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쇼팽, 그리고 아르날즈의 음악에 몰입해 보기 - 쇼팽 그리고 올라퍼 아르날즈

글 입력 2024.04.30 11:2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 타고난 성향 탓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들이 요란하고 산만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해 보고 싶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끝없이 수행해야 하는 여러 노동들은 물론이고, 우리를 위로하고 편안하게 하는 관계마저도 일종의 감정노동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무언가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까.

 

현대인들의 여가를 책임지는 콘텐츠들은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드라마, 영화는 물론 음악까지도 그 길이는 점점 짧아지고, 사람들의 눈에 들기 위해 각종 콘텐츠의 외피는 요란하게 변신 중이다. 짧은 영상 속 쏟아지는 정보는 따라가기도 벅차고, 여러 소리가 뒤섞여 소란스럽게 느껴진다.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우리를 즐겁게 해 줄, 요란스러운 무언가를 계속 찾아 나서며 떠돌지만, 이상하게도 그 무엇 하나에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순간의 정적과 지루함을, 이제는 참아낼 수가 없다.


지루함을 참아내고, 온전히 무언가에 몰입하는 연습이 필요한 시대다.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는 쇼팽과, 쇼팽을 재해석한 현대 작곡가 올라퍼 아르날즈의 곡을 듣기 위해 음악회를 찾은 이유다.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오로지 음악만 듣는다. 현대음악과 달리 가사, 춤, 랩이 결여돼 멜로디에만 집중해야 한다. 연주의 순간순간마다 몰입하며, 소리가 커지고, 잦아들고, 또 섬세해지고 거칠어지는 그 지점을 따라가야 한다.


아르날즈는 ‘쇼팽 프로젝트’를 통해 전자사운드를 접목한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쇼팽을 구현해 내며, 클래식의 외연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연 <쇼팽 그리고 올라퍼 아르날즈>는 쇼팽과 함께 아르날즈의 ‘쇼팽 프로젝트’ 대표곡을 번갈아 선보이며 고전 음악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물론, 현대 음악의 세련된 감각과 미니멀리즘을 동시에 보여준다.

 

 

[Program]


레스피기

모음곡 '새' 中 전주곡 & 3악장 '암탉'

I. Preludio

III. La Gallina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1번

II. Romance – Larghetto

III. Rondo - Vivace


- Intermission -


딜리어스

봄의 첫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쇼팽 & 아르날즈

Chopin - Prelude No. 15 'Raindrop' 

Arnalds - Verses

Chopin - Nocturne No.20(+Bridge Music)

Arnalds - Written in Stone

Chopin - Ballade No.2

Arnalds - Reminiscence(+Bridge Music)

 

 

0424_쇼팽그리고올라퍼아르날즈 포스터.jpg

 

 

공연의 1부에서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선보였다. 오케스트라 공연에 익숙하진 않지만, 여러 악기들의 각기 다른 매력을 하나씩 느껴볼 수 있었으며, 악기들의 소리가 켜켜이 쌓이며 소리가 점점 풍성해지고 격해지는 그 순간은 짜릿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연주에 집중하며 곡에 따라 섬세하고 격해지는 지휘자의 동작도 인상적이었다.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은 클래식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나에겐 상당히 길게 느껴졌지만, 일순간 강렬해지고, 또다시 잦아들며 섬세해지는 연주는 잠깐의 지루함을 깨고 다시 곡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피아노 연주와 오케스트라의 합주, 그리고 지휘자의 지휘를 바라보며 이들 모두가 선율에 감정을 아로새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쇼팽이 곡을 작곡하던 당시 지녔던 다채로운 감정과 그의 열정이 연주자들의 온 힘을 다한 연주로 다시 살아났다.


2부에서는 음악회의 주제인 오리지널 쇼팽과 아르날즈의 곡들이 이어진다. 1부보다 짧은 호흡으로, 오리지널 쇼팽과 아르날즈의 곡이 번갈아 나오기에 긴 호흡으로 몰입을 요구했던 1부보다 신선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아르날즈의 음악이 현대적이고 트렌디한 사운드로 정통 클래식보다 더 익숙하게 다가왔다.


아르날즈 음악은 쇼팽 음악의 서정적인 부분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구간 반복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을 울린다. 지휘자 아드리엘 김이 말했던 것처럼 ‘심연 깊숙한 곳을 파고드는’ 느낌이다.


공연이 끝난 후 쇼팽과 아르날즈의 음악을 종종 찾아 듣는다. 하지만 공연장 밖을 나선 나는 여전히 길고, 가사 없는 음악에 금방 지루함을 느끼고, 늘 그렇듯 얼마나 많은 시간을 더 들어야 음악이 끝나는지 초조하게 확인하곤 한다. 생각해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언가에 깊이 빠져드는 일은 요즘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요란스럽고 산만한, 하지만 아무 인상도 남기지 못하는 시끄러운 것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새롭게 알게 된 쇼팽과 아르날즈의 음악에 더 몰입하며,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하는 연습을 하고 싶은 요즘이다. 

 

 

 

한수민.jpg

 

 

[한수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5.1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