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북극에서 온 편지 - 북극을 꿈꾸다

글 입력 2024.03.1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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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과학을 소재로 하는 에세이 하나를 읽었다. 디스토피아나 SF 같은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연 안에서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에 가까웠다. 제목에 빠져 읽게 된 책이었는데, 책 속에 보고된 약간의 자연 이야기가 꽤나 흥미로웠다. <북극을 꿈꾸다>도 그런 흥미로움을 더 깊게 느껴 보고 싶어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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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본 길들지 않은 새들의 헌신적인 삶과, 순식간에 코콜릭강을 건너 북서쪽으로 향하던 작은 카리부 무리의 자유분방함을 기억한다. 카리부들은 밤 햇빛에 물벼락을 끼얹으며 야생마들처럼 껑충껑충 뛰어 물을 건넜고, 반대편 둔덕에 이르러서는 커다란 개들처럼 몸을 털어 운모 가루처럼 반짝이는 물방울들을 온통 사방에 흩뿌렸다.

 

얼굴에 느껴지던 빛의 감촉을 기억한다. 풀을 뜯는 카리부들 사이로 갑자기 질주하던 새끼들, 그리고 결연한 새들이 품고 있던 따스한 알의 느낌도. 그제야 나는 햇빛이 얼마나 자비로운지 알게 되었다. 내 관습적인 인식으로 보면 말도 안 되지만, 한밤중에도 태양이 빛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너그러운가. 수 세기 동안 이어진 겨울의 증거를 그처럼 웅변적으로 드러내는 땅에 사방으로 넘쳐흐르는 연민이라니.

 

  
이렇듯 다른 시각들 덕분에 이 북방 대지에서 인간의 미래는 유동적인 것이 되었다. 그래서 이곳은 누구나 자기 희망의 투사물로서의 꿈을 만나는 곳이 되었다. 북극의 새를 보러 가는 즐거운 계획으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면 좋겠다는 지극히 사소한 희망이든, 북극에서 쥐어짜낸 과학 지식으로 공동체에 이바지하겠다는, 개인으로서는 사뭇 원대한 소망이든, 각각의 꿈에는 자기 삶이 아무 의미 없이 소모되지 않기를 바라는 개인의 희망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큰 꿈, 인간의 꿈 이야기를 우리는 수천 년 동안 간직해왔다. 이 이야기는 하나의 질문, '과거의 지혜가 미래를 압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따르는 결단과 희망이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영원한 대화에 관한 이야기이며, 우리끼리의 대화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도와 희망을 둘러싼 대지와의 대화, 이를테면 평원에 내리는 뇌우나 어린 산의 갈쭉갈쭉한 선이나 외딴 호수에서 갑자기 날아오르는 오리 떼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경외감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4만 년 동안이나 이 대지에서 우리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문해왔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단순하고 변하지 않는 믿음이 하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대지 위에서 현명하게, 그리고 잘 살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대지에 깃든 모든 것을 존중하는 태도를 통해 우리를 둘러싼 답답한 무지를 깨칠 수 있으리라는 믿음.
 

 

처음에는 이 책이 북극에서 겪은 자연의 변화에 대한 기록이리라 생각했다. 그런 내용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변화'라는 것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민감하게 바라보고 인간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조금만 읽으면 그 생각은 흐릿해진다. 이 책은 자연의 장엄함을 담고 있다고 말하는 게 어울려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땅 자체에 대한 애정, 그리고 먼 곳의 겨울을 보내며 포착한 것들에서 시작한다. 책이 상당히 두꺼운데, 이 두꺼운 책을 쓰게 만든 만큼 작가의 눈에 포착된 세계는 때로는 환상적으로, 때로는 현실적으로 머리에 그려진다. 가 보지도 않은 북극의 모습이나 본 적 없는 북극곰의 모습, 이름을 입으로 부르고자 한다면 몇 번을 틀리고야 정확히 발음하게 되는 여러 동물들의 모습까지 말이다.

 

  
곰을 만나는 일, 삶 전체를 걸고 곰을 만나는 일은 개인적인 무언가를 극복하는 일이다. 그런 만남은 고요하고 죽은 듯한, 숭고한 평원에서 일어난다. 성공하면 자신 안에서 뭔가 근원적인 것, 씨앗 같은 것을 발견한다. 말 그대로, 이겨야 살아남는다. 살아남으려면 통찰과 인내, 웃음이 필요한 가혹한 땅에서 자신의 삼과 동족의 삶을 확신하는 일. 그것이 곰에게 닿는 일. 곰의 선물이다.
 
