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피부에 직접적으로 스며드는 화가 이상남의 언어 - 도서 '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

글 입력 2024.03.18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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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저자의 시선이 담겨있다. 저자는 작품의 제작 연도에 따라 16개의 주제로 나누어 이상남의 작품을 분석한다. 2부는 작가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있다. 1부와 비교해 좀 더 작가의 생생한 목소리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에는 감상자와 작가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두 가지 관점을 바라보는 것은 독자로서의 나의 시점이다. 독자로서 나는 기본적으로 1부의 해석을 따라가면서 이상남의 작품을 감상했지만, 때로는 저자의 관점과 분리되기도 통합되기도 했다. 그리고 2부에서 만난 저자의 관점과도 똑같이 통합되고 분리되었다.

 

책의 저자는 자신의 해석을 반드시 작가의 의도와 같지 않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최소한 나는 '노란색 원'에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순이라고 느껴질 만한 부분을 숨기지 않은 시점에서 저자가 작가의 의도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이 짧은 책에는 나, 저자, 작가의 세 가지 관점이 작품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돈다.

 

나는 이것이 '이상남의 작품'의 의도된 독특성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내가 느낀 작가 이상남의 작가적 목표는, -마치 그의 일상의 식단에서 고기를 덜어내고 조절되는 것과 같이-최대한 갈고, 덜어내서, 그 작품을 각자의 입에서 소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한 '매끄러움', 그러기 위한 '갈기'가 아니던가.

 

내가 이상남의 회화로부터 무엇을 느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1부와 2부를 섹션의 순서에 따라 요약하고자 한다. <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의 16개의 섹션을 내 기준으로 다시 정렬해보면 이렇다. 우선 첫 번째 섹션, '도상과 형상 사이'은 기본적으로 전체 섹션의 요약을 제공한다. 이상남 작가의 그림의 대상이 자연의 실제 대상이 아니라 인위적이라는 부분에서 기존 회화의 틀을 벗어나고자 하려는 시도라는 점, 기계적 이미지를 손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아날로그에 가까운 노동이 들어간다는 점이 이 섹션에서 처음 제시된다. 이상남 작품의 이해에서 중요하게 강조되는 두 가지 특징은 이후 섹션에서 자세히 다뤄진다.

 

이어지는 '원, 선, 점', '노란 원과 다각형', '힘의 포착, 힘의 감응'은 기본적으로 이상남 회화에서 드러나는 표현의 소재에 관해 탐구한다. '원,선,점'에서는 질서, 생명, 완전성, 이후에는 왜곡과 '망아'의 재료가 되는 '원'과 그 원을 뚫고 나오는 죽음, 이탈, 변화를 상징하는 '선', 힘의 주축이 되는 '점'에 대해 설명한다. 이러한 재료들을 어떻게 연결하고, 얼마나 강한 세기로 표현하고, 어떤 색으로 표상되는가에 따라 다양한 감상을 이끌어낸다는 내용이 이어지는 '노란 원과 다각형', '힘의 포착, 힘의 감응'에서 이어진다.

 

그리고 실제로 이상남의 작품을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가에 관한 내용이 '감응의 회화'에 드러나 있다. 저자는 이상남의 회화가 음악과 비슷하게 감응을 이끌어낸다고 하는데, 사실 이 문장은 기본적으로 모순이다. 저자가 표현했듯이, 음악은 표상 없는 사유인 반면, 회화는 그 자체가 표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남의 회화는 실제 자연물이 아닌, 자연과 인공의 구분 이전의 어떤 원초적이고 미분화된 인위적인-나는 이것을 인간의 원초적 세계에 존재하는, 언어로 정의되지 않은 아이디어들이라고 해석했다. 외부와 상관없이 인간 안에서 떠오른 충동에 가까운 아이디어는 분명 인위적이다- 도상이기에 기존 회화가 줄 수 있는 감응 이상을 지향한다.

 

'그린다는 행위와 회화의 복권', '그림 제작의 과정과 특이성들', '그리는 노동을 통한 힘의 감응', '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 그림'은 이상남의 작품이 회화에서 어떤 것을 지향하는가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다. 섹션 1에서 던져놓았던 주제가 각 섹션을 통해 구체화한다. 왜 이상남이 일견 자본주의의 프린팅된 이미지처럼 보이는 것을 고된 노동을 통해 완성하는지에 대한 답이 제시된다.

 

'매끄러움', '두께', '층'은 이러한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이상남의 회화적 비전이 드러난다. 열렬한 춤 속에서 고통을 느낀 무용수가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힘마저 잃어버리는 것처럼, 작가는 자신의 흔적을 수없는 노동을 통해 덜어낸다. 그 결과로 산출되는 '매끄러움'과 덜어냄으로써 만들어내는 '두께'는 새로운 차원의 회화 감상을 가능하게 한다. 

