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날이 차다.

해는 짧다.

일은 고되고.

사람은 고프다.

 

사랑이, 하고 싶다.

 

하지만-

 

 

*

드라마에 대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식먹으며 음담패 설짤(아트인사이트).jpg

 

 

대도시는 잔인한 곳이다. 주말마다 클럽에 수많은 남자들이 모이지만, 이 중에 괜찮은 사람을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할 확률은... 글쎄. 그건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성인이 되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자비한 세상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잔뜩 취하고, 남자를 품평하고, 젊음을 낭비하는 것뿐이었다.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中>

 

 

대한민국 청춘 남녀들의 일상은 으레 비슷하게 흘러간다. 기초교육을 지나 고등교육기관에 입학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가 지나간달까.

 

압축된 스트레스를 푸는 길은 몇 가지 없다. 술. 담배. 여자. 남자. (아님 말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누군가는 한순간 스쳐가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인연으로 지나가고. 누군가는 평생을 잊지 못할 어떤 강렬한 느낌으로 머리에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느끼게 되는 감정들은-

 

호기심. 설렘. 호감. 두근거림. 사랑. 헌신.

 

익숙함. 따분함. 두려움. 불안함. 배신감. 혹은 증오.

 

 

애피1 첫 데이트 드란이브 싸함(아트인사이트).jpg

 

 

그의 사랑은, 규정속도를 지키는 자동차처럼 정직하게 다가왔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들은 많이 설레면서도 동시에 불안했다. 너무나 투명했기 때문에.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中>

 

 

서로 다른 우주를 겪은 두 사람이 만나는 과정은 실로 지난하다. 그 두 개인의 인생의 종착지가 같은 정류장이라 하더라도, 처음 만났을 그 당시엔 걸어가는 보폭이 다르기에.

 

누군가는 대책 없는 설렘을 느끼고 누군가는 이유 모를 불안감에 의도적으로 설렘을 억제한다. 그래도 괜찮다. 아직 젊으니까. '시행착오'라는 게 있으니까. 다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니까.

 

 

그 시절, 우리는 서로를 통해서 삶의 여러 이면들을 배웠다. 이를테면 얘는 나를 통해 게이로 사는 건 좆같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얘를 통해 여자로 사는 것도 만만치 않게 거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형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 그런데 나는 비겁한 인간이라, 나를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 사랑을 감당할 용기가 없었던 거 같아. 미안해.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中>

 

 

서로 다른 우주를 살아가던 이들은 깨닫는다. 다른 우주가 있다는걸. 그 '새로운' 우주가 나의 '원래' 우주에 영향을 미친다는걸. 그렇게 한층 어른이 되어간다.

 

여기서 잠깐.

 

이들이 어른이 되어간다고 해서, 어른이 된 것은 아니다. 삶은 인간 개개인이 단숨에 통찰할 수 있을 정도로 평면적이지 않거든. 그렇게 아름답다고 여겼던 순간들이, 여러분의 인생에서 찰나에 불과했다는 걸 알게 되거든.

 

 

그의 우주 속에서는 사랑과 증오, 애정과 불안이 한 쌍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불안은 내게 익숙한 분노를 다시 불러일으켰다.

나를 두려움의 세계로 몰아넣고, 방치해 둔 사람에 대한 분노를.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中>

 

 

사람이란 족속은 입체적이다. 생김새가 3D라는 웃기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A로 인해 B라는 결과가 촉발되었음에도, C에 책임을 전가하는 굉장히 모순적인 메커니즘을 지닌 존재가 당신, 나, 우리라는 인간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니다. 어릴 적 가부장적 가정에서 자란 성심 착한 아이가 답습한 행동거지를 타인에게 자행했다고 하자. 그래서 그 관계가 어그러졌다고 하자. 그 아이가 책임을 전가할 대상이 필요해졌다고 하자. 타고 타고 타고 들어가서, 그 책임은 조부에게까지 닿을 수 있다. 혹은 이를 방관한 누이, 어미에게까지 닿을 수 있겠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을까. 누구에게 잘못이 있을까.

