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깊어진 모든 관계는 로맨스와 유사하다 - 가족의 탄생 [영화]

해체와 탄생, <가족의 탄생(2006)>
글 입력 2024.04.3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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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즈음이었나. 전공 수업 과제를 위해 영화 <가족의 탄생>을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그 정도로 울어 본 건 정말 처음이었다. 영화의 어느 부분이 그렇게 아팠는지, 그리고 그게 내 삶의 어느 부분에 맞닿아 있었기에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참 정서적인 영화였다며 도망치듯 급한 결론을 내렸던 기억이 난다. 다가오는 가정의 달을 핑계 삼아 괜히 영화 속 그 사람들을, 그 미련한 관계들을 다시 한번 깊게 들여다보고 싶었다.


<가족의 탄생>의 인물들은 조금 얄미울 수는 있어도 결코 나쁜 사람이 되지는 못한다. 연애하느라 바빠 딸에게 상처를 줬던 어머니, 시한부인 어머니에게 윽박지르는 딸, 떡볶이에서 나온 머리카락 정도는 모른 척 숨겨버리는 분식집 사장님, 애인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 희생적인 여자 친구 등. 내 곁에 저런 사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참 미울 것도 같은데, 영화 속 그들은 왜인지 자꾸 애틋하게 느껴진다.


3년 전, 영화를 보고 엉엉 울고 난 뒤엔 왠지 부끄러워졌던 것 같다. 그때 적힌 글에는 이데올로기, 가족주의, 대안 가족, 정상 가족 따위의 여러 키워드가 세워졌지만 결국 내가 이 이야기에서 진정으로 느낀 것은 관계의 어려움이었다. 그래, <가족의 탄생>은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그랬기에 눈물이 났던 것이고.

 

 

 

일정 수준 이상으로 깊어진 모든 관계는 로맨스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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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이 관계에 관한 이야기임을 선언함과 동시에, 얼마 전 SNS에서 우연히 지나쳤던 문장이 생각났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깊어진 모든 관계는 로맨스와 유사하다.’ 그러고 보니 영화의 모든 관계는 연애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과 유사한 정서적 충돌을 동력으로 그 흐름을 유지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관계자는 말한다. ‘너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은 나와는 남이다. 완벽한 타자이다. 설령 그가 가족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그렇다. 영화는 마치 ‘가족이라면 응당 그러해야 할 모든 것들’에 불신하는 듯하다.


그렇기에 이들은 계속해서 서로에게 기대하고, 상처받고, 애원한다. 나라면 너에게 우선이어야 하는 것 아니야? 우린 가족이니까. 너는 내 애인이니까. 우리 관계는 좀 특별한 것이잖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매자가 선경에게, 채현이 경석에게, 형철이 미라에게 그랬듯 이들은 계속해서 공동체보다 개인이 추구하는 욕구와 가치를 우선하여 따른다. 그것이 설령 상대를 슬프게 한 대도 그렇다. 영화 안의 이기적인 개인들은 마치 로맨스처럼 직접 상대와 충돌하면서도 결국엔 개인이 관계에 우선하여 서게 되는 관계성을 유지한다.

 

 


문을 여닫는 것을 결정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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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의 가족들은 우연적인 사건들의 집합으로 인해 구성되었다. 영화는 선천적인 혈연관계로 맺어지는 가족 공동체의 틀을 파괴하고, 모든 것이 파괴된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가족 형태의 가능성을 주목한다. 그렇다고 영화가 대안으로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이 기존 가족 공동체의 질서와 영 다르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영화는 가족의 틀은 파괴했으나 정서는 유지하는 식의 절충적 대안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그렇게 싸우고 나서도 밥은 같이 먹는다. 관계적 인물들은 한 번씩은 꼭 같이 밥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는 이런 가족도, 혹은 이런 관계도 있다는 식의 도전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결국 따뜻한 밥을 지어 서로를 먹이는 온기를 남겨둔다. 그 지점의 애틋함이 마음에 든다. 이 영화가 절대 나쁘게, 혹은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이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가족의 형태를, 혹은 공동체의 형태를 긍정한다고 해서 이들이 신뢰하는 공동체가 모두에게 개방적인 것은 아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매자와 미라, 그리고 채현과 경석은 함께 김장을 한다. 그때 누군가 벨을 누른다. 첫 번째 에피소드와 마찬가지로 형철이 너스레를 떨며 누군가와 함께 문 안으로 들어온다. 참 이기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불안해졌다. 다행히도 미라는 그들을 문밖으로 내보내고 빗장을 걸어 잠근다.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용인되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하고, 응당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은 희생들은 이곳에 없다. 영화 속 인물들이 더는 그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문을 닫고 여는 것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화가 제시하는 공동체의 방향성이다.

 

 

 

슬픈 이야기를 웃으며 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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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족의 탄생>의 이야기들은 너무 슬프다. 그럼에도 서로를 찾고, 의지하고, 종국엔 진심을 전하게 된다는 것은 애틋하게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아프게 느껴진다. 선경이 매자에게 그랬듯, 경석이 채현에게 그랬듯, 발화자의 분노는 청자에게 가닿지 못한다. 발화자는 이미 슬픔이 내재된 상태이지만 청자는 그 슬픔을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서운함과 원망이 쌓인 발화자의 분노는 어디에도 가닿지 못하고 멈춰선다. 언어는 계속 엇나간다. 하지만 몸은 연결된다. 이들은 싸우다가도 부둥켜 안고, 소리지르다가도 곁에 앉아 일을 돕는다. 가족이라는 관계도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보다 큰 행위, 어쩌면 말 없이 그 자체로 이해할 수 밖에 없는게 가족일지도.


영화는 모든 것을 해체한 그곳에서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이성적인 방식을 택하면서도, 결코 날카로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부하지는 않는다. 인물들의 슬픔을 전시하기보단 해소하도록 돕고, 감정이 충돌하면서도 결국엔 진심을 연결한다. 환상적인 장면이 곳곳에 삽입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영화 전체의 정서와 잘 어울리는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선경이 그토록 미워하고 원망하던 어머니의 진심을 알게 되고 모든 것이 떠오르게 되는 그 방 안과, 경석과 채현네 가족이 모여 선경의 노래를 듣다 그녀가 폭죽과 함께 떠오르는 그 하늘 위의 모습들은 누군가의 슬픔을 치유해주기 위한 제작자의 위로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가족의 탄생>은 나에겐 참 착하고 미련한 영화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이야기를 선택했음에도 그들이 포기할 수 없던 그 지점이 정서적으로 다가온다. 관계 안에서, 우리는 철저히 개인이면서도 동시에 연결될 수 있다는 것. 슬픔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이 영화가 나에게 촉발한 그 울림이 이제는 어디서 온 것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동시에 이런 이야기 앞에선 어쩔 수 없이 울 수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도 함께.



[차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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