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 줌의 이해로도 구원될 수 있다 [영화]

글 입력 2024.05.1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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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반향을 일으킨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베이비 레인디어 (Baby Reindeer)>의 주인공 도니 던을 좇으며 영화 <더 웨일>의 찰리를 보며 느꼈던 불편한 감흥이 겹쳐 떠올랐다. 그들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아주 ‘답답한’ 남성들이다.


먼저 무명의 코미디언으로, 생계를 위해 동네 펍에서 근무하는 도니는  어느 날 한 거구의 중년 여성 ‘마사’에게 건넨 호의로 인해 그녀로부터 스토킹의 표적이 된다. 초반엔 가벼운 호감 표현 정도에 그쳤던 마사의 언행은 점차 도를 넘게 되고 도니는 그녀의 외설적인 성적 농담과 광기 어린 집착에 시달리게 된다. 이쯤에서 보자면 <베이비 레인디어>는 미저리의 현대적 변용 정도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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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에 대한 도니 던의 대처다. (애초에 시리즈의 초점은 마사의 스토킹보다 ‘왜 도니는 마사가 제 삶을 마구 헤집어 두는데도 저렇게 대응하는가’라는 의문을 품도록 되어 있다.) 그러한 상황에 대한 보편적인 대처는 마사를 경찰에 신고하거나 그녀가 자신의 삶에 더 이상 침범하지 못하도록 완강히 선을 긋는 것일 거다. 물론 도니 던도 이러한 선택지, 아니 당연한 정답을 고려하긴 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행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언행들로 시청자들을 여러 번 곤혹스럽게 한다. 마사에게 여지를 주는 말을 남긴다거나, 그녀를 떠올리며 성행위를 하기도 하고, 자주 그녀에게 연민을 느낀다. 또 그는 호감을 느끼는 트랜스 여성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다가도 이내 중요한 타이밍에 발을 빼버리고 관계를 망치는 등 비겁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그럼 <더 웨일>의 찰리는 어떠한가. 272kg 초고도 비만의 중년 남성인 그는, 작문 교수지만 본인의 몸을 혐오해 카메라를 꺼둔 채 수업을 진행하는 사람이며, 동성애자다. 극의 초반에는 보기에 그리 편치 많은 않은 장면들이 흐른다. 이를테면 포르노를 보며 자위를 하던 찰리가 과도한 흥분으로 심장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괴로워하는 상황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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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간호사인 친구로부터 울혈성 심부전 진단을 받고 일주일 채 되지 않는 시한부가 되지만 찰리는 치료를 거부한다. 게다가 본인을 향한 혐오가 극에 달할 때면 충동적으로 폭식을 거듭하는데, 이는 상황 자체로나 스크린을 응시하는 것만으로 피로도를 높인다.


왜 그들은 이리도 답답한 인생을 사는가. 왜 타인이,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를 파괴하도록 방치하는 것인가. 두 작품은 그들의 전사로 답한다.


사실 도니와 찰리는 각자 트라우마에서 탈피하지 못한 인물들이다. 먼저 도니는 몇 년 전 동성으로부터 수차례 강간을 당했다. 수치심과 자책은 몸집을 불렸고, 이내 도니를 지배했다. 이후로 그는 폭력적인 환경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데 더 익숙해졌고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기혐오를 관성적으로 사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차마 말 못할 비밀을 품은 채 점차 동굴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던 것.

 

때문에 도니는 마사가 지닌 아픔, 그녀의 동기에 주목한다. 본인처럼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해 더 망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사와 도니가 서로를 구원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기댈 곳이 필요했던 마사는 결국 징역을 살게 되고, 도니는 자신의 묵혀 둔 이야기를 무대에서 그리고 가족들에게 털어놓은 뒤에야 과거를 청산하고 일상으로 복귀한다.


한편 찰리의 경우는 통감하는 아픔의 성질이 조금 다르다. 그는 오래전 동성 제자와 사랑에 빠져 아내와 딸을 버린 전력이 있다. 그러나 얼마 뒤 그의 애인은 사망했고, 공허함과 좌절, 가족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그의 삶은 점차 피폐해져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 그가 희구하는 유일한 것은 본인을 원망하며 반항적으로 자란 사춘기 딸 리즈에게 속죄하고, 그녀가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극의 초반 찰리를 적대적으로 대했던 리즈는 후반에 이르러 본인이 유년 시절 적은 독후감을 찰리가 아직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의 사랑을 느끼며 그를 용서한다. 끝으로 영화는 죽음에 이른 찰리가 비대한 몸을 벗어나는 순간을 짧게 포착한다.


도니와 찰리는 자기혐오에 점철되어 오래도록 스스로를 방치하고 학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 줌의 이해를 통해 구원됐다. 그러기 위해 그들은 동굴에서 한 발짝 걸어 나왔고, 용기 내어 고백했다.

 

우리가 지금 골몰하는 것, 우리가 지금 괴로워하는 것, 우리가 지금 격렬한 미움을 느끼는 것들 중 생각보다 많은 경우는 의외로 한 줌의 이해만으로도 해결되고 회복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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