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향에서 이방인의 감정을 느끼다 [음악]

낯선 곳에 떨어진다면 꼭 듣게 되는 노래
글 입력 2024.10.1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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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랬듯 며칠 전에도 네모난 스크린 속에서 오롯한 쉼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나 숏폼을 비판하고 멀리하겠다 다짐하면서도 그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것은 마치 도떼기시장 속에서 딱 원하는 물건이나 옷을 찾듯 나의 취향을 저격해 버리는 영상이 뜨는 순간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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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3초, 그러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영지였고 들리는 곡은 한 예능에서 장난스럽게 부른 스팅의 ‘Englishman in New York’이었다. 정말 몇 소절에 불과했지만 귀를 사로잡는 목소리와 반주가 계속해서 그 숏츠를 틀어놓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전 스팅의 라이브 영상에서 느꼈던 낯설면서도 기분 좋은 느낌이 느껴졌다.

 

자연스레 그날의 데일리 뮤직은 ‘Englishman in New York’이 되었다. 이 노래를 연신 들으며 하루를 보내니 기분이 나빠질 법한 순간에도 능글맞은 마인드가 툭 튀어나와 마음을 다시 무디게 만들었고, 익숙한 집 앞 골목이어도 괜히 다른 나라, 다른 지역을 대입해 보게 만들었다. 나는 왜 이 노래를 들을 때 익숙한 일상이 낯설게 느껴지는지, 왜 갑자기 내가 평생 살아온 이곳과 동떨어지기라도 한 듯이 느껴지는지 궁금했다.


 


고향을 떠나온 이방인의 노래



   

 

I'm an alien, I'm a legal alien

I'm an Englishman in New York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하게 그 이유에 대해 답을 해줄 수도 있다. 제목도 그렇고, 코러스 가사부터가 정직하게 ‘I’m alien’이라며 이 곡의 화자가 이방인임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방인의 노래라는 이유만이 이렇듯 묘하게 붕 뜬 마음을 만들어 내는 걸까.

 

‘Englishman in New York’의 가사는 그야말로 London이 아닌 New York에서 살고 있는 영국인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상경’, ‘타지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같은 언어를 써도 처음엔 익숙할 리 없고, 미묘한 격차와 몇 번의 괄시는 누구나 겪어볼 법하니 말이다. 특히 영국인처럼 특유의 악센트가 있는 사투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Englishman in New York’의 가사 속에서 외로움, 고독, 고난은 잘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자신이 가진 정체성을 꿋꿋하게 유지하며 뉴욕의 거리를 누빈다. 커피 대신 차를 마시며, 토스트는 한 쪽만 구워 먹고, 가는 곳마다 지팡이는 꼭 가져가며 가슴속에는 인생의 중심을 잃지 않게 해줄 신사다운 격언을 새기고 살아간다.

 

‘a legal alien’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데에서도 버릴 수 없는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이 낯선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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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flix '흑백요리사' 12화

 

 

이 가사를 곱씹는 동안 나는 최근 크게 화제가 되었던 넷플릭스의 서바이벌 요리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 나온 에드워드 리 셰프가 생각났다. 그가 마지막 화에서 보여줬던 '이균'으로서의 정체성과 그동안의 미국 생활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계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미국에서 이만큼의 삶과 성취를 꾸려냈을 그의 노력과 그림자를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존경심이 든다.

 

곡이 가진 이런 메시지와 태도는 에드워드 리를 비롯한 모든 이방인들에게 더없는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유학시절이나 타지 생활이 버거울 때 이 노래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며 댓글을 남기고 갔다. 고향을 떠나는 게 익숙한 현대에서는 아직도 어딘가에서 많은 이방인들이 이 노래를 들으며 아직도 지우지 못한 그리움과 남아있는 습관들을 되새기며 마음을 달래고 있을 것이다. ‘Englishman in New York’은 그런 곡이다.

