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졸업 패션쇼 하는 법 [패션]

가위질에는 컨트롤 Z가 없다
글 입력 2024.04.0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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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패션쇼를 준비했던 9개월의 과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졸업 패션쇼는 의상학과나 패션디자인학과를 전공한다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패션쇼를 준비하는 과정은 무엇보다 정교한 계획 하에 일어난다. 단 한 번의 잘못된 계산과 실수로도 큰 시간과 비용을 낭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제작 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또한, 기존에 존재하는 기성복이 아닌 새로운 구조의 옷을 만들어야 했기에 창의력 이상으로 건설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첫째, 머릿속에 생각하는 형태를 실제로 구현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둘째, 구현한 형태가 의도한 실루엣과 핏이어야 한다.

셋째, 결과물이 모델의 런웨이 과정에서 망가지지 않도록 견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컨셉과 디자인이 정해지면, 가장 먼저 국내외의 패턴(옷본. 의상 제작 계획에 쓰이는 전개도)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해야 한다. 기본 패턴의 치수에서 스케일의 감이 오지 않는다면 입지 않는 옷들 중 치수 설정에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을 분해해서 분석하기도 한다. 나는 교수님, 동기들과의 상의와 더불어 따로 컨택한 의상 제작실 선생님들께 자문을 구하며 원단과 패턴에 따른 구현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때, 디자인이 옷이 만들어지는 규칙에 위배되는 경우 컨셉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디자인을 수정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 끝에 패턴의 기본형을 제작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후 원단의 신축성과 두께에 따른 실루엣을 판단하기 위해 동대문 원단 시장에 가서 원단 스와치를 떼오고, 그것들을 비교하여 최적의 원단을 찾아낸다. 보통 한두 달 가량 200개 이상의 원단 스와치를 본봉에 들어가기 전까지 끝없이 찾는다고 보면 된다.

 

이때 원단과 부자재를 실제로 수급하는 과정에서, 학생을 꺼리는 동대문의 상인들과 문제없이 소통하기 위해 업계의 여러 전문 용어들을 외우며 대비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원단을 학생 신분으로는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땐 보통 인터넷 쇼핑몰을 하는 사업자라고 거짓말을 치는 경우가 많다. 졸업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필요악과 같은 부분.

 

의도한 실루엣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원단의 특성과 모델의 신체 사이즈를 반영해서 원형 패턴을 변형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사전에 모델의 신체 곳곳의 치수를 디테일하게 측정하고, 이를 토대로 가봉(비교적 두께와 성질이 비슷한 저렴한 천으로 임시로 만드는 옷)을 제작한다. 미묘한 핏의 차이를 파악하고 결정하기 위해 여러 가지 버전으로 가봉을 만들어보고 수없이 직접 입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최종 패턴을 정립된다.

 

나는 본봉(실제 원단으로 제작한 옷) 제작 과정에서는, 의상들 중 일부를 자문을 구했던 의상실에 제작을 의뢰했다. 의상실에 제작을 맡기면 돈은 들지만,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기본적인 퀄리티를 보장할 수 있다. 이 때 머릿속에 생각한 구성이 구현 과정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작업 지시서를 모든 치수를 기입하고 그림을 그려 설명하는 등 섬세하게 작성해야 한다.

 

의상이 완성된 후에도 실제 움직이는 과정에서 옷이 망가지거나, 모델의 걸음걸이를 방해하거나, 악세사리가 떨어질 가능성 등의 위험에 대비가 필요하다. 모델과의 본봉 피팅과 교수님의 컨펌을 통해 해당 요소들을 상의하고, 이를 토대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체크하며 마지막 수정과 보완 작업을 거쳤다.


쇼 당일 현장에서는 세트 제작자, 교수님, 라이브 연주자, 헬퍼로 참여하는 후배들, 모델, 메이크업 아티스트, 포토그래퍼 등 다양한 분야의 인원들이 모인다. 특히 백스테이지에서 모델의 옷을 빠르게 갈아입혀야 하는 담당 헬퍼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헬퍼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입히는 순서와 원하는 핏을 연출하는 법을 설명한 문서를 제작하여 쇼 전날 전달했다. 또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다시 한번 예시를 보여주며 주의점을 숙지시킨다. 이후 합을 맞추며 3번의 리허설을 거쳤고, 곧 졸업 패션쇼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졸업 패션쇼를 마치면 어떤 것들이 남는가?

 

보통 런웨이 의상으로는 기업 취준용 포트폴리오에 넣기에 쉽지 않다. 돈과 시간도 꽤 많이 든다.

 

하지만 예상되는 문제를 설정하고 그에 대비하기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며, 이를 반영하여 정교한 결과물을 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또한 장기간의 목표 달성을 위해 반복되는 육체노동 속에서 꾸준히 체력 관리를 하며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는 법 또한 길러진다. 동시에 여러 직업군의 사람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며 규모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법 또한 길러지게 된다.

 

무엇보다 인생에서 잊지 못할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우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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