이런 온갖 신경 쓰이는 우려를 뒤로하고 나는 어느 5월 오후에 새끼를 거느린 암컷을 찾고 있는 두 북극곰 생물학자를 따라 랭커스터 해엽 해빙 위로 나갔다. 나는 둘을 잘 알고 신뢰했으며 좋아했다. 나는 또 그들이 자신의 작업에 대해 갖는 양가감정애도 공감하고 있었다. 둘 중 한 명은 언젠가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암컷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암컷은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새끼들과 함께 눈 더미에 등을 기댄 채 텅 빈 해빙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혼자 생각했어요. 세상에나, 나는 왜 이 동물들을 귀찮게 하고 있는 거지?"
 

  

다소 논문처럼 생겨서는 그저 길고 긴 기록의 내용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의 매력이라면 매력이었다. 작가가 북극에서 지내며 바라본 세계가 그대로 담겨 있으니 현장감이나 생생함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는 듯하다.

 

앞서 이야기 했듯 나는 이 책을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를 논하고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관찰한 것 뒤에 자연의 보존에 관해, 혹은 인간들의 행동에 대한 비판이 쓰이리라 생각했다. 그런 내용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장 그 자체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무어라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거대로 인정을 하고 있었다.

 

동물들끼리의 사냥이나 과거 동물(북극곰 같은)들에게 서양 사람들이 가했던 일, 북극에 거주하는 과정에서 보게 되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 그럼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곤 했던 일들. 그 이야기들을 살갗으로 느끼게 된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꿈 중 하나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아우르는 존엄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바람 중 하나는 그런 존엄을 우리 각자의 꿈으로, 많든 적든 본보기로 삼을 수 있도록 각자의 삶으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한 투쟁이 투쟁이 된 이유는, 성인의 감수성이 삶의 모든 어두운 맥락들을 포괄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을 찾아야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방법은 인간의 계획이 닿지 않은 땅, 원초적인 질서가 충만한 땅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나는 베링해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손을 파카 가슴께에 엇갈려 대고 북쪽을 향해, 생명이 가득한 저 거대한 해협과 얼음과 바다를 향해 허리 굽혀 절했다. 나는 지구의 북쪽 가장자리에 걸린 엷은 노란색 하늘을 위해 잠시 허리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나는 등이 아파 오고 내 마음속 범주들과 구상들과 계획들과 사고들이 비워질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나는 땅 위에, 피부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의 장소에 선 내 삶의 한순간을 증명하는 단순한 증거 앞에 절했다.
 

그때 얼핏 내 욕망을 본 것도 같았다. 그 땅과 동물들은 꿈을 좇다가 마지막에서야 발견하는 어떤 것과 같다. 진짜 땅의 가장자리가 내가 꿈꾸던 어떤 것의 가장자리와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꿈꾸는 것은 그저 하나의 유형, 뭔가 아름다운 빛의 유형이었을 뿐이다. 꿈과 현실을 하나로 만드는 상상력의 끊임없는 작용이 인간 진화의 한 표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그 세계가 어떤 세계든, 그 세계는 저 멀리에 있다. 그러나 그 윤곽은, 그 전조는 이 땅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길을 찾아내리라는, 실질적인 희망을 품을 수 있다.
 

 

대지가 품고 있는 비밀이나 지구에 살고 있는 동물, 식물 따위는 인간이 결코 헤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 또한 그 안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시간 우리는 자연을 이용해 왔고, 연구해 왔다. 그 일들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과거에 옳다고 여겼던 것이 이제는 옳지 않은 일일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잘못을 덮어두고 아직까지 그 케케묵은 옳음을 따르고 있는 이들을 비난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그들과 나의 사정은 애초에 다른데.

 

북극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옳다, 옳지 않다를 내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분명한 건 나는 그저 오늘 시키려 했던 배달음식을 포기하는 것, 가방을 들고 가서 장을 보는 것, 분리수거를 하는 것 정도일 것이다. (물론 이는 비단 북극을 위해서만의 일이 아니다.)

 

나와는 너무 먼 대자연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현실적인 문제들이 자꾸 떠올라 괜히 혼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자연을 위해야지, 하고 계속 말하고 있는 나의 말도 자연을 대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의도와 조금은 엇갈려 있는 것이리라.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북극의 이야기를 들을 때만큼은 자연의 아름다움, 자연을 구성하는 존재들의 속삭임을 온전히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것이 주는 감사함이나 경외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연스레 가르쳐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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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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