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버지의 유산을 짊어지고 - 가여운 것들 [영화]

글 입력 2024.04.16 12:2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제가 청했습니까, 창조주여, 흙으로 나를 인간으로 빚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올려달라고?”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의 속표지에는 위와 같은 밀튼의 <실낙원> 문장이 인용되어 있다. 이는 르네상스. 동시에 창조하는 자와 창조되는 자 사이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을 관람한 사람이라면 이제는 고전이 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괴물의 탄생


 

우리는 체제 내 합리성 바깥의 것들을 말할 때 그것들을 통칭하여‘괴물’이라고 말한다. 이상한 것, 괴이한 것, 이해할 수 없는 것, 어딘지 모를 음침함과 위험성을 숨기고 있는 것. 무언가를 괴물로 만든다는 것은 그들을 인간 외의 존재로 보겠다는 선언이며 그 선언은 재차. 그렇기에 괴물이라는 인간 외 존재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인간과 인간성에 대해 질문한다. 우리가 그들과 분별되는 제대로 된 사람이란 근거란 도대체 무엇이냐며. 그렇기에 우리가 괴물에게 일임한 온갖 괴기스러움은 합리성을 떠받치는 동전의 이면이다. 그들이 비합리적이기에 근대인들은 합리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그것’과 갓윈 백스터가 만든 벨라 백스터는 모두 사람들에게 괴물로 취급받는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 아닌 과학 실험에 의해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괴물인 또 다른 이유는 그렇게 의심되는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고 말을 배우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처음에는 어린아이 수준의 어휘 능력을 지녔던 인물들이 독서와 주변 인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해 나간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이처럼 괴물이라는 말의 이면에는 인간성과 인간성이 아닌 것이 서로 긴장하며 병존한다.

 

 

 

인간이 아닌 피조물(들)



둘은 모두 실험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그 외형과 성장 과정은 상이하다. 우선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그것은 엄청난 덩치와 기이하며 추한 외형을 지닌 존재로 작중 묘사된다. 어느날 갑자기 눈을 뜬 그것을 발견한 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이를 ‘대재앙’이라 말한다. 박사는 그것이 자신이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것임에도 그 존재를 부정하며,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그 공간을 도망쳐 나오게 된다. 비록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통한 것이 아니더라도, 자기 삶에 숨을 불어넣은 존재를 우리는 전통적 의미에서 부모라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사는 자신이 잉태한 그것의 정체를 부정한다.


그렇게도 덩치가 크고 추하게 생겼다면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것의 괴이함을 인지하지 않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그것을 탄생시켰다는 것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관심 있던 것은 오직 자기 능력일 뿐 생명 자체가 아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근대 경험주의와 합리주의의 새 인간상을 보여준다. 이후 그것이 경험하는 가장 강렬한 고통이 가족 없음이며, 자신과 닮은 짝(여성으로 지칭된다. 이 점에서 그것의 성별은 남성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이라도 만들어줄 것을, 그것이 박사의 최소한의 의무임을 말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지독한 외로움을 겪어야 했다.

 

 

[크기변환]갓윈과 조교.jpg

 

 

반면 이 점에서 <가여운 것들>은 <프랑켄슈타인>과는 다른 전제들을 가정하며, 그를 기반으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외형적 특징이다. <프랑켄슈타인>이 잘생기고 촉망받던 청년이 자신과 같은 성(性)으로 추정되는 추하게 생긴‘그것’을 만드는 이야기였다면, <가여운 것들>은 이것을 역전시킨다. 갓윈 백스터의 외형이 오히려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해온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과학 실험을 통해 만든 것이더라도 벨라 백스터는 온전한 여성의 신체에 그녀가 잉태하고 있던 태아의 뇌를 이식한 것이기에, 외형적으로는 인간과 구별되지 않으며 오히려 매우 아름답다.


창조자가 된 프랑켄슈타인과 갓윈 백스터가 그 창조물에 갖는 감정 역시 상이하다. 갓윈 백스터는 괴짜스러운 면모로 다양한 과학 실험을 진행하며, 이후 벨라와 동일한 방식의 다른 여성 실험체를 또다시 ‘생산’하기도 하지만 오직 벨라에게만 부성애를 느낀다고 말한다. 비록 실험의 일환일지라도 아기와 같은 상태의 벨라에게 새로운 지식을 가르치고 감정을 교류하는 과정에서 갓윈은 벨라를 자기 딸과 같이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방식은 초기 매우 억압적이다. 평생 자신의 곁에 두고 관찰하고 싶은 욕심으로 집 바깥으로의 외출을 제한하기도 하며 이를 위한 방법으로 자기 조교와의 결혼도 종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억압적인 면들만으로 그가 벨라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벨라를 진심으로 대한다. 벨라의 자유의지를 존중하고자, 덩컨 웨더번과 벨라의 여행을 허락하는 장면은 그의 벨라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역전되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성장 과정을 거친 벨라는 당연하게도 그것과는 다른 세계관을 가지게 된다. 그녀는 외로움이 없으며 자신의 탄생에 대한 고민은 지연적으로 받아 안게 된다. 그것의 최초 욕망이 가부장적이고 전통적인 가족을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면, 벨라의 욕망은 세계를 탐구하고 싶다는 근대 합리주의에 기초하게 된다.

 

 

 

말 많은 피조물(들)


 

[크기변환]벨라 여행.jpg

 

 

벨라는 여행 중 만난 친구들을 통해 책 읽기를 멈추지 않게 된다. 가난한 이들을 만나며 슬픔을 알게 되며 덩컨과 결별하고 파리의 사창가에서 일하게 되면서는 삶의 비통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나는 벨라가 책과 경험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는 과정을 매우 흥미롭게 보았다. 자신의 창조자인 갓윈 백스터로부터 버림받지 않은 벨라는 그와 함께 보낸 인생 초기 경험 습득 방식-근대의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경험한 벨라는 이전처럼 ‘아이와 같은’ 기쁨을 느낄 수는 없지만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본가와도 같은 갓윈 백스터의 집에 돌아온 벨라는 당신이 나에게 한 행위는 잘못된 것임에도 나는 당신에게 사랑을 느낀다고 말한다. 갓윈은 이에 깊이 사과하며 그렇게 그들은 마침내 가족이 된다. 마지막 임종의 순간 벨라 곁에 누워 눈을 감는 갓윈 백스터와 자신이 부정한 피조물과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추격이자 일종의 동행을 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결말은 이렇게 달라진다.

 

 

[크기변환]벨라 마지막.jpg

 

 

벨라는 자신의 창조자이자 아버지인 갓윈 백스터의 가업을 이어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녀를 탄생시킨 해부실의 냄새는 그녀에게 위협이 아닌 평안을 주는 향기이다.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안고 근대인이 된 여성 괴물은 그러나 아버지와 같게 살지는 않는다. 자기 남편과 사창가에서 만난 여성 애인, 아버지가 만든 또 다른 여성 실험체, 그리고 머리와 몸통이 다른 수많은 생명체와 함께 가족을 구성해 살기를 결정한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티타임을 갖는 여유로운 벨라의 모습은 그녀가 받은 것과 거부한 것을 동시에 조명하는 듯하다. <가여운 것들>이 <프랑켄슈타인>을 의미 있게 계승한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프랑켄슈타인>이 제기한 근대성과 인간의 문제를 다른 가정을 통해 풀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진세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