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끝내 함께 할 수 없었던 패왕과 우희 [영화]

글 입력 2024.04.0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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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는 중일전쟁부터 국공 내전과 공산당의 승리까지 중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전통의 파괴와 새 시대의 태동을 절절한 사랑으로 꿰어낸다. 그 중심에 눈을 뗄 수 없는 미장센과 과 대배우 장국영의 압도적인 연기를 내세워 관객에게 고도의 몰입을 선사한다. 또한 청나라에서 중화민국으로의 이행은 갓난 아기로, 일제의 침략은 두지 와 시투의 헤어짐으로, 해방은 사부님이 죽고 새로운 시대를 맞는 것으로, 중화민국의 난폭한 정치는 주샨의 유산을 통해 새로운 시대가 태동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고도의 상징을 통해 시대의 흐름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문화혁명은 갓난 아기(=샤오쓰)가 자라 자신을 키워준 시대를 배신하고 이들에게 반기를 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때때로 삽입된 롱테이크는 원래 ‘극’의 느낌을 살리고, 일렁이는 불 혹은 하얀 천 너머로 보이는 청데이의 얼굴은 불확실한 시대만큼 흐릿한 잔상을 남긴다.

 

아노미 상태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1924년부터 1977년 사이 중국은 격변을 겪었다. 시대의 격변과 더불어 전통이 파괴되고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인간성을 상실했다. 그중에서도 특정 계층과 인물이 이 인간성 상실에 더 취약하다는 것이 영화를 통해 드러난다. 사람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으면서도 천박하게 여겨진 세 등장인물의 삶이 그러했다. 샬루는 청데이가 일본군 앞에서 노래 부른 것을 고발하고 청데이는 이에 맞서 주샨의 매춘부였던 과거를 폭로한다. 서로에 대한 음해를 퍼붓고 끝내 샬루가 불 앞에서 주샨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외치는 모습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떠오를 만큼 인생의 무상함이 절절히 다가오는 대목이었다. 영화는 규범이 부재하고 혼란으로 가득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지난 어리석음은 되풀이되고 다만 시간만이 흘러 누군가의 자살, 법정 공방 등 유사한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희.jpg

 

 

정체성을 결정짓는 요인은 무엇인가? - 특히 청데이의 경우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모습이 드러난다. 영화에서는 은유적으로 두 장면이 등장한다. 처음 엄마가 두지의 손가락을 자른 것은 거세를 형상화한 것이고 담뱃대로 입을 쑤시는 행위 또한 여성성을 강요하는 것이다. 두지는 이 행위 끝에 아무리 매질을 해도 ‘난 본디 남자로 계집이 아닌데...’라고 바뀌지 않던 가사를 고쳐 부르는데, 나는 이 장면이 성공에 대한 욕망 앞에서는 성을 팔아넘긴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원대인에게 몸을 파는 것도, 외부요인의 강압이 아닌 실제 우희가 되어야 했던 그의 욕망이 투영된 것이었다. 즉, 데이의 정체성은 욕망에 의해 좌우된 것이다.

 

한편 기녀이던 주샨의 정체성은 타인에 의해 규정되었다. 자신이 아무리 떳떳하게 살아온들기녀였던 과거만으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심지어 사랑하는 남편에게 버림받기에 이른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정체성을 버리고 살아가야 남들이 환호한다는 자괴감, 그리고 인간의 나약함의 결과물은 자살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시작되는 모든 불행 - 영화 스토리와 경극 일각 평행하다고 볼 수 있다. 결말 부분에서 우희와 데이는 모두 패왕, 즉 샬루의 칼에 죽는다. 이런 플롯에 따라 관객도 데이와 우희를 겹쳐 보게 되는데, 그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데이의 불행은 이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간극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이 현실에서도 우희이기를 바라지만 결코 그 괴리는 좁혀지지 않아 일생을 불행히 살아간 것이다. 이 괴리감이란 것은 역사적으로는 혁명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된다. 불만족스러운 현재와 이데올로기 사이의 간극이 혁명을 부추기지만, 이것은 불행을 가져오고 말았다.

 

그 시대의 중국처럼 씁쓸함을 남기는 영화, 패왕별희이다.

 


[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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