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마워 그리고 안녕 - 청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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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책이 읽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소설을 찾는다.
나는 소설이 가진 가벼움을 좋아하는데, 이는 결코 소설을 낮게 평가하는 말이 아니다. 소설 속에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산다. 때로는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가 나타나기도 한다. 다른 장르에 비해 소재를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 이것이 소설을 한없이 가볍게 만든다.
오늘 소개할 소설은 <청혼>이다. 로맨스 소설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은 SF 과학 소설로, 기존 2013년에 출간된 작품이 올해 2024년, 개정판으로 재출간되었다. 다수의 과학소설을 펴낸 배명훈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나로서는 정식으로 읽은 첫 번째 우주 배경 소설이었다.
주인공은 우주 태생인 '나'이다. '나'는 지구 태생의 '너'를 좋아한다. 그 마음은 '너'를 위해, 어색한 중력을 기꺼이 받아들일 정도로 진심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주 전쟁 중이라서, 그리고 '나'는 목성 근처 소행성대의 궤도 연합군 작전 장교이기에 우주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처음 책을 읽으며 저자의 전공을 의심했다. 전직 과학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학적 지식이 상당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어려웠다. 하지만 자신의 머릿속의 생각을 최선을 다해 설명해 주려는 저자의 노력은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과학적 지식이 우수한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평범한 소시민인 나는 그보다는, 작품 속 몽글몽글한 감성에 더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우주 태생이 지구 태생에게 전하는 덤덤한 세레나데. 진심 어린 마음의 고백은 놀랍게도 꽤나 지구적이었다. 별다를 것 없이 사랑을 느끼고 보고 싶고 서운하고 아쉬워하는 모습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에서도 우리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결국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일을 선택하는 모습마저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따라서 책의 마지막에 살짝 소름이 돋았던 것 같다. '나'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마움과 작별, 그리고 사랑.
본문을 다 읽은 후 저자의 말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2013년에 출간되었을 때도 적잖은 사랑을 받은 소설이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내가 감명을 받은 그 '문장'이 여러 곳에서 인용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본 소설을 단순한 로맨스 소설로 상정하고 창작을 한 것은 아니었다 말한다. 그는 과학소설계를 살아내고 있는 SF 작가로서, 소설 <청혼>을 통해 자신의 작품 세계의 큰 축을 차지하는 '공간의 거대함과 극복하기 어려운 시차의 문제'를 다루었다 말한다.
실제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우주 전쟁에서는 공간의 차원을 뛰어넘는 적군이 등장한다. 대기가 없어 오직 빛만이 존재하는 망망한 우주 속에서 갑자기 등장했다 사라지는 적군의 정체는 '나'를 비롯해 아군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너무 넓어서, 우주 태생조차도 다 알지 못하는 거대한 우주의 규모는 내가 우주에 남기를 선택하는 근원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나'와 '너' 사이의 물리적 거리감도 자주 조명된다. 두 사람은 아무리 빨리 가도 170시간을 날아가야만 하는 거리에 떨어져 살고 있다. 통화를 한다 해도 몇 초간의 정적을 견뎌야만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은 때로 무력해지곤 한다. 장거리 연애가 쉽지 않은 이유, 이는 우주라는 새로운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저자는 소설의 제목을 <우주>가 아닌 <청혼>으로 지었다. 소시민인 나는 이 사실을 결코 모른 척 지나갈 수 없다. 그래, 말은 그렇게 했어도 실은 로맨스였던 거다. 그러니 과학적 지식이 없더라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오히려 아름다운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책장을 덮는 순간에 이런 사랑을 하고 싶어졌으니까.
[김규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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