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이 온다. 한 해를 되돌아보고 겨울의 차가운 공기에서 오히려 따뜻함을 찾게 되는 모순적인 시기가 왔다.
올해의 음악, 올해의 친구, 올해의 책 등, 올해 내 마음에 불씨를 일으킨 것들을 마음속으로 굴려보자. 어떤 예술들이 생각이 나는가?
올해의 TV 쇼를 꼽으라면 나는 길모어걸스를 주저 없이 선정할 것이다.
한 해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집에서 따뜻하게 가족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며 보기 좋은 TV 쇼이다. 그리고 올해 7개의 시즌을 모두 완주하면서 느꼈던 인생의 교훈을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여 더 따뜻하게 연말을 느껴보고 싶다.
공유에 앞서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길모어걸스’는 미국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모녀의 이야기이다. 그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녀의 일상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것이 주 스토리라인이다.
그들은 각자 눈앞에 주어진 일들을 책임지기도 하며, 사랑하기도 한다. 모든 것은 느리게 자극적인 요소 없이 진행된다. 실패도 사랑도 성공도 또다시 돌아오는 하루도 말이다.
그러한 그들의 잔잔한 일상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나는 내가 살아갈 방식을 그려보기도 하고, 인생의 크고 작은 선택, 그리고 삶을 마주하는 태도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1. 따뜻하게 현재를 살아가자
길모어걸스의 주 배경이 되는 마을 스타스할로우는 아주 따뜻하고 괴상하다. 계절마다 이상한 갖가지 이벤트를 열어 모든 마을 사람들이 그 바보 같은 일들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스꽝스러워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매우 부유하지도, 매우 특출나지도 않다. 그저 잔잔하게 우리처럼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인지 조용히 회사를 다니고 과제를 수행하는 한국의 현대인들보다, 왁자지껄하고 소란스럽고 바보 같은 그들이 훨씬 행복해보인다.
왜일까 계속 생각해 봤는데, 그들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현재’를 살고 있었다. 현재 다가온 계절, 현재 내가 속해있는 달을 충분히 느끼기 위해 명화 재현 페스티벌, 봄 축제, 영화 축제, 댄스 마라톤, 뜨개질 마라톤 등 현재 이 순간만을 위한 요소들을 꺼내서 진심으로 임한다.
우리 모두 차갑게 현재를 스쳐 지나가면서 과거 혹은 미래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의문을 가질 필요성이 있다.
마음속에 무엇인가 편안하지 않은 흐름이 느껴진다면, 그들처럼 현재의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무엇인가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2. 세상에 영원한 슬픔은 없다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그 슬픔에 잠식되어 버려 영원히 잠겨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것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는 것이 에피소드마다 변화하는 주인공들의 상황과 기분이다.
주인공 로리는 사랑의 실연, 인턴쉽 탈락, 엄마와의 싸움 등으로 우울한 나날들을 보내기도 하고, 어떤 에피소드에서 그녀는 대학 합격의 기쁨, 새로운 사랑, 마을 사람들과의 평화로운 시간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길모어걸스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이 주인공 버프를 받아 무조건 성공하지 않고, 극적인 연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잔잔한, 때로는 아주 슬퍼서 목 놓아 울기도 하는 우리네 일상을 주인공들에게 투영하고 있다.
우리도 일상의 업과 다운을 너무 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우리에게 다가온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길모어 걸스의 주인공들을 떠올려 보는 것으로 잔잔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3. 세상에 평면적인 사람은 없다
이 시리즈를 완주하면서 느낀 또 다른 인간의 특징은, 완전히 나쁜 사람도, 완전히 착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또다시 길모어걸스가 그려내고자 하는 현실적인 색채가 드러난다. 주인공이라고 무작정 착하게만 묘사하거나, 주인공을 견제하는 인물들을 무조건 악하게만 묘사하지 않는다.
주인공 로리는 자신의 미숙함으로 남자 친구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을 분노케 하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악역인 줄 알았던, 로리를 견제하던 같은 반 친구 페리스는 로리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여전히 그녀는 대학교의 신문사에서 독재자적인 면모를 보이며 어떤 이들에게는 악역으로 비치지만,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싫은 사람 있다면 너무 눈 치켜 뜨고 공격 태세로 전환하지 말고, 그들을 찬찬히 바라보자.
당장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 있더라도, 불같이 달려들지 말고, 천천히 가까워져 보자.
4. 자신만의 취향이 확고한 사람은 멋있다
극 중 사람들은 자기만의 확고한 취향이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로리와 로리의 엄마 로렐라이는 확고한 노래와 영화 취향을 가지고 있어, 본인들의 취향이 아닌 장르가 등장하면 함께 재치 있는 야유를 퍼붓기도 한다.
로렐라이의 패션은 아주 특이하다. 그녀만의 어떠한 확고한 취향이 있어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보며 수군대기도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녀의 패션을 관찰하는 것도 이 시리즈를 정주행하는 데에 특별한 재미를 더한다고 생각한다.
로렐라이의 동업자인 요리사 수키는 자신만의 요리 철학이 아주 확고해서 손님들을 위한 요리를 만들 때 아주 까탈스럽다. 그로 인해 생기는 잔잔한 에피소드의 재미는 덤이다.
마을 스타즈할로우에 사는 이웃 커크는 항상 루크네 식당에서 음식에 관해 투덜거린다. 이건 덜 익었다는 둥. 이건 어떠한 소스가 어울린다는 둥 불평을 늘어놓아 루크는 항상 익숙한 듯 무시하지만, 나는 왜인지 모르게, 그러한 작은 부분에서의 확고한 취향을 가진 커크가 가끔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커크는 극 중의 개그 요소를 담당하는 캐릭터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의 자기만의 확고한 고집이 있다. 고집이 있다는 것은, 어떠한 것을 굉장히 사랑한다는 뜻이고, 살아갈 열정이 있다는 뜻이며, 너무나도 멋지게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그들의 마음이자, 순수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무엇인가에 포기할 수 없는 고집을 부려보자. 영화든 음악이든, 패션이든, 심지어는 음식 취향이든 말이다.
나의 취향이 확고해질 수록 나라는 사람의 색채, 향이 진해진다고 믿는다.
길모어걸스가 지루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극적인 연출과 빠르게 진행되는 스토리를 좋아하는 분들은 시리즈를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도파민에서 벗어나 귀엽고 따뜻한 주인공들로부터 마음속 위로를 받고 싶다면 언제든 스타즈할로우의 문을 두들겨 보기를 바란다.
모두 따뜻하고 서로 사랑하는 연말과 연초를 보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