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고전문학]

글 입력 2024.02.1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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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넘길 페이지가 없다니! 그럼에도. 여전히. 책 제목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그럴만도!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으니 말이다. 처음 두 장은 읽고 또 읽고 읽어야 하느리라! 반쯤 읽다가도 다시 돌아와서 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기 전에도 읽고, 책을 덮고 나서도 읽고 두 번 세 번 읽어야 할 것이다. 나의 초라한 뇌로는.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어떠한 가치 판단이 아닌 그저 ‘가벼움과 무거움’이 얼마나 신비롭고 미묘한 모순인지에 대한 여는 말로 이해된다. 그리고 그 중 무거움!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영원회귀가 등장해야만 하는 것이다. 영원회귀가 정말이라면! 세상사(한번뿐인사건들이있어야존재하는)는 그 의미를 잃고 말 것이고, 도덕적 판단도 무의미해진다. 니체는 영원회귀를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한다. 영원한 영겁이 가정된다면 모든 행위와 판단들의 무게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벌크업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로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내세우고 초인을 등장시킨다.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하는 성질의 것들이다.) 다름이 아니라! 니체는 영원회귀 세계를 통해 ‘일회성’에 관한 실존적 물음을 내던진다. 우리들의 삶에 존재하는 분명한. 이 온갖 것들의 찬란한 가벼움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무거움과 가벼움, 무엇이 긍정이고 부정인가? 사랑과 정치, 우연과 필연,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탐구. 밀란 쿤데라는 삶의 모든 것들을 다루고 있다. 심지어는 꽤 친절하다. 문장과 문장간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며 이해에 필요한 모든 정보는 제공된다. 따라서 찬찬히 읽고 또 읽다보면 언젠가는 아! 싶은 순간이 온다. (잘못된 아! 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독일어로 된 명제가 딱 세 개 등장한다. 테레자가 영혼과 육체의 화해할 수 없는 이원성에서 태어났다면, 토마시는 einmal ist keinmal (한 번 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라는 한 문장에서 태어났다. 이는 ‘일회성’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생은 딱 한 번만 주어지기에 그 어떤 선택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토마시는 테레자가 없는 삶과 있는 삶, 오이디푸스 글을 철회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 모든 삶 속의 가능성 안에서 고민한다. 그 중에서도 그는 필연과 우연, 즉 무거움과 가벼움의 기로에 심각하게 놓인다.

 

Es muss sein! (그래야만 한다). 필연을 의미하는 독일어 명제이다. 베토벤의 음악에서 온 것인데, 그 기원은 농담이다. 그러나 이제는 결코 농담으로 쓰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가벼움이 곧 무거움으로 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무거움도 곧 가벼움으로 변할 수 있기에. 토마시는 여러 필연들의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뭐 어쨌든 그의 대표적인 Es muss sein은 직업이다. 그는 사물의 표면을 열고 내부를 보는 외과 의사인데. 놀랍게도 이 시점에서 여성들, 특히 그들과의 성관계에 집착하는 연관성을 논한다. (필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외과의사라는 직업이, 결국은 가벼움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여성편력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것. 놀랍지 않은가?) 토마시는 여성들과의 성관계 순간을 수집하며 그 정복감을 갈망한다. 그 순간만에서 자아의 유일성이 드러나며 메스로 배를 갈라 100만 분의 1의 상이성을 발견할 수 있다나. 덕분에 테레자는 매일 밤 토마시의 머리카락에서 여자 성기 냄새를 맡고, 끔찍한 꿈들을 꾸고, 손을 떤다. 토마시는 그런 테레자를 안아주고, 깨워주고, 손을 잡아주지만 다른 여자들을 만나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 (…) 그들은 사랑일까?

 

Es könnte auch anders sein.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다.) 우연을 의미하는 독일어 명제이다. 토마시에게 테레자는 여섯 우연으로 태어난 존재이다. 놀랍게도 토마시에게 우연은 곧 사랑이다. 운명과 같은 필연적인 사랑이 아닌, 만남의 근원이 너무나 모호한! 당장이라도 무너질 수 있을 것만 같은 우연들의 순간이 모인 사랑. 그러나 처음부터 토마시가 테레자를 우연의 집합체로써 인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처음 토마시가 테레자를 보며 ‘송진으로 방수된 바구니에서 꺼내져 그의 침대 머리 맡에 내려놓인 아기’를 떠올린 순간! 토마시는 테레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은유(뇌의 시적 기억 구역에 새겨지는 행위)로부터 사랑이 시작된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토마시는 아마 테레자를 운명처럼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떠나버린 테레자를 다시 잡기 위해. 의사 일을 집어던지고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가 잠든 침대에서. 문득 이 모든 일들은 좌골신경통(그와테레자가만날수있었던아주우연의이유)이 없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벼움의 무거움을 깨달은 순간!이 아닐까) 토마시는 잠시 허탈했을지도 분노했을지도 모르지만 테레자를 사랑한다. 그래! 그건 명확하다 토마시가 아무리 다른 여성과 몸을 섞어도. 그는 테레자만을 사랑한다. 그러나 테레자도 그러한가?

