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다시 시작하기에 앞서, 미루던 사람의 변명

사실은 두려움 때문이었죠.
글 입력 2024.04.3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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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반이라지만, 시작 그 자체도 어렵다


 

이른 아침, 핸드폰에 설정해 둔 알람 소리에 잠이 깬다. 화면을 보니 지난밤 설정해 둔 여러 알람 중 첫 번째 알람이다. 어쩐 일일까, 첫 알람에 눈을 다 뜨고. 의아해하면서 자연스럽게 유튜브 앱을 실행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뭘 하시나요?" 저 먼 나라 어딘가 레드 카펫이 깔린 곳에서 인터뷰 진행자가 어느 셀럽에게 질문한다. 화려하게 꾸민 사람들 사이에서 역시 비슷한 차림새의 한 여자가 질문을 들은 후 어깨를 한 번 들썩이고는 “제 핸드폰을 먼저 확인하죠.”라고 말한다. 그 답을 듣자마자 진행자는 크게 웃으며 외친다. 드디어 우리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답이 나왔다고.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잠에서 깨자마자 바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 몸의 근육을 풀어주고, 조금의 지체도 없이 화장실로 들어가 씻고, 조금 더 맑아진 정신으로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국내 일간지를 읽거나 영문 기사를 필사하는 사람들도 분명 세상에는 존재한다.

 

 

 

매번 오늘보다 내일을 생각하고


 

일단 나는 실패한 셈이다. 아니, 실패했다. 핸드폰에서 유튜브를 틀고 이 영상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했으니까. 나도 부지런해져야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어둑할 때 일어나서 하늘에 해가 다 떠오르기 전에 하루의 목표를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가지는, 그런 ’갓생‘을 살아야지, 하며 침대에 누워 잠들지만, 어쩐지 항상 실패하게 된다.

 

이 연속적인 실패의 이유를 하나로 규정할 수 없지만, 일단 나는 첫 단추부터 어그러졌다고 본다. 대다수 사람처럼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내 머리맡에 있는 핸드폰을 보고, 또 보통 사람들보다 좀 더 늦게 침대에서 머무르는데 그 이유는 그 안에 있는 이런저런 것들을, 내 삶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거나 아니면 몰라도 되는 것들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기 때문이다.


시작이 어그러지면 그 하루가 이미 실패한 것만 같다. 그러면 마음속에서 이미 오늘은 떠나간 과거요, 내일을 준비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한 번 어그러진 마음과 실패한 일정은 꼭 계속 넘어지는 도미노와 같아 다시 찾아온 내일도 비슷한 모습으로 나를 떠나가는 듯하다.


마음을 다잡고 남은 일들을 해보려고 해도 쉬이 집중하지 못한다. 무언가를 읽어도 지나간 시간이 미련으로 마음에 무겁게 자리한다. 그 무거운 흔적은 도통 지워지지 않고 죄책감으로 발전한다. 지속해서 이어지는 부정적인 이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아니, 일단 이것이 극복해야 하는 정도의 문제일까?


 

0000테드 강의.jpg

<출처: TED-Ed>

 

 

“Why you procrastinate even when it feels bad“

(왜 우리는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할 일을 미룰까?)

 

”미룬다는 것은 해야만 하는데도 그 일을 피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이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을 알면서도 말이죠. 당신을 해칠 행동을 하는 것은 명백히 비합리적이죠. 그런데 모순되게도,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것은 우리 몸이 스스로를 지키려고 하는 현상입니다. 우리가 위협이라고 느끼는 일을 피하는 것이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알고 있다. 미루는 것이 절대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하루 뒤의 혹은 몇 시간 뒤에 내가 곤혹스러운 일에 처하고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할 일을 미룬다.


이 부분에 대해서 ted ed에서 한 강의를 보고 그 심리를 조금은 파악하게 되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 뇌는 이를 위협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위협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는 일을 하면서 자신에게 닥친 위협을 피하려고 한다.


연사는 해야 할 일은 우리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이를 회피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존감이 낮거나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시간 관리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꼭 무언가를 미룬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어느 한 개인의 역량이 부족해서 미루기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해야 할 일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것이,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막상 그 일을 하나도 하지 못하게 붙드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내가 느끼는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 같아도, 결국 이렇게 미루는 방식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는 행동은 앞으로 힘이 들고 고된 일이 생길 때마다 미루는 것으로 대처하게 하는 부작용을 낳게 한다. 결국 이 부정적인 순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부여한 잣대를 낮추고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줄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더


 

지금까지 해야 했음에도 외면한 것들과 해내지 못한 시간을 오로지 두려움과 불안함을 이유로 둘러댈 생각은 없다. 하지만 조금 너그럽게 내 마음을 다시금 들여다보는 시간도 가져본다.


다시없을 오늘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내일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홀로 되뇌어본다. 두려워할 것도 없고, 두려움이라 여겼던 것들을 가볍게 훌훌 털어내야 편안한 마음으로 내일을 마주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여러 번 해본 말이지마는, 다시금 새로운 시작의 첫 발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번 더 되뇌어본다.


해보자, 해보자, 다시 한번 해보자꾸나.

 

 

 

강지예_컬쳐리스트.jpg

 

 

[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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