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람 없이는 사람으로 못 사는 사람들 - 장석조네 사람들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4.0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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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의 <장석조네 사람들>은 어딘가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떠오르게 하는 지점들이 있었다. 토속 언어의 잦은 사용으로 읽는 내내 사전을 곁에 두어야만 했던 점이나, 방언을 비롯한 정겨운 관용구, 속담 등을 생생히 옮겨 현실성을 극대화한 점이 특히 그러했다. 특히 <장석조네 사람들>은 이북부터 경상도까지 다양한 지역의 방언을 활발히 교차해 거시적인 배경 설명 없이도 당시의 시대성과 서울(미아리)의 공간적 특징을 엿볼 수 있게 한 점이 인상적이다. 1인칭 화자의 회상과 향수를 묘사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고향에서 밀려나 서울에서 셋방살이를 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와 장소에 대한 아릿한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관촌수필>과 겹쳐 보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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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조네 사람들>은 ‘한 지붕 아래 아홉 개의 방이 한 일 자로 늘어서 동네 사람들이 기찻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장석조씨네 집터(p.10)’의 아홉 가구 세입자들의 삶의 단편을 정겹게 재현하고 있다. 각 장마다 주인공이 달라지는 옴니버스 구조이지만, 인물들은 각자의 삶을 일궈가는 동시에 서로의 삶에 감초 같은 조연이 되어 다양하게 관계 맺는 모습이 드러난다.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앞선 장의 주인공이었던 인물이 뒷장에서 까메오처럼 등장하는 걸 발견할 때는 반가운 마음까지 일었다. 당시 무리를 이뤄 셋방살이를 하던 이들의 관계 자체가 그들이 거주하는 기찻집의 구조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고 느낀 것은 이 때문이다. 각각의 공간은 칸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결국 벽과 벽 사이로 맞닿아 길게 이어져있다. 각 방에서는 개개인의 은밀한 사정들이 펼쳐지지만 그들은 마치 진한 음식 냄새처럼 얇은 벽을 타고 옮겨지고, 모든 방에 서서히 스며들어간다. 

 

둘남 에미는 동생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제 발로 도망간 것이라더라, 작은 겐짱이 정말 제 형수와 바람이 난 것이라더라, 흥남댁 딸 옥자가 이번에는 껌둥이를 데려왔다더라… 소문의 종류도 내용도 다양하다. 장석조네 사람들에게 사연이란 기찻집의 변소처럼 일종의 '공공재'이다. 그러나 변소에는 똥 푸는 광수 애비의 존재가 필수적이지만, 이들 사이에서 소문의 굴을 깊이 파서 진실을 드러내려는 시도들은 구태여 발생하지 않는다. 사실 ‘진실’이라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가치로 보인다. 그들 안에는 잘 먹고 잘 배설하는 것이 살 길이라는 삶의 진실만이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남들 사는 이야기는 꼭 내것 같지만 또 아주 그렇지만도 않았을 터이다. 어쩐지 작가는 이 시절을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못하고 오지랖만 뻗쳐나가던 때’라고 비판하는 것도, ‘오늘 날과 달리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던 참 정겨웠던 시대’라며 치켜 세우는 것처럼도 보이지 않았다. 그 시절 도시 빈민들의 삶을 나열해놓고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밀어둔 기분이었다.

 

인상깊었던 장은 「별을 세는 남자들」이었다. 앞선 단편들로 어느 정도 특징과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던 세 인물의 등장이 특히나 반가웠다. 양은 장수 최씨, 겐짱 박씨, 그리고 광수 애비는 술판을 벌이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각자에게 있어 별의 의미란 무엇인지 이야기하는데, 인물들의 삶을 장식하는 것이 가난뿐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부분이었다. 고기와 술, 돈을 얻기 위한 끈질기고 구차한 생존 투쟁 이면에는 각자의 별의 의미를 마음 속에 새겨가는 진실하고 순수한 얼굴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돈과 음식뿐만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삶의 조건들을 내면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별에 대한 추억을 나누는 세 사람의 모습처럼, 그 애써 부여한 의미들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과정까지를 포함한다. 아홉 가구 세입자 중 하나가 되어 그들의 사연을 관찰하는 기분에서 벗어나 인물 자체에 이입해 그 내면을 느끼는 체험까지 가능케 한 장면이었다. 

 

이런 일말의 낭만은 후에 「빵」에서 ‘어쨌거나 이들은 서글픈 생존투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겠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흐려졌으나, 삶을 맞붙인 이들 사이에는 서로를 쉬이 포기하지는 못할 단단한 연줄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지워지지 않는다. 모여 앉아 함께 빵의 온기와 그에 대한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이들, 내가 영영 사라지더라도 나의 역사와 생활을 기억할 이들의 존재는 무엇보다 내가 동경하던 삶의 조건들이다. 서로 삶의 증인이 된 이들은 하나의 기차를 나눠 탄 것처럼 같은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간다.

 

흔히들 ‘요즘 사람들은 이웃 얼굴 하나 모르고 산다’는 푸념을 하지만, 기찻집 사람들이 저마다의 생존 투쟁을 이어간 것처럼 현재 우리는 삶을 이어가기 위한 조건으로 ‘무지’를 받아들인 듯싶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추측을 줄이고 그의 생활에 내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반대로 나 역시 내 작은 영역에 누군가의 발자국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것. 그것만이 내 생존권을 보장해준다는 치기어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인접한 가구에서 들려오는 작은 생활 소음들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고 있구나’하는 안온함보다는 온전한 내 공간을 침범당하는 듯한 불쾌함이 선행하고, 이는 곧 살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빈곤한 처지에 대한 짙은 혐오로 이어지기도 한다. 벽이 얇고 저렴한 건축 자재로 부실하게 지어진 집일수록 생활 소음은 더더욱 참기 힘든 것이 되고, 이는 곧 제 처지에 대한 빈곤한 비관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런 나에게 <장석조네 사람들>은 참 시의적절한 작품이다. 한때 사람들이 이렇게 기찻칸 같은 집 속에서 자의든 타의든 함께 살아가며 생활을 나눴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우면서도 신선한 감각을 일깨우는 것 같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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