 

테레자는 비슷한 육체와 영혼들이 갇혀있는 집단 수용소, 즉 어머니로부터 도망쳐왔음에도 또 다시 토마시를 마주쳤다. 토마시는 테레자의 육체를 획일화시키고 몰개성화시킨다. (토마시 입장에서는 오히려 여러 여성들의 각각의 육체를 음미한다는 점에서 정반대일지도 모르지만) 테레자는 토마시가 선사한 지옥에 살았다. 테레자는 토마시가 (나만큼) 늙기를! 나약해지기를 바랬고 ……….. 결국 토마시는 토끼로 변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 하 먼저 테레자와 카레닌(개)의 사랑에 대해 언급한 부분부터 시작하여 똥, 그리고 키치까지를 떠올려야한다. 꽤나 오래 걸릴 것이다.

 

테레자와 카레닌의 이해관계가 없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발적인 사랑이야말로 전원적인 사랑인 것인데.(남녀간의사랑은이사랑과매우거리가멀다) 그 이유를 시간의 모양에서 찾을 수 있다. 선형의 시간 위에 사는 인간과 달리 개는 원형의 시간, 즉 동일한 것(그러나 일회적인)의 굴레 속에 산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다.(농담은 반복될수록 재밌다) 아담도 개도 모두 반복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여전히 천국(반복 이미지)에서 추방 당하지 않은 천상의 것이다. 천상의 것..이 무엇이냐하면 똥 이야기를 꺼내야하는데. 각자 먹던 무언가를 내려놓고 다시 읽기를 바란다. 스탈린의 아들을 내세우며 똥과 신. 그 관계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인간은 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것이지만, 신은 똥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거대한 문제. 이를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선..(많은 과정 생략)..신의 세계 즉, 천국에서의 똥은 혐오스러운 것. 추한 것으로 취급 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즉, 우리 인간은 천국에서 추방 당할 때 추함과 미(美)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똥과 흥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 존재에 대해 아무런 조건 없이(신 없이) 동의하는 방식도 있다.(나도 이러한 경우임) 이 경우에 똥은 굉장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된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미학적 이상(똥이 부정되는, 화장실에서 처리해야하는 세상)으로써의, 키치(Kitsch)를 내세운다. 키치는 … 특히 정치와 연관성있게 등장하며 사비나와 프란츠의 삶 속에서 더욱 드러나고 있다. 절대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비중있게 등장하고 너무나 흥미로운 부분들이지만. 하! >일단은< 빼야할 듯. (사유 : 키치와 사비나 프란츠를 재배치하고 이해한 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시간과 분량이 필수적이기 때문)

 

다시 돌아와 말하자면 카레닌(개)은 추함과 미를 구분하지 못하기에 여전히 천국에 머무르고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뭐랄까 아기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 더 나아가, 테레자에서 아기의 이미지를 발견한 토마시는 테레자를 천상의 존재로 인식한 것은 아닐까. 그 잔상에 벗어나지 못하고. 테레자를 사랑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멍청한 생각을 해본다. 더 더 나아가, 책의 끝 부분에서 테레자도 토끼로 변해버린 토마시를 보며 동일한 것을 겪은 것은 아닐까! 테레자의 소망처럼 늙고 약해진 토마시를 보며, 토끼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 속에서 연민이 아닌 동정(compassion)을 느끼며……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 가벼움과 무거움을 껴안고 읽어내야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에서는 모두 던져버리게 된다. 그들의 삶은 이미 가벼움과 무거움이 혼재되어 얽혀있었기 때문에, 핀셋으로 그것들을 하나하나 분리하여 뽑아내리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저 테레자와 토마시의 무겁고도 가볍고 가볍고도 무거운 사랑을 포착한다.

 

 

[한정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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