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형식을 창조한 선구자, 빅토르 바자렐리

전시 '빅토르 바자렐리: 반응하는 눈' 리뷰
글 입력 2024.01.1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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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관람하다가 인상 깊은 구절을 읽었다.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으며, 창조하지 않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현대미술 작가 이동기의 말이다. 그는 <남과 여>라는 작품에서 충분히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미지를 가져와 회화로 그려내며 이렇게 첨언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창조란 없다지만, 창조라는 행위와 가장 밀접해 보이는 직업인 작가가 창조하지 않고 싶다고 선언하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아무것도 창조되지 않은 작품을 창조하는 사람. 그의 손에서 작품이 탄생했다는 건 명백하다. 그가 창조해 낸 건 작품이 몸담은 실체보다 내적인 의미일 테다.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일도 작가의 업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실체 이면의 무언가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실체와 그 ‘무언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절묘하게 들어맞는 지점에서 작가의 성취는 탄생한다.


20세기 작가 ‘빅토르 바자렐리’는 무엇을 지니고 있었을까? 그는 ‘옵아트’의 선구자라고 불린다. 하나의 미술 사조의 선구자라고 명명된다는 건 그가 확실히 전에 없던 작품을 창조했다는 증표가 된다. 그의 창조는 과연 무엇일까?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빅토르 바자렐리: 반응하는 눈>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시기별로 톺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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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는 전시 <반응하는 눈>이 열렸다. 이 전시를 계기로 ‘타임’지 기자가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을 옵티컬아트의 줄임말인 ‘옵아트’로 명명하며 역사가 시작되었다. 빅토르 바자렐리는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동명의 전시가 지금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헝가리 국립 부다페스트 뮤지엄과 바자렐리 뮤지엄에서 대거 출품된 140점의 작품들과 함께.


빅토르 바자렐리는 광고 디자이너로 그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당시 프랑스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앵포르멜 화풍을 실험하거나 그래픽 예술을 통해 광학 효과를 연구하며 순수 미술가의 노선을 밟아왔다. 이러한 그의 경력은 독보적인 스타일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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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 Vasarely, 1952, Borr, Vasarely Museum, Budapest

 

 

그는 자연이나 도시에서 큰 영감을 얻기도 했다. 지중해 풍경의 아름다움이나 석조 주택의 구조는 곧 작품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자갈과 문틈, 그림자, 타일 같은 사소한 발견도 그의 작품 세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위 사진의 작품 ‘보르’는 특별히 마음에 들어서 첨부했다. 자갈에서 영감받은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그는 원자가 3차원적으로 반복해 배열되어 있는 결정 구조의 자연적 기하학적 구조를 관찰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바자렐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광학적 현상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그래픽 아티스트 과정을 연수하던 때에도 일련의 선을 겹쳐서 물결치는 효과를 실험한 적도 있다. 프로젝터를 이용해 광선의 경로, 왜곡, 광학 현상에 대해 연구하며  영감을 얻기도 했다. 이러한 일관된 관심과 깊은 연구가 그를 독보적인 예술의 지평으로 이끌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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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 Vasarely, 1957, Vega, Vasarely Museum, Budapest

 

 

“사각형을 약간 회전시켜 마름모를 만들어 새로운 환상적 공간을 창조했습니다.”


옵아트를 발명한 순간을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움직임을 창조했다. 정적인 회화에서 동적인 운동을 부여했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의 눈은 반응한다. 망막을 자극하고 시청자를 위한 감각적 경험을 개발하고자 하는 그의 열망이 그를 예술사에서 ‘광학 예술’의 대가로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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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 Vasarely, 1964-1974, Marsan-2, Vasarely Museum, Budapest

 

 

그가 말하듯 바자렐리의 작품은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기보다 행동하도록 자극하고 거친 쾌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물리학, 수학, 심리학이 가진 성과를 연구하고 이를 자신의 색채 이론에 활용했다. 인간의 눈인 망막에 도달하는 강한 자극은 사람의 시각뿐만 아니라 의식도 결정할 수 있다고 믿었고, 혼합되지 않은 순수한 색상인 총 220가지 색조만을 자신의 작품에 활용했다. 그리고 자연을 닮은 기하학적 형태 시스템을 설계해 작품을 구성했다.

 

이는 현대의 컴퓨터 그래픽과 아주 흡사해 보인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성장하는 예술가는 그리기 기술이나 재료에 대한 지식만큼이나 과학의 법칙에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도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 예술을 원했으며,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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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 Vasarely, 1979, Stri-oet, Vasarely Museum, Budapest

 

 

이제 예술의 기능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은 그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는 색과 형태의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하여 ‘색채 형태 알파벳’이라는 새로운 조형 단위를 개발했다. 시각적 이미지로 언어 체계를 창조한 것이다. 그는 예술의 민주화를 꿈꾸었다. 재생산과 복제가 가능한 작품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자신의 작품을 따라 그릴 수 있는 구성 프로그램까지 제작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실물로 보아도, 사진을 찍어도, 시트지로 제작해도, 온라인으로 감상해도 동일한 시각적 효과를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옵아트의 역동성을 최대한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그의 작품을 돌이켜보았을 때 특별히 유명한 작품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가 하나의 걸작을 완성하기 위해 그린 작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형식을 창조했다. 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너머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예술을 모두에게 동등한 위치로 끌어내리고 하나의 시각적 언어를 창조했다. 그런 그의 선구자적 행보를 되짚어보는 일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창조에 관한 밀도 높은 영감을 선사할 것이다.

 

 

[문충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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