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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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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내전과 독재에 대해 다룬 대부분의 영화가 트라우마를 겪는 지식인의 무기력에 기반한 차분하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가졌던 반면,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까마귀 기르기>는 그다지 무기력하지 않다. 독재 정권의 하수인이자 가부장으로서의 아버지를 독살하고자 마음 먹은 한 소녀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순수하고 저돌적인 투쟁을 보여준다. 오히려 ‘아나’에게 잠재되어 있는 순수한 욕망을 계속해서 긁고 자극해 결국 행동으로 촉발시켜버릴 만큼, 보다 직설적으로 잔인한 세계를 담아내는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아나’가 아버지를 독약으로 살해했음을 암시한다. ‘아나’는 우유에 독약으로 여겨지는 하얀 가루를 타 아버지에게 드렸고, 정황 상 아버지는 그 우유를 다 마신 후 침실에서 여자와 잠자리를 가지던 중 사망했다. 나중에 사실 ‘아나’가 정말로 아버지를 살해한 게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지만, ‘아나’에게 아버지를 죽일 의도가 있었음은 매우 명백하다. 이 장면에서는 어린 ‘아나’가 아버지를 죽이려고 결심한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생각하게 함과 동시에, 그토록 어린 아이가 누군가를, 그것도 아버지를 죽일 수밖에 없었단 사실 자체가 매우 잔인하고 씁쓸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아버지의 침실에서 다급하게 뛰쳐나오는 헐벗은 여인이 ‘아나’와 잠시 눈을 마주치는 장면은 그런 ‘아나’에게 펼쳐지는 잔인한 세상을 암시함과 동시에, 그녀의 시선이 ‘아나’에 대한 측은함을 담고 있었던 듯 하다. 물론 그녀는 ‘아나’가 살인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모르므로, 단순히 부모를 잃은 아이에 대한 순간의 동정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나’가 아버지를 살해하려 했던 이유는 ‘아나’가 보는 어머니의 환영을 통해서 밝혀진다. 어머니는 살아있을 때 신체적인 병과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고통받았지만 아버지는 이에 무관심했다. 영화 속의 여러 묘사를 볼 때 아버지는 밖으로 나돌며 여자들과 바람을 피운 것으로 보인다. ‘아나’는 그런 고통 속에서 죽어간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려는 마음으로 아버지를 죽이고자 한 것이다. ‘아나’는 이모도 같은 방법으로 죽이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부모를 대신하여 세 자매를 보호하고 교육한다는 명목으로 등장한 이모는, 언뜻 아이들을 통제하고 그들 위에 군림하려는 듯 보인다. 이모가 없을 때 아이들은 음악을 틀고 번갈아가며 춤을 추고, 몰래 어른처럼 화장을 하고 변장을 하며 놀기도 한다는 점에서 아이들은 이모가 없는 시간을 ‘자유’라고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모는 가정에 무관심했던 아버지보다는 훨씬 더 아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으며, 이들과 함께 하는 미래를 그리기도 한다. 따라서 그저 부모를 대신해 이 아이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과 불안에 조금은 엇나간 모습을 보인 것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나’의 시선에서는 이모가 엄마의 자리를 대체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모에게 군인인 애인이 있다는 사실은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사랑을 주고 받았던 것과 겹쳐보였을 것이므로 ‘아나’가 이모를 증오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이해되기도 한다. 즉 이모를 죽이려는 ‘아나’의 의도는 결국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혐오, 아버지로부터 받은 억압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를 죽일 각오나 의지를 다진다는 것은 매우 무서운 일임에도 이 영화에서는 꽤나 순수한 욕망으로 그려진다. 물론 어린 아이가 살인의 시도를 한다는 것이 다소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와 톤이 그다지 어둡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매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이 영화 속에서 ‘죽음’의 의미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삶의 종결이 아니라, ‘해방’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는 ‘죽음’과 관련된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죽음, 죽음을 앞두고 괴로워 하는 어머니에 대한 회상, ‘아나’가 키우던 ‘로니’의 죽음 등과 같은 장면들이다. 그중에서도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아나’는 ‘죽고 싶다’는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 세 인물 모두 자신이 겪는 억압이나 질병,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죽음’은 곧 ‘자유’를 은유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영화의 결말에서 ‘아나’가 독약이라고 알고 있던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결국 이모도 죽지 않았다. 또한 방학이 끝나 ‘아나’와 자매들은 학교에 다시 가기 시작했으며, 그들은 이모가 만들어낸 가정의 규칙이나 학교의 규율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이는 ‘아나’가 아직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이 역시 매우 잔인한 결말이다.

 

그러나 집 밖으로 나간 세 자매를 멀리서 비추는 영화의 엔딩 시퀀스는 ‘아나’가 가진 순수한 욕망은 꺾이지 않았으며, 이들 자매가 결국 진정한 해방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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