 

우선 '매끄러움'은 작가의 시선과 상관없이 원초적인 수준에서, 음악과 같이 감상자의 신체에 파고들 수 있게 해준다. 이상남 회화의 상징들은 단순하지만 명확한 힘을 표현하고 있다. 그가 실제로 어떤 작가인가를 고민하기보다, 자연스럽게 관람객은 그 자신의 감상을 -내 감상대로 표현하자면-'출산'하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끝없이 덜어내는 행위 자체가 회화의 평면성을 극복하게도 한다. '두께'에서는 시각적 감각 이상을 느끼게 하는 작품의 힘을 제목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세 개의 달', '정교함과 뭉개짐'은,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섹션이었다. 특히 독신기계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상에 빠지게 했는데, 생산적 활동, 꿈이나 환상을 보여주는 극장이 아니라 생산하는 공장으로써, 기계적 흐름으로 배치된 독신기계를 표현한 2010년대의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현대인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연 편집적이고, 편집적이다 못해 자폐적으로 느껴졌는데, 사실 저자가 들뢰즈의 말을 통해 부정하기는 했지만 이야말로 현대인의 꿈과 환상을 보여준다고 상상했다.

 

 

모든 화가에게 그린다는 행위는 가장 근본적인 삶의 형태다. 하지만 이상남에게 그린다는 행위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허무는 절망을 딛고, 절박하게 새로운 뭔가를 삶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경험과 맞닿아 있다.

 

- 책 발췌

 

 

내게 이상남의 작품은 원초적인 인간 정신의 풍경을 그려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구심점이 되는 남자 무용수를 두고 원으로 빙빙 도는 여자 무용수는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생명과 성욕의 충동을 상상하게 했다. 그 충동은 때로는 흐릿하게 개념화되지 않은 상태로, 때로는 명확한 형태로, 구부려지고 중첩되고 복사된 상태로 복사된다. 때로 직선은 그런 원을 파괴하고, 변화시키고, 마치 기계처럼 보이는 형태로 발전기처럼 표현되기도 한다. 이상남 회화에서 자주 드러나지는 않지만, 아직 언어화되지 않은 매끄러운 이미지는 언어로, 뚜렷한 선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을 그리기 위해 이상남이라는 작가 개인이 취했던 행동이 흥미로웠다. 그는 자신의 생활을 관리하고, 계획함으로써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것이 작품에서는 정제되고 고된, 계획된 형태로 표현된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프린팅된 모습과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이 그의 작품을 아이러니하게 만든다.

 

내게는 출산을 연상시키는 '매끄러움'을 만들어내는 그의 작품 생산 과정이 이토록 '편집적'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자기 자신을 잊은 작품을 그리기 위해 자신을 극도로 통제한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생명과 파괴의 충동은 원시적인데 왜 때로 세련된 작품들과 비교할 수 없게 된 걸까?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연결되길 원하는 수많은 상징은 때로 왜 자기완성, 자기 만족적 기계처럼 비치는가?

 

나는 저자가 왜 이토록 이상남의 작품에 몰입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상남의 작품은 그 힘의 감응에 자기 자신을 들여다 놓기 너무나 쉽다.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어떤 재생산, 자기만족, 원초성, 세련됨은 모든 인간에게 숨겨져 있는 미분화된 언어들이다. 자기 자신에게 몰입한 나머지 잊어버리지 않으면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 말이다.

 

이러한 이상남의 작품을 감상하고 만난 진짜 작가 이상남의 인터뷰는 약간의 같지 있었다. 자신의 작업실에 사람을 들여놓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작품을 포트폴리오 하며, 같지 자신의 작품을 PR하는, 차별에 대한 경험과 야망을 느끼고, 때로는 어떤 자기 어필이 느껴지는 그의 생생한 목소리에서 나는 감히 독신기계와 그의 편집적인 작품 생산 과정을 적극적으로 상상했다. 자기 자신을 극단적으로 지워내려고 노력했지만, 그야말로 그만이 낼 수 있는 표현이 일련의 작품들이다. 과연 그 모습조차도, 이 작품의 독특한 매력을 깊게 느끼게 한다. 그의 작품이 왜 수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처럼 <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은 나에게 다양한 감상을 이끌어낸 책이다. 작품 섹션을 넘어갈 때마다 참을 수 없는 아이디어와 감상 속에서 오래 머물렀던 것을 보아, 시인 채호기의 해석과 화가 이상남의 그림이 내게 준 감상은 상당히 컸던 것 같다. 사실, 좋은 통찰을 불러일으키는 언어와 그림으로 구성된 이 책을 읽고 누가 그러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 깊은 감상과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이 훌륭한 책을 떠나기 전에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책의 저자가 너무 다양한 사전지식을 전제하면서 글을 쓴다는 점이 이 책의 읽기를 방해했다. 도상에 대한 정의, 들뢰즈 철학, 기하학, 정신분석 용어까지를 '아시다시피'로 일관하는 부분은 독자로서 상당히 불만스럽다. 지식이 없는 독자야 말할 것도 없고 해당 부분을 접한 독자라 하더라도 정확히 어떤 부분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은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섹션 1이 전체를 요약하고 있긴 하지만 도입부로 사용되기에는 혼란스러운 면도 처음 책을 읽을 때 더 큰 저항을 일게 했다. 물론 나에게 같은 부분을 쓰라 해도, 섹션 1을 처음에 두고 어려운 용어들을 줄줄이 쓰는 것을 피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부디 다음에는 주석이라도 달아주시길(나는 단어도 아니고 이 정도는 떠먹여 줘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일반 대중에게 읽힐 것을 기대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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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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