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의 그림은 내게 특별하다.
어릴 적 아버지 손을 잡고 방문한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태양 아래 양산을 쓰고 있는 한 여자의 그림을 보았는데 나는 처음으로 그림에서 햇빛의 따스함과 눈부심을 느꼈다. 짧고 굵은 붓터치와 선명한 색들. 화가는 찰나의 순간, 자신이 빛에서 포착한 따스하고 눈부신 느낌을 고스란히 전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인상파의 그림은 이렇게 순간에 대한 포착을 담고 있다. 시간의 순간성에 대한 포착, 그 덧없는 순간에 대한 감흥이 느껴지는 그들의 그림에서 나는 인간 삶이 지닌 유한성을 발견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인상파의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고 인상주의에 관한 여러 서적들을 읽어보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읽어왔던 것은 인상파에 관한 이론서에 가까웠기에 그 배경에 있는 화가의 삶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한 권으로 읽는 인상파'는 위대한 그림 뒤에 있는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인간으로서 경험한 고뇌와 고통, 사랑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처음에는 두께가 있는 책이라 느꼈지만, 대화 형식으로 흥미롭게 진행되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책은 인상주의에 영향을 준 화가들로 구성된 1부, 인상파가 활발히 활동하던 시대의 화가들로 구성된 2부,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포스트 인상주의 화가들로 구성된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인상파의 정신적 지주로 언급되는 쿠르베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동시대의 평범한 노동자들의 일상을 꾸밈없이, 더 나아가 일종의 거대한 역사화처럼 표현했다. 그림이 살롱전의 혹독한 평가를 받은 뒤에도 그는 보란 듯이 '리얼한 육체'를 그려서 내놓는 배짱 있는 화가였는데,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마음은 '리얼리즘 선언'에서 잘 드러난다.
"나는 세상의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과거와 현재의 예술을 배웠다. 전자를 따라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며 후자를 모방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 내 시대의 풍속과 사상과 풍경을 내 자신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번역하는 것. 화가일 뿐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 한마디로 살아있는 예술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 나의 목적이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그는 역사상 최초로 본인의 작품을 모아서 만든 개인전을 열었고 이것은 훗날 살롱전에 대항해 독자적으로 전시회를 열었던 인상파 후배들의 정신으로 이어진다.
2부의 바지유 편에서는 인상파 화가들이 아지트에 모여 함께 그림을 그리는 이야기, 그들의 첫 전시회를 계획하는 과정이 상세하고 재미있게 설명되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던 바지유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의대에 진학했지만 그림에 관심이 깊었던 바지유는 글레르의 화실에서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를 알게됐고 이들에게 세잔과 피사로를 소개해 주었다. 인상파 화가들의 연결고리 중심에는 바지유가 있었던 것이다. 살롱전 출품에 번번이 실패하며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친구들과 달리 부모님에게 넉넉한 돈을 송금받고 있던 바지유는 인상파 친구들이 함께 모여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일종의 '아지트'를 빌리기도 했는데 그들은 이곳에 함께 모여 동일한 소재를 두고 그림을 그리거나 서로가 서로의 모델이 되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책에는 그 예시로 시슬레의 <날개를 펼친 채 죽은 왜가리>, 르누아르 <날개를 펼친 왜가리를 그리는 프레데릭 바지유의 초상>의 그림 사진이 나온다.
바지유는 살롱전에 낙선한 친구들의 그림을 구매해주기도 하면서 물질적으로 인상파 친구들을 지원했고 전시회장을 빌리기 위해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등 인상파 전시회가 실현되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1870년에 발생한 보불전쟁에서 전사하면서 자신이 계획했던 ‘최초 인상파 전시회’를 보지 못했다. 훗날 마네는 인상파 화가들이 그려진 그림에 바지유를 그려 넣으면서 바지유를 추억했는데 이 부분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바지유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3부 ‘포스트 인상주의’ 편에서는 예술가 공동체를 꿈꿨던 고흐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농민의 화가로 알려진 밀레에게 깊은 감동을 받아 노동자의 삶을 그리던 고흐는 그 열정이 지나쳐 일하는 사람들을 귀찮게 했고 그들은 더 이상 그림의 모델이 되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파리로 건너간 고흐는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인상파 화가들을 알게되었고 동료 화가들을 불러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생활하기 위한 아지트를 구상하며 남프랑스에 ‘노란 집’을 빌렸다. 이때 이 집의 식당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 '해바라기'다.
하지만 멋진 아지트에서 예술가들의 공동생활을 꿈꿨던 고흐의 마음은 다른 화가들에게 충분히 전해지지 못했던 것 같다. 동생 테오가 생활비 전부를 지원해주겠다고 설득한 끝에 고갱이 '노란 집'으로 이사 오게 된다. 하지만 고갱은 고흐와 많은 면에서 달랐고 계속해서 다투게 된다. (고흐는 그런 고갱이 도망칠 것을 걱정하며 한밤중에 고갱의 방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고갱은 이런 것을 견디지 못하고 노란 집을 떠나버렸다.
고흐의 여러 에피소드를 보면 그는 애정과 사랑의 크기가 매우 큰 사람이었던 것 같다. 상대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의 충만한 사랑의 열정이 흐르고 있기에 그의 세상은 화염처럼 휘몰아치고 일렁이는 모습이었을까.
책의 후반부에는 고흐의 '잘린 귀' 사건과 그의 죽음에 관한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고흐의 귀가 당시 얼마나 잘려나갔는지 알 수 있는 그림도 실려있다. (이 책이 얼마나 상세한 에피소드를 다루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마지막 고흐의 죽음에 관한 부분은 읽고 나면 마음이 어지러워 잠을 자기 어려우니 마음이 단단할 때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