 


 

몸이 아닌 마음이 고독한 이방인들도


 

놀라운 점은 이 ‘이방인’이 지역으로만 한정되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곡은 스팅이 실제로 미국에 사는 영국의 한 작가인 쿠엔틴 크리스프라는 사람에게서 영감을 받아 쓴 곡인데, 그가 영국 사람인데도 미국에서 살게 된 배경에는 ‘커밍아웃’이라는 중요한 현실이 존재한다. 굉장히 보수적인 상황 속에서도 쿠엔틴 크리스프는 본인이 성소수자임을 알리고 성소수자의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게이 아이콘’으로 영국과 미국을 오가는 소셜 활동을 하다 말년에는 미국으로 아예 이주했는데, 그런 쿠엔틴 크리스프를 위한 곡이 바로 ‘Englishman in New York’인 것이다.

 

새삼스레 음악이라는 콘텐츠가 가진 잠재성과 가사만이 가질 수 있는 비유와 대입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지만, 그것에 대한 깊은 생각은 잠시 넣어두고 여기서 우리는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또 다르게 사용해 볼 수 있다.

 

정체성이라는 것은 본디 하나로 꼭 정해져 있지도 않고, 정할 수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이라고 물었을 때, 머릿속에서 나를 대표하는 아주 많고 많은 단어들을 나열하며 제일 남들에게 보여주기 적합해 보이면서도 나와 잘 어울릴 것 같은 단어들을 조합하고 선택해 밖에 꺼내놓게 된다. 누군가가 영국인의 자아와 습성이 강하다면 본인을 가장 영국스러운 사람이라고 할 테고, 또 한국의 다른 누군가가 부산의 바닷바람이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느낀다면 자신을 ‘부산 사나이’라고 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나지 않았을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라는 정체성은 아직 한 단어 빼고는 이 사회에서 툭하고 드러내기에 조금 어려운 단어다.

 

통상적으로 차마 드러내지 못하고 남들과 다름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갈 사람들, 그들 또한 결국 ‘이방인’, 즉 이 노래의 ‘Englishman’이 된다. 그리고 가끔은 물리적인 거리보다도 더한 심적 거리를 느끼며 살아갈 그 사람들 또한 위로가 필요하다. 그들이야말로 있는 그대로 살아가도 된다는 말 한마디가 절실하게 필요할지도 모른다.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

 

 

이렇게 보면 이 노래는 이 사회 속에서 각기 모든 형태로 존재할 이방인들을 위한 곡이 된다. 성소수자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르게 생긴 본인의 심지를 더욱 단단히 굳히고 나아가야 할 존재들 말이다.

 

그래서 이 곡은 옆에서 뭐라고 떠들든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들을 격려한다. 낯선 감각은 받아들이다 보면 익숙함이 되고, 익숙함은 또 언제 낯섬으로 변할지 모른다. 그 흔들리는 감각 속에서 조금 어지럽더라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단단하게 잡을 수 있는 줏대를 키운다면 세상의 소용돌이에서도 어렵지 않게 태풍의 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당한 가사, 고독한 멜로디


 

여태껏 가사 측면에서만 이야기를 풀어왔지만, 이렇게 당당한 가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곡에서 은근한 고독감이 느껴지는 이유를 말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게 이 곡의 중요한 매력이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 느끼는 고독함은 스팅의 깊은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받쳐주는 악기들의 멜로디에서 나온다. 인트로에서 길게 음을 끌며 귀를 사로잡는 색소폰 소리부터가 인상적인데, 그 뒤로 이어지는 재즈와 블루스 풍의 여유로운 현악 사운드는 정박을 지키면서도 리드미컬한 느낌을 준다. 이 멜로디들은 마이너 코드 위주로 진행되어 곡 전반적으로 미묘한 우울감을 선사하는데, 브릿지 부분에서 경쾌하게 변주되는 재즈 사운드가 그 무게감을 덜어주고 균형을 찾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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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이 노래를 들으며 나의 두 발이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이유는 이런 마음들을 대변하는 노래라서 그랬던 듯싶다. 신기한 경험이다. 곡 하나로 단순한 일상이 그렇게나 새로워 보였으니 말이다.

 

아직 낙엽이 질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덧 고독을 선사하는 계절이 찾아왔다. 일상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거나, 나와 세상이 동떨어진 것만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면 이 노래로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아 보는 건 어떨까. 물론 나처럼 일부러 일상을 낯설고 간지럽게 느끼고 싶은 순간에도 어김없이 이 노래를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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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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