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자연과 빛, 그리고 사람들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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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스웨덴이 그리울 때가 있다. 교환학생 생활을 하며 6개월가량 머물렀을 뿐인데, 마치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지는 곳. 춥고 매서운 날씨에 힘든 점도 참 많았지만, 학생 신분으로 수업을 들으며 매일 단지 생존만을 고민하면 된다는 점이 묘한 평화를 주었던 곳이었다.
한국에서의 바쁜 하루를 보낸 날이면, 유독 그날들이 떠오른다. 푸른 하늘과 더 푸르른 녹음, 동네를 감싸던 호수를 지나 자전거를 타던 날들이 생각난다. 그런 그리움의 한 조각을 채울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에 다녀왔다.
스웨덴에 있었지만, 정작 스웨덴의 그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영역이어서 내가 과연 제대로 이해하며 즐길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으로 느껴지는 이미지가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내가 보고 겪은 스웨덴이라면, 왠지 이런 느낌의 그림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상상. 상상은 실제가 되었다.
©Nationalmuseum Stockholm
위 그림은 올로프 아르보렐리우스의 <베스트만란드주 엥겔스베리의 호수>이다. 작품명에서도 드러나듯 숲가 근처의 한적한 호수를 그리고 있다. 비록 지역은 다르지만, 내가 머물렀던 동네와 참 많이 닮아있는 그림에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라고 하면 스위스를 많이 떠올리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스웨덴이 1등이다.
나의 동네를 닮은 위 그림뿐만 아니라, 많은 작품들이 이처럼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을 담고 있었다. 북유럽의 자연을 그린 것이다. 일반인 눈에도 충분히 아름다운 그곳의 자연환경이, 예술가들에게는 얼마나 더 감성적이고 낭만적으로 다가왔을까?
그 과정에 프랑스 예술이 불을 붙였다고 한다. 정적인 왕실 예술에 답답함을 느끼던 북유럽 예술가들이 프랑스 인상주의의 빛 표현을 적극 수용하며 생생한 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북유럽 예술의 전형이라고 불리는 '민족 낭만주의'가 탄생했다고 한다.
처음 '민족 낭만주의'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언인지 확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민족주의와 낭만주의는 어쩐지 대척점에 있는 단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림을 한 점 한 점 감상하며 그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그러다 문득 북유럽의 자연을 낭만주의의 화풍으로 담아낸 그림을 칭하는 명칭이라는 생각을 했다. 민족이라는 의미가 단순히 그 나라, 그 지역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된 것 같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Nationalmuseum Stockholm
위 그림 역시 민족 낭만주의가 잘 드러나는 그림 중 하나이다. 북유럽의 여성 예술가 안나 보베르크가 그린 <산악, 노르웨이에서의 습작>이라는 그림이다. 안나 보베르크는 여성의 사회 활동이 제한적이었던 그 당시에도 결혼 이후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친 북유럽을 대표하는 예술가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오지 탐험가'라고 칭하며 북쪽의 풍경을 많이 그렸다고 한다. <산악, 노르웨이에서의 습작> 역시 노르웨이를 방문했다가 그린 그림이다.
설산은 북유럽의 상징적인 자연자원 중 하나이다. 동·서유럽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북유럽만의 고유한 자연자원을 캔버스에 담아낸 그림들이 많았다. 자칫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요소이지만, 애정을 담은 눈으로 그려내니 따뜻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배경에 깔린 노을의 색이 정말 아름답다. 실제 작품을 보면, 다채로운 색의 물감을 일부만 섞어 바른 것처럼 각 물감의 색과 질감이 살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노르웨이 노을의 오묘한 색감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 위한 섬세함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하지만 단순히 자연만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북유럽 서민의 삶을 그린 그림도 볼 수 있었다.
©Nationalmuseum Stockholm
위 그림은 휴고 삼손의 <꽃따기>라는 작품이다. 작품 속 소녀는 생계를 위해 꽃따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그 속을 살아가는 서민의 가난하고 고되다. 삶은 현실이라는 의미이다. 아름다운 풍경에 젖어 눈을 가리고 현실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북유럽 예술가들은 이를 간과하지 않았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 역시 그들에게는 주요한 작품의 소재였다.
자연과 빛, 그리고 사람들.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풍경에 눈이 즐거웠고 온화한 빛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그 속을 살아가는,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사람들을 보며 당시의 실제 삶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익숙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이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작품의 깊이와 완성도가 충분하다면, 이렇다 할 배경지식이 없어도 푹 빠져드는 법이다.
전시를 보고 나오며 스웨덴이 곱절은 더 그리워졌다. 나는 알고 있으니까, 그들의 그림이 거짓이 아님을.
[김규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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