 

 

그의 우주 속에서는 사랑과 증오, 애정과 불안이 한 쌍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불안은 내게 익숙한 분노를 다시 불러일으켰다.

나를 두려움의 세계로 몰아넣고, 방치해 둔 사람에 대한 분노를.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中>

 

 

나를 관조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하자. 다른 누구에게도 책임을 넘기지 않고, 온전히 당신 스스로의 자아, 우주를 만들어 내는 데에 성공했다고 하자. 다른 누군가에게 흔들리지 않겠다 다짐했다고 하자.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자.

 

끝이 아니다.

왜냐고?

 

 

애피6 다시 냉랭해 진둘(아트인사이트).jpg

 

 

주말에는 좀 쉬지?

나는 회사 다니는 게 쉬는 거고 이게 일하는 거야.

저번 주말에도 내내 작업했잖아. 나랑은 언제 놀아줄 거야?

...우리 매일 같이 있잖아.

같이 있는 게 같이 있는 게 아니잖아.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中>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 때문이다. 기껏 구축한 자신의 '자칭' 흔들리지 않는 우주와, 기껏 구축했을 그의 '자칭' 흔들리지 않는 우주의 만남. 조화. 융합.

 

객체의 만남. 객체의 사랑법. 만남과 사람의 교집합. '타인과의 융화'.

 

기실, 인간은 이기적이기 마련이다. 사랑이라 함은 자신의 어떠한 공간을 기꺼이 내어주고, 상대의 공간에 침범하지 않기 위한 치열한 내적 갈등의 연장선.

 

 

애피6 방콕여행2(아트인사이트).jpg

 

 

사랑.명사.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인간은 타고나기를 이기적인 천성을 지닌다. (이건 개인적인 주장이다.) 그런 인간이 사회화를 거치며, 공동체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타심을 기른다.

 

다만 중요한 건. 사랑이라 함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더욱 지극히 그 객체의 내밀한 감정까지 건드릴 수 있는 위험한 감정이라는 것. 이 지점에서 많은 이들이 갈등을 경험하고 이별을 결심한다.

 

해답은 쉽다. 나의 우주의 경계면을 풀고 상대편 우주의 접촉면을 늘리기. 해결은 어렵다. 한 번 뚫린 본인의 경계면에는, 상상 이상의 감정적 물리적 심리적 찌꺼기가 흘러들어오기에.

 

그럼에도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받아들이고, 대화하고, 존중하며, 이어가기를 원하는 이들. 그런 이들이, 두 우주를 비로소 합칠 수 있달까.

 

 

애피6 집정리 를마친 둘(아트인사이트).jpg

 

 

그런데.. 우리 돌아가서 또 싸우면 어떡해?

뭐라고?

...또 싸우면 어떡하냐고. (울먹)

화해하면 돼.

또 싸우면.

화해해.

또 싸우면.

화해해.

또 싸우면.

화해하면 된다고.

또 싸우면.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中>

 

 

 

애피8 시작(아트인사이트).jpg

 

 

전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어려운 걸 뚫고, 각자의 우주를 공유하고 융화하는 이들이 있다.

 

다투고, 화해하고, 짜증 나지만 받아들이고, 대화하려 하며, 화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조금 더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에 집중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아직 멀었나 보다.

 

대도시에 살고 있으면서,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면서, 대도시의 사랑을 모르겠다.

 

날은 곧 따뜻해질 거다.

해는 길어지겠지.

일이 보람찰 때고 있고.

나를 찾아주는 사람에 행복하기도 할 테지.

 

사랑이, 하고 싶다.

 

하지만-

 

 

애피8 시든꽃과 향수, 디퓨저(아트인사이트).jpg

 

 

대도시의 사랑법을 터득할 수 있을지.

 

대도시의, 사람의 사랑법.

 

 

 

최원영 컬처리스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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