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종말은 매일매일 오고 있어요 그러니

2029년에 종말이 온다면
글 입력 2024.03.3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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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 [사진=넷플릭스]

 

 

아래 글은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에 대한 스포를 포함합니다!!

 

물이 허리까지 차오른 폭우 속에서도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난 출근을 하겠지. 그런 우스갯소리도 가끔 하곤 한다. 정말 무서운 점은 태풍이 온다고 해도 우리는 꾸준히 출근을 해왔다는 점이겠지...그게 직장인의 숙명이겠지...


이게 우스갯소리가 아닌 곳이 또 있다.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 7개월을 남겨둔 시점에서도 줄지어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 최근에 계속 지구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푸념과 정말로 이러다가 지구가 망하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말을 번갈아 했더니 넷플릭스 알고리즘에도 종말이 등장하고 말았다.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종말을 앞두고 여태 해보지 못한 도전과 일탈을 다루는 재난물은 너무 많다. 질서는 사라진다. 쌓아 올린 문명이 가라앉으니, 추구해야 할 미래도 사라진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한다고 다 그렇게 해야 하나? 시끄럽고 불편하기만 한 파티에서 벗어나 캐럴은 지루한 표정을 하고 주변을 살핀다. 뭘 해야 하지? 내가 틀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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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 [사진=넷플릭스]

 


그러던 중 캐럴의 눈에 띈 것은 말끔하게 차려입고 지하철을 타는 한 여성. 도시 한가운데 거짓말처럼 운영되고 있는 한 사무실이 있었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앉아 기계적으로 더 이상 필요 없는 업무를 하고 있다. 캐럴도 빈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한다. 그의 얼굴은 기뻐 보인다.


이 사무실의 이름은 distraction(극 중에선 '기분 전환'이라고 번역). 일상의 루틴을 잃고 소속된 곳이 사라진다는 건 많이 외롭고 불안하다. 하다 못해 퇴사 후 출근을 하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도 불안해지는데 말이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내일 봐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에서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종말을 피하고 있었다.


사람의 뇌는 스트레스 상황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잠시라도 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끔 한눈을 팔게 만든다. 그 용어도 바로 distraction이다. 지구의 종말, 죽음은 우리가 겪어본 적 없는 스트레스일 것이다. distraction 속 다양한 사람들은 익명으로 존재한다.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이지만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그 속에서 캐럴은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네기 시작한다. 멈췄던 사회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서로를 인지했고, 내일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삶을 되찾고 나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시시한 종말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것도 파괴되지 않고 행성이 다가오면서 일그러지는 지구에 희생되는 사람들도 없다.


회차가 지나갈수록 천천히 깨달았다. 슬프다. 어떤 종말보다 절절하게 가슴을 건드린다. 충돌이 예고된 행성이 하늘을 가득 채울수록 사람들이 발작처럼 터뜨리는 울음을 이해하게 됐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한순간에 삶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에 어떻게 경중을 따질 수 있을까. 어떻게 시시할 수가 있나.


한참 사춘기 땐 죽음을 생각하면 오금이 저리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불합리하게 느껴지곤 했다. 어차피 죽을 거면 나는 왜 지금 열심히 학교를 다녀야 하는 것인가. 애초에 죽어야 한다면 왜 태어난 것인가, 그런 어마어마하고 무거운 고민들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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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 [사진=넷플릭스]

 


지금은 죽음이나 종말보단 월요일이 무섭다. 나의 뇌는 매일 스트레스에서 도망치기 위해 바둥거린다. 황소에게 전화를 걸고, 친구들과의 카톡방을 연다. 뛰고, 매운 음식을 꺼내 먹고, 쇼츠를 보면서 낄낄 거리고. 스트레스로 합리화한 자극을 삶으로 가져온다. 해야 할 일과 의무들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나의 글을 읽고 있는 순간도 당장 해야 할 일을 피해 도망 온 누군가의 기분 전환일까. 그렇다면 조금 미안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번 글은 종말 얘기만 한다.


아...그리고 가장 가까이 예고된 종말은 2029년이다. 2029년 4월 13일 소행성 아포피스가 지구에서 3만7399km 거리까지 가까워질 예정이다. 거리가 체감이 잘 안 된다면, 위성을 생각하면 된다. 3만7000km 거리는 인간이 띄운 정지궤도 위성만큼의 거리다. 다시 말해 육안으로 소행성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아포피스가 어떠한 변수로 인해 우리를 향하게 된다면 지구는 궤멸할 수도 있다. 아포피스가 우리를 으깨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느 날 지구의 기후변화에 의해 변해버린 생태계 속에서 멸망할 수도 있고.

 

매일매일 종말은 우리를 위해 달려오고 있다. 그 매일 속에서 의미를 찾기는 쉽지 않다. 어느 날은 맛있게 먹었던 케밥을 또 먹고 싶어서, 어느 날은 운동을 가고 싶어서, 어느 날은 네가 보고 싶어서 살고 싶다.

 

유치하게도 묻고 싶다. 당신은 종말이 가까워진다면 뭘 할 건가요.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종말이 가깝다면 내가 사랑하는 곳들은, 사람들은 그대로 유지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 사람들을 오래 보고 싶을 뿐, 나머지는 하나도 모르겠다. 그 거대한 감정을 끌어안기엔 아직 내 품이 너무 작다. 2029년 세상이 멸망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건가요.


p.s 2029년 4월 13일은 금요일이다.


+ 9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9화는 갑자기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핑과 여행을 즐기면서 파도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는 캐럴. 잠깐 9화에서 감상을 멈추고 그만 볼까 생각했다. 8화까지의 이야기와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라...그리고 10화를 시작하는 순간 깨닫는다. 이것은 세상의 멸망이 가정되지 않았을 때 어쩌면 서핑을 좋아할지도 모르는 다른 차원의 캐럴에 대한 이야기다. 느낄 수 있는 절망적인 감각은 내가 탈 수 있는 아름답고 큰 파도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점이 전부인 그런 다른 차원의 세계의 이야기. 9화가 있어서 10화가 더 슬퍼 보인다. 일상 뒤 등장한 멸망은 너무 가까웠다. (하나 더, 9화의 캐럴의 눈은 초록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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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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