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강아지똥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거야
글 입력 2024.01.1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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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도 밟으면 움틀한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약해보이는 것일지라도 공격받는 등의 위험에 처하게 되면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적 자세가 나온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 어떤 것이라도 만만하게 보지 말라는 이야기다. 작고 약한 지렁이가 가진 의외의 힘! 어릴 땐 지렁이가 한없이 귀엽고 웃겨보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안쓰럽다.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데에 일조하는 지렁이를 단순히 징그럽다고 밟아버리려고 하니 당연히 자신을 지키고자, 그 괴로움에, 움틀하는 몸짓을 보이는 것 아닌가. 너무 지렁이에게 과하게 몰입하는 것일까? 뭐, 그렇다면 내가 지렁이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명하겠다.

 

사실 요즘 들어 난 내가 지렁이가 되었다고 느낀다. 남들에게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작고 약한 지렁이가 되어서 누군가에게 밟히기 딱 좋은 위치가 된 것이다. 나의 약점이 노출되는 것이 싫어서 흙으로, 자꾸 흙으로 도망가버린다. 혼자만의 시간.. 흙에 파묻혀 아무도 모르는 나의 공간에 있는 것이 좋다. 아주, 정말, 가끔, 기분이라도 내고 싶어 빗줄기를 맞는 지렁이마냥 밖으로 나오면 아뿔싸! 심술난 현실의 발바닥이 내딪는 표적이 되고 만다. 되려 생존의 위협을 겪는 지렁이처럼 급하게 도망치다가 결국 돌아온 곳은 축축하고 어두운 나의 공간. 답답한 현실 속에서 눈을 뜨고 답이라도 얻고 싶지만 나는 지렁이기 때문에 해답을 발견하는 눈이 부재한다. 그렇게 나는 또 다시 꿈틀거리기만 한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움직임을 사부작거리며.


그나마 지렁이는 나을 수도 있겠다. 토양을 비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지렁이처럼 무언갈 하며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자꾸만 눈에 보인다. 나는 그냥 흙으로 도망치기만 한다. 그래서 가끔은 지렁이보다도 더 하찮은 존재가 된 것 같다. 이를테면, 지렁이조차 몸으로 깔아 뭉개고 지나갈 법한, 그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흙덩이나 개똥같은 것 말이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조합이다. 흙덩이와 개똥, 개똥은 강아지똥.. 아, 강아지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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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의 나는 故권정생 작가의 <강아지똥>을 매우 좋아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가본 도서실이라는 공간. 그 공간에서 처음으로 읽은 책이 <강아지똥>이다. 쭈그린 흰 개가 그려진 표지가 웃겼고, '똥'이라는 키워드에 깔깔거리고 넘어가던 어린 시절 <강아지똥>이라는 제목이 주는 충격은 컸다. 그래서 그 책을 읽고, 생각보다 감동적인 주제에 읽고서 마음이 괜히 싱숭생숭했던 기억이 난다. 강아지똥의 희생에 눈물이 살짝 나기도 했었다.

 

<강아지똥>에서 길가에 떨어진 '흙덩이'는 '강아지똥'을 처음에 놀려댄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존재라고 말이다. '강아지똥'이 슬퍼하자, '흙덩이'는 사과하며 이렇게 위로한다.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거야"

 

 

故권정생 작가의 기독교적 가치관이 어렴풋이 내재된 대사고, 어릴 적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던 말이지만 글을 쓰며 작성하는 이 순간 그 대사를 상기하니 무언가 서럽다. 정말 나도 쓸데없는 것이 아닐까? 정말 나도 꼭 무엇엔가엔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내가 있어서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것 같은데, 나 때문에 항상 모든 걸 망쳐버리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내가 민들레를 피워내는 강아지똥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지렁이가 된 것처럼 느끼는 것도, 내가 강아지똥이 된 것처럼 느끼는 것도, 사실은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는 건 머리로는 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면 이 현실이 더욱 갑갑하고 힘들게 느껴져서 모든 화살을 나한테 돌렸다. 그래야만 내가 무용하다는 가정 속에서 어느 정도 현실을 체념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실, 지금 많이 슬프고 힘들다고 느끼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내 자신의 가치를 부정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그게 이기적인 말이지만, 편하니까.

 

가끔 강아지똥이 민들레를 피워내듯 나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해지거나 일이 잘 풀리는 경험을 하면 그 어떤 상황보다도 행복해진다. 나는 이렇게나 단순한 사람인데, 모든 일은 아닐지언정 가끔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나의 존재 가치를 사랑하는 사람인데, 어쩌다 이 지경이 '또' 도래했을까. 슬프다. 그리고 웃기다. 이렇게 일희일비하는 나 자신이 끔찍하게 싫지만 가엾다.

 

과연 올해는 내가 이 화살의 과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온전히 강아지똥을 이해하고 지렁이의 삶이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치만 안쓰러운 내 자신이 지금은 울고 있는 강아지똥, 발길을 피해 도망치는 지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라도 생각하면, 그래도 조금은, 정말 아주 조금은, 언젠가는 꼭 귀하게 쓰일 거란 믿음 속에서 나 자신을 올해 조금은 다독일 수 있을 것 같다.

 

민들레를 기다린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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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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