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발달장애인 복지관에서 보조 교사로서 봉사를 하다 보면 유치부부터 고등부까지 연령대를 막론하고 각자 하고 싶은 얘기가 아주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콧물이 차 숨쉬기 어렵다거나, 급식이 맛없다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다거나, 다른 놀이를 하고 싶다거나. 대개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다만 신체적 제약으로 이를 표현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하루는 점심 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인솔하여 급식실로 이동하려 하는데, 한 유치부 아이가 교실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며 버티고 나섰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묵묵부답, 내 품에 안기기만 했다. 한참을 어르고 달래 겨우 급식실에 자신보다 키가 큰 사람이 많아 무서워서 교실에서 밥을 먹고 싶어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전하지 못해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었다. 만약에 내가 이때 AAC를 알았더라면 좀 더 빨리 알아차렸을까? 급식실, 싫어요, 교실, 먹어요. 이 네 어절이면 충분히 소통이 잘 되었을 텐데 말이다.
알아 보자, 보완대체의사소통
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줄여서 AAC. 우리말로는 보완대체의사소통이다. 말로 의사소통하는 데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되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이때 몸짓, 그림, 음성 등 다양한 형태로 글과 말을 대체할 수 있다. 우리가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AAC로는 수어가 있다. 수어는 비보조 의사소통 방식으로서, 다른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손동작만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수어 체계를 모르더라도,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타인과 손짓과 표정으로 의사소통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보조 의사소통 방식은 기본적으로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려 표현하는 방식에서부터 기호나 그림이 띄워진 화면에서 원하는 아이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등의 보조 도구를 필요로 한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에서 주인공 '보비'가 언어치료사 '뒤랑'과 알파벳이 적힌 판과 눈 깜박임을 엮어 단어를 만들고, 문장을 만들어 책을 쓰는 것도 AAC를 활용한 예이다. 이렇듯 AAC는 발달장애나 자폐 스펙트럼 등 선천적 장애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후천적 뇌손상, 치 등의 질환을 가진 이들의 소통 방식이 된다.

열어 보자, 보완대체의사소통
다큐멘터리에는 차지 증후군과 자폐 범주성 장애, 뇌병변 장애를 가진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태블릿 화면의 아이콘을 누르면 기기에서 음성이 나와 원하는 것을 대신 말해주는 방식의 AAC를 사용한다. 처음부터 이를 잘 사용하기란 어렵다. 처음에는 과자, 장난감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주로 시작 후, 이를 반복하면서 점차 복잡한 문장으로 표현의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 AAC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점차 간단한 단어는 직접 말하려고 하는 등 언어 발달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얻기도 한다.
이들의 AAC 사용을 돕는 이들의 태도도 돋보인다. 의사소통은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경청의 자세를 가지고자 한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때까지 조급해 하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도 그들의 표현 방식을 배우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의사소통 수단을 갖게 된 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기도 하고, 일상적인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새해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야지, 우리 모두가 세우는 계획 말이다. 스스로 점심 메뉴를 고르고, 가고 싶은 곳을 말할 수 있게 되면 삶의 태도도 자연히 적극적으로 변한다. 이는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권리도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점을 다시금 일깨운다.
겪어 보자, 보완대체의사소통
보건복지부 장애인등록 현황에 따르면 2022년 12월 말 기준 등록된 장애인 수는 2,652,860명이며, 이 중에서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있는 장애 유형은 2,152,179명으로 전체 장애인의 약 81%를 차지하고 있다. 등록된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장애인과 함께 소통해야 하는 비장애인 보호자도 AAC 수요층으로 분류될 수 있다. AAC는 누구나 사용 가능하다.
결국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은 궁금해 하는 것에서 피어난다. 상대의 말을 듣고 싶고, 생각을 알고 싶고, 무엇을 불편해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다는 마음 말이다. 보완대체의사소통은 그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기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질문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에 가깝다.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며, 표현이 느리다고 해서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우리는 종종 소통의 어려움을 개인의 한계로 돌린다. 그러나 AAC를 마주할수록 깨닫게 된다. 소통의 실패는 대개 표현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듣는 사람이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급식실이 무서워 교실에 남고 싶었던 아이의 마음은 처음부터 확고했지만, 내가 그 언어를 읽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뿐이다.
AAC는 말을 대신해 주는 도구이기 이전에, 관계를 다시 설계하는 장치다. 상대가 자신의 속도로 말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 주고, 그 말이 완성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일. 그 과정에서 비로소 의사소통은 기능을 넘어 존엄의 문제가 된다. 자신의 욕구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자신의 삶에 대해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가 AAC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언젠가 말을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이미 우리 곁에 있는 언어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들리지 않는 말, 느리게 도착하는 문장, 버튼과 그림과 시선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 그 모든 언어 앞에서 멈춰 서서 묻는 것.
나는 지금, 당신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