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오늘도 평화로운 각거 생활

영화 <우리집>과 정상 가족 판타지
글 입력 2023.12.3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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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과 가족의 공통점


 

지난 12월 22일은 내 생일이었다. 작년, 문득 유치한 것처럼 느껴져 카톡의 생일 알림 기능을 꺼둔 터라 힌트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기억한 것인지 다정한 사람들은 부지런하게 생일 축하 연락을 보내왔다. 난 축하를 전하는 행위에 드는 품에 보답하듯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매년 12월 22일은 화장품 브랜드, 커머스 플랫폼, 하다못해 동네 치과까지 입을 모아 내게 축하를 건네는 날이다. 그런데 정작 그 탄생에 가장 크게 기여한 우리 부모님은 매년 감감무소식이다. 이번 해도 다르지 않았다. 난 잠시 서운했지만 이내 선수를 쳤다.

 

“나 오늘 생일이야~ 낳아줘서 고마워요. 조만간 밥 한 끼 하자.”

 

아빠는 답을 주었으며 엄마는 (지금 확인해 보니) 읽고도 답을 하지 않았다. 나의 부모는 참 유난스레 무심한 편이다. 이런 사람들과 30년을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성정을 바꿔보려 부단히 애썼던 시기도 있지만,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나선 그러지 않는다.

 

부모에게 난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사실에도 예전보단 익숙해졌다. 그러나 생일날 가족에게만 축하를 전해 듣지 못하는 일은 아직도 괜찮지 않다. 그런 건 여전히 후미진 씁쓸함을 남긴다.

 

나 역시 기념일에 특별히 성실한 사람은 못되지만, 그래도 적어도 생일날 가족이라면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리일 테다. 생일과 가족은 어떤 기대를 품게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어긋난 가족들


 

우리 가족은 왜 이럴까. 오래전부터 난 기대에 부응할 의지가 전혀 없는 냉담한 부모를 혼자 원망하다가 용서하다가 다시 증오하길 반복했다. 부모의 사정을 들었으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미움엔 항상 죄책감이 동반되었다. 감정은 이해로만 해소되는 무언가가 아닌 탓이다.

 

어릴 때 충만하게 경험하지 못했던 부모만이 줄 수 있는 안전함을 언제나 조용히 갈망했다. 난 정상적인 가족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었지만, 우리 가족이 정상이 아니라는 건 일찍이 알았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집>에는 나의 가족과 같이, 어긋난 가족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하나는 이미 와해된 부모와 그로 인해 붕괴 직전인 가족을 회복시키려 영화 내내 노력한다. 그녀가 떠올린 방법은 ‘함께 밥을 먹는 행위’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에서 12살 아이는 힘이 없다. 하나의 오빠 찬을 포함한 가족 구성원은 모두 바쁘다는 핑계로 그녀의 제안을 무시한다.

 

하나는 흩어진 가족을 모으려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성실함에 응답하지 않는다. 여느 어긋난 가족의 속성처럼 이들의 가족은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작용과 반작용이, 적절한 연결감이, 함께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부재한다.

 

영화에는 어긋난 가족을 가진 또 다른 아이들이 등장한다. 유미와 유진 자매다. 유미, 유진의 부모님은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느라 아이들을 삼촌에게 맡겼다. 말이 좋아 맡기는 거지 사실상 방치에 가깝다.

 

세 아이는 ‘비정상 가족’이라는 교집합으로 빠르게 가까워진다. 이들은 자기들끼리의 새로운 애착과 유대를 형성해나간다. 그리고 어느새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모양새를 띄게 된다.

 

한 날, 아이들은 각자가 바라는 이상적인 가족을 꿈꾸며 계란판과 상자를 쌓은 ‘종이 상자 집’을 만든다. 이들은 이걸 매우 귀중하게 여긴다. 실수로 잃어버린 그 집을 되찾으려 더운 여름날 잘 알지도 못하는 시골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헤맬 정도로. 그들은 도무지 그 종이 상자 집을 포기할 수 없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 후반에 들어서 그 집은 아이들에 의해 신나게 부숴진다. 그토록 소중하게 이고 지고 다니던 상자 집에 더는 갇히지 않겠다는 듯, 아이들은 무구하게 웃으며 쉽게 망가지는 종이 상자 집을 짓밟는다.

 

 

 

정상 가족이라는 판타지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했다. 언뜻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 유명한 문장은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을 전제한다. 하지만 이 전제는 틀렸다. 물과 기름의 층을 나누듯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으로 나눌 수 있는 가정은 극히 드물고, 본래 행복과 불행은 맞닿아있기 때문에 그렇다.

