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해상도 프로젝트 - 코리안 트럼펫터 앙상블 제8회 정기연주회

백 개의 트럼펫, 백 개의 금빛 파도
글 입력 2024.05.25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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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펫은 아이의 첫 울음과 같은 소리가 난다는 말이 있다. 신의 축복과 승리를 상징하는 악기에 세상에 던져진 아이의 마음이 담겼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코리안 트럼펫터 앙상블은 장소와 나이, 아마추어와 프로를 불문하고 트럼펫에 대한 애정으로 아이 같은 미소를 짓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국내 최대의 트럼펫 앙상블이다. 단순히 뜨거운 것을 넘어 지속적인 열정으로 초록을 더욱 빛나게 만든 그들의 정기연주회에 다녀왔다.

 

 

 

1부


 

C. Orff / O Fortuna - 연주회의 포문을 연 것은 칸타타 [Carmina Burana]의 합창곡 O Fortuna다. 특유의 강렬함으로 게임이나 영화 등에 삽입되는 일이 잦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곡이다. ‘운명이 나를 거스른다’라는 표현처럼 달과 같이 변하는 운명에 고통받다가도 때로 위로받기도 하는 삶을 빠른 템포로 표현하여 트럼펫의 웅장함과 집요한 음정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J.B. Arban / Fantaisie Brillante / Trumpet 손장원, 사랑의 인사 독주 - 기대하는 순간에 기대하는 것이 나오는 것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문법이다. 트럼펫터의 화려한 기교와 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 협주곡 Fantaisie Brillante는 100명의 연주자가 함께한 공연에서 관객이 으레 기대할 만한 압도를 보여주었다. 박자를 맞추는 발도, 악기를 당기고 내리는 움직임도 전부 한 몸처럼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면 경외감이 든다. 또한 젊고 재능있는 연주자와 그의 뒤를 받치는 노련한 프로들을 볼 수 있음에 마음이 좋았기도 하다. 트럼펫은 호흡으로 모든 것을 조절해야 하기에 한계가 없으면서도 주자 본인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는 어려운 악기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을 이토록 멋지게 해내는, 미래가 기대되는 훌륭한 음악가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던 것은 행운이다.

 

Arr. M. Legnaro / Gladiator - 클래식의 미래는 영화음악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현장이었다. 영화를 관람할 때의 관객은 시각적 자극으로 청각적 자극에 섬세하지 못한 반응을 보일 때가 있는데, 예를 들면 합창과 합주의 소리를 종종 헷갈리는 것이다. 나 또한 조용히 깔리는 음역대의 소리를 합창으로 오해한 경험이 있던 만큼, 낮은 목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트럼펫이 촘촘하게 쌓이는 소리였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특히 양쪽 기둥의 화면에서 <글래디에이터>의 편집본이 상영되며 익숙한 관객에게는 추억을,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첫 전율을 선사해주는 것이 노련한 무대 구성이라고 생각했다.

 

Arr. N. Iwai / Disney Fantasy - ‘금빛 물결’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곡이 있다면 아마 디즈니 판타지의 트럼펫 커버일 것이다. 소리에도 색이 있다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을 만큼 황금빛의 음률이었다. 언젠가 가보았을, 그러나 더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모든 퍼레이드를 떠올리게 하는 음악은 노스탤지어를 넘어 앞으로의 미래까지를 담고 있었다. 연주를 듣는 내내 피식거리는 웃음이 났다. 웃을 일이 없는데도 웃게 되는 것은 아마 이런 류의 놀이공원 퍼레이드 음악을 들을 때의 기분이 되살아나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음악을 듣는 상황에는 대개 즐거웠을 테니까. 아이들에게는 충만한 기분을, 어른에게는 그것을 선사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음악을 백 개의 트럼펫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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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J. Bocook / Narco - 이 곡의 원작은 EDM 트랙으로, 윈드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한 버전을 연주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와 한국 프로야구의 선수 응원가로 활용되어 국내의 야구 팬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곡이기도 하다. 원곡의 강렬한 리듬과 에너지를 살리는 동시에 관악기와 타악기의 조화를 활용하여 관악기의 새 지평을 여는 듯한 연주였다. 더하여 나의 메모에는 ‘누군가 나의 등을 수고했다고 두드려 주면 좋겠다 싶을 때’라는 것이 적혀 있는데, 강한 이미지를 가진 곡임에도 심장 박동과 같은 리듬과 멜로디의 흐름이 다소간의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여지를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홍난파 / 봄처녀 / 바리톤 김동규 + 장희빈 Ost 그대 향한 내 사랑 - 바리톤 김동규가 함께한 두 곡의 한국 곡이다. 가곡에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가곡을 들려줘야 한다면 나는 늘 봄처녀를 꼽는데, 이를 김동규의 단단하고 풍부한 성량과 함께하니 더욱 잘 어울리는 기분이었다. 대개 바리톤과 동양풍의 가냘픈 서정음악은 섞이지 못한다고들 생각하지만 이렇게 표정과 몸 전체로 노래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더이상 중요치 않은 듯싶다.

 

S. Cardillo / Core ‘ngrato / 바리톤 김동규 - 앞선 두 곡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격한 감정과 드라마틱한 표현이 주가 되는 가곡이다. 불행한 마음과 배신한 사랑에 대한 절규를 표현하는 것에 있어 바리톤의 목소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트럼펫의 함성은 때로 다른 종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이제껏 연주에서 들었던 금빛 함성은 대개 즐거운, 혹은 환희와 승리의 축가였지만 김동규와 함께하며 함성의 전쟁적 측면, 광적인 측면이 부각되어 극장을 가득 울렸다.

 

Arr. M. Myokoin / Latin Pop Special - K팝이 득세하는 지금의 한국에선 라틴 팝이 그다지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리키 마틴을 기억하는 사람은 라틴 팝이라는 장르, 그리고 그의 싱글앨범 Livin la vida loca’를 기억할 것이다. 리키 마틴의 가장 인기 있는 노래 두 곡을 트럼펫 100대와 드럼이 커버했다. 여름이 음악으로 태어난다면 라틴 팝의 형태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만큼, 발구름과 땀의 형체가 느껴질 만큼 강렬한 합주였다.

 

Arr. N. Iwai / West Side Story - 뮤지컬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특별한 작품이다. 단지 최고의 제작자 중 하나인 레너드 번스타인의 손이 닿아서가 아니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삽입된 모든 음악이 몇십 년간 꺼지지 않는 사랑을 받을 만큼 명곡들이기도 하다. 개중 남아메리카 이민자 집단을 설명할 때 쓰는 멜로디와 리듬엔 트럼펫과 드럼이 빠질 수 없다. 영화나 뮤지컬에서는 느낄 수 없는 현장감과 웅장함을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다시 없을 좋은 경험이다.

 

정통 클래식 음악부터 뮤지컬 음악, 한국 음악과 영화음악까지. 코리안 트럼펫터 앙상블은 늘 장르를 초월하는 광범위한 오케스트라 음악을 지향하는 연주 기록을 남겨왔다. 악기를 조금이라도 다루어 본 사람은, 그리고 합주를 해본 사람일수록 구성원 대부분이 같은 악기를 다룬다면 오케스트라 음악을 표방할 때의 어려움이 얼마나 높아지는지 알 것이다. 그러나 이 100인의 트럼펫터는 다양한 시도로 한계와 어려움을 극복하며 특별한 사운드를 선사했다. 코리안 트럼펫터 앙상블의 앞길이 금빛 파도로 넘실대기를, 그리고 그를 멋진 리듬으로 한껏 넘어서기를 기대해 본다.

 

 

[김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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