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 달간의 봉사활동이 남긴 것 [사람]

글 입력 2024.05.2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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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부터 시작했던 한 달간의 봉사활동이 끝났다. 일주일에 한번 외국인 유학생을 포함한 다른 팀원들과 함께 아동지역센터에 방문하여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다양한 세계 문화를 알려주고 여러 관련 활동들을 제공해 주는 봉사활동이었다. 처음 아동지역센터에 방문하여 해당 센터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계획에 대한 이야기할 때만 해도 한 달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의 첫 봉사활동이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창한 활동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중학생 때 학급 단위로 진행되었던 환경 봉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성인이 된 후에는 보육원에 방문하여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음식을 만들어주는 봉사를 했던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봉사와 가까운 삶을 살지 않았다. 이렇게 횟수를 쉽게 헤아릴 수 있다니.

 

봉사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다.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중심이자 주안점이 되는 것이 봉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매주 센터에 방문하여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마다 이곳에서 내가 받아 가는 것들이 더 많다고 느꼈다. 아이들은 매 수업을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다. 즐거워 보이기는 했고, 실제로 즐겁다고도 말해주었지만.

 

대학에 진학하고 군대를 다녀오면서, 다시 말해 성인이 된 이후로 누군가에게 포장하거나 왜곡하지 않은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럴 이유도, 그렇게 해야 할 상황도 적었지만 무엇보다도 내게 솔직한 마음을 보여준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다. 물론 매번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스쳐가는 웃음 하나에도 온전한 순수를 담아내지 못하는 스스로가 견디기 힘들었던 때도 많았다.

 

어쩌면 그래서 이 봉사활동에 지원하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내가 원했던 것들을 실제로 얻어갈 수 있었기에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상대방의 의중이나 여타의 타산적인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보여주는 웃음이 보고 싶었고, 화가 나거나 서운하다고 느낄 때 그러한 감정을 표정에 그대로 드러내어 놓는 솔직함이 보고 싶었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아이들의 말이나 행동에 대한 리액션을 가감없이 보여줌으로써 잠시나마 편하게 내 모습을 드러내고 싶기도 했다.

 

토마스 모어는 사람의 가장 깊은 감정은 침묵 속에 있다는 말을 남겼는데, 나는 이 말이 아이들에게만큼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생각이 성숙해질수록 말의 무게는 더해지지만 그 안의 감정은 얕아진다. 반대로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내뱉는 말 하나하나에는 그 나이에, 그 순간에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깊은 감정이 내재하고 있다.

 

루소가 아동의 발달 단계에서 확인 가능한 고유의 사고와 감각 방식을 중요시하여 아동심리학 및 아동중심교육의 지평을 열었던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보인다. 세계 문화에 대한 교육을 진행할 때나 혹은 관련된 활동들을 진행할 때 아이들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을 내놓거나 예상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면 그것이 당황스럽다기보다는 문자 그대로 웃기고 놀라웠다. 저 작은 아이들도 이미 자신들의 독자적인 세계를 가지고 있구나 싶어서.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우리는 매일 사용하고 듣는 언어의 테두리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대부분의 주위 사람들은 항상 한정된 범주 내의 어휘들을 사용하고 대체로 엇비슷한 인상만을 준다.

 

그렇기에 이번 봉사활동이 내게 남긴 것은 아이들의 언어이다. 저출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아이들의 언어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오랜 시간 담아두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훗날 봉사활동에서 만났던 아이들의 목소리를 회상하며 훌쩍 커버린 모습으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을 그들의 언어와 나의 언어를 대조해 보고 싶다.

 

무엇이 닮아있고 무엇이 달라져있을까.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그 아이들이 지금 내 눈앞에 와있는 것처럼 다시금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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