 

정상 가족이라고 다를 일인가. 애초에 정상 가족은 무어란 말인가. 하나도, 유미와 유진도, 나도, 정상적인 가족이 무언지도 모르면서 그걸 꿈꿨다. 그리고 현실 가족과의 격차를 실감하며 잔잔히 우울해했고 심장이 꼬집힌 것처럼 답답해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종이 상자 집'을 부숴야 했던 거다.

 

내가 더 어릴 때, 그러니까 자립할 능력이 없던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엄마와 아빠 사이를 바삐 오가며 벌어진 관계를 억지로 봉합하고자 했다. 무력했고 두려웠던 어린 시절의 나처럼 아마 하나와 유미, 유진은 가족이 무너지면 이 정도 누리는 일상도 끝장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엔 다양한 색과 형태를 지닌 가족이 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내가 바라는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 들여다보기 싫은 진실도 세상엔 있는 법이다. 맹목적으로 쫓았던 이상과 판타지를 걷고 현실을 마주할 때 비로소 상황에 맞는 적절한 묘안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이걸 깨닫는 건 편안한 삶에 도움이 된다.

 

 

가족마다 집 분위기와 상황은 늘 다르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이 아이들에게 자유를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 영화 <우리집>, 윤가은 감독

 

 

 

오늘도 평화로운 각거 생활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면 할 말이 많았지만 ‘가족의 슬픔을 밝혀서 좋을 게 없다’는 할머니의 오랜 가르침으로 침묵했다. 유일하게 내가 가족 이야기를 낱낱이 말할 수 있는 이들은 우울을 옮겼다는 죄책감을 1시간에 7-8만 원으로 상쇄할 수 있는 심리 상담사와 같은 아픔을 평생 공유해 온 할머니뿐이었다.

 

취업에 실패한 썰, 전 애인한테 차이고도 다시 연락한 썰 등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가족사는 선뜻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의 말처럼 정말 우리 가족의 슬픔을 타인이 알게 되면, 내게 어떤 편견 같은 것이 씌워지려나 하는 걱정도 일조했다. 할머니의 말은 듣기에 불편하지만 부정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지금 이 글을 쓰기까지도 빈 화면에 우리 가족 이야기를 여러 버전으로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나는 방대하고 유구한 가족사를 지혜롭게 푸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이 글을 쓰게 된 건, 다양한 가족의 레퍼런스를 제공하고 싶어서다. 

 

가족의 이야기는 인과와 시비를 따질 겨를도 없이 복잡하고 내밀하다. 그런 이야기를 똑똑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아마 그래서 모두가 각자 지니고 있을 ‘슬픈 가족의 역사’를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것일 테다. 완벽하게 행복한, 무결하게 평탄한 가족은 없다.

 

 

처음에 전 가족이라면 무조건 완성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이혼하든, 안 좋은 일이 있든

그건 가족의 실패가 아니라 어쩌면 더 좋은 과정을 거쳐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안 싸우고 항상 화목한 게 좋은 가족이기보다는

가끔 싸워도 아니면 헤어져 살더라도

서로 행복할 수 있으면 좋은 가족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완벽하게 모여 있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구나 느껴요.

완벽하진 않아도 행복할 순 있을 것 같아요.

 

- 영화 <우리집>하나 역, 김나연 배우

 

 

우리 가족은 각거 중이다. 단어 그대로 각자 거주한다는 의미다. 부모는 이혼하지 않았고 자식은 독립하겠다고 선언한 적 없다. 말짱한 가족이 해체해서 살아야 하는 데에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는 거다.

 

가족과의 동거는 다른 서로를 견디는 행복하고도 고통스러운 여정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서로를 견디지 않아도 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구성원의 기대나 요구에서 벗어나 각자의 행복과 리듬을 찾고 있는 지금, 나는 현재 가족의 형태에 만족한다.

 

가족도 결국 인간관계다. 모든 인간관계는 가까웠다 멀어졌다의 반복이 아니던가. 데면데면한 시기가 지나면 다시 끈끈한 시기가 올지도 모를 일이다.

 

한집에 살면서도 여러 핑계로 겸상하지 않았던 우리 가족이, 신년을 맞아 새 마음으로 넷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기로 했다. 영화가 두 가족의 끝을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우리 가족의 끝 역시 누구도 알 수 없다. 그게 궁금하다면 끝까지 따라가는 수밖에. 그러고 싶다면 말이다.

 

 


전문필진 명함.jpg

 

 

[권기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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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민월드를창조한그는전설이다
    • 잘읽었습니다. ;)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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