 고든, 버드 코트
 

 
죽는 게 취미인 소년이 있다. 18살인 소년 해롤드는 시도 때도 없이 죽는 시늉을 한다. 죽는 방법도 가지가지이다. 목을 매달기도 하고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기도 하며 동맥을 그어 화장실 전체를 피투성이로 만들기도 한다.  해롤드는 젊은 나이에도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 같았다. 초점 없이 늘 멍한 그의 표정에서는 삶에 대한 그 어떠한 기쁨이나 희망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거부한 채 해롤드는 그렇게 죽음에 대한 상상과 기대로 자신을 내몰고 있었다.  오죽하면 죽음을 동경하던 소년, 해롤드의 또 다른 취미는 모르는 사람 장례식 방문이다. 여느 때나 방문하던 낯선 이의 장례식에서 해롤드는 조금 수상한 할머니 '모드'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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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것'이 취미인 해롤드-

 
 반대로, 삶을 찬양하는 할머니가 한 명 있다. 80세인 할머니 모드는 살아있는 모든 것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모드는 살아있는 순간순간에 감사함을 느끼고 순간순간 자신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살아간다. 모드는 삶의 충만함으로 가득 차있다. 그래서 모드의 모든 순간은 약진하는 생명처럼 신선하고 팔팔하다. 영화에서 모드가 가로수에 있던 나무를 통째로 뽑아 숲에 심어주는 장면이 있다. 경찰이 뒤에서 쫓아오는데도 불구하고 화려한(?) 운전 실력으로 경찰을 따돌리는 장면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모드는 말한다. "도덕에 묶이지 않으면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사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나 특정한 행위 때문에 하고싶은 일을 포기해야 할 때가 많다. 모드는 이러한 사회적 상황을 유쾌하게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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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할머니 '모드'-
 
 해롤드와 모드의 만남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죽음을 얼마 앞두지 않은 노인 '모드'보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소년 '해롤드'가 더 죽음에 다가가기를 원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해롤드는 대책없이 밝은 모드와 만나면서 살아있다는 것에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어느 날 해롤드와 모드는 꽃밭을 거닐면서 자신이 무슨 꽃과 닮았는지 이야기를 하게 된다. 모드가 해롤드에게 '너는 무슨 꽃이 되고 싶니?' 라고 묻자 해롤드는 눈 앞에 있는 수많은 똑같은 꽃들을 가리키며 '이들 중에 하나요. 모두 다 똑같잖아요'라며 말끝을 흐린다. 모드는 해롤드의 답변에 의아해하며 말한다. '봐. 비슷해보이지만 어떤건 통통하고 어떤 건 왼쪽으로 자라고 어떤 건 오른쪽으로 자라지. 꽃잎이 있는 것도 있어. 자세히 보면 다 달라.' 자연과 생명에 대한 모드의 관심과 사랑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다. 예전에 맡았던 향기를 보관해서 해롤드에게 맡게 하는 장면은 모드가 얼마나 그 순간을 사랑하고 기억하고 싶어하는 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드가 과거에만 갇혀사는 것은 아니다. 모드는 현재를 즐겁고 열렬히 살아간다. 후에 기억했을 때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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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을 거닐고 있는 '해롤드'와 '모드'-
 
 
 모두들 짐작하겠지만 해롤드와 모드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영화가 나왔던 1970년 대를 감안하면 노인과 소년의 사랑은 충격적일 수 밖에 없었다. (사실 현재에도 충격적인 소재임에는 틀림없다.) 엄마가 소개해준 약혼자 앞에서 엽기적인 자살쇼를 벌이던 해롤드가 모드와의 결혼을 진지하게 선언하는 장면이 기억이 난다. 수십년의 나이차는 그들에게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해롤드는 자신과 너무 다른 모드를 보며 매력을 느꼈고 더 알고 싶어졌다. 서로의 취미를 공유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게 진정한 '친구'이자 '애인'이 되었다. 모든 관계를 거부하던 해롤드는 모드를 통해 나이를 넘은 진정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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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롤드와 모드-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모드를 만난 해롤드. 모드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 해롤드가 자살을 택하지 않고 삶을 택한 것은 아마 모드가 바라고 우리 모두가 바란 그림일지도 모른다. 죽고 싶어하던 해롤드는 삶을 택했고 삶을 발랄하게 즐기던 모드는 80세가 되던 해에 죽음을 택했다. 혼자 남은 해롤드가 넓은 들판에서 모드와 함께 부르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바뀐 해롤드와 모드의 처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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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드가 세상을 떠난 후, 혼자 노래를 부르는 해롤드-
 
 
 
Well, if you want to sing out, sing out
노래를 부르고 싶다면 부르세요
And if you want to be free, be free
자유롭고 싶다면 자유로워 지세요
cause there's a million things to be
왜냐하면 당신이 될 수 있는 수만가지 것들이 있기 때문이죠
You know that there are
당신이 그것들이 있다는 걸 알아요
And if you want to live high, live high
사치스럽고 싶으면 사치롭게 사세요
And if you want to live low, live low
평범하게 살고 싶으면 평범하게 사세요
cause there's a million ways to go
왜냐하면 당신이 될 수 있는 수만가지 것들이 있기 때문이죠
 
 
 
PS) 해롤드와 모드가 연극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연극배우 박정자와 배우 강하늘이 해석한 해롤드와 모드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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