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행복

당신은 어떻게 행복하십니까?
글 입력 2024.02.1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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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버지께 영화 한 편을 강력히 추천했다. 영화의 메시지나 영상미 같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이 영화는 꼭 봐야만 한다’며 열심히 주장하던 찰나였다. ‘나중에 볼게.’와 같은 형식적인 동의가 돌아올 것이라 으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영화는 너무 길어.’였다.

 

 

 

짧고 자극적인.


 

유튜브라는 영상 플랫폼은 내가 중학생일 때부터 자리 잡기 시작했다. 시험기간에 공부할 때는 일부러 멀리 떨어진 곳에 폰을 두었다. 내가 공부하는 방이 아닌 곳에 폰을 놔두면 그곳까지 가서 유튜브를 키는 것을 귀찮아 할 게으름뱅이인 나를 알기에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유튜브는 나자신을 그 정도 게으름뱅이로 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정신을 차리면 이미 작은 화면 속에 갇혀 2시간이 지난 후였다. 5분짜리 영상은 ‘그 정도는 놀아도 괜찮아.’를 쉼없이 세뇌시켰다. 교과서 한장 넘기는 것은 그렇게 어렵더니 5분, 또 5분, 또 5분이 지나는 것은 쉬웠다.

 

이제 유튜브는 아예 내 일상에 자리잡았다. 여가 시간을 지배했고, 하루의 시작과 끝을 유튜브와 함께하기에 이르렀다. 짧고 자극적인 영상을 시청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영상을 보고 있는 중에도 유튜브는 내가 시청할 다음 영상을 골라주었다. 내 입맛에 맞춰진 알고리즘은 끊임없이 나를 유혹했고 나는 그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 영상 중에서도 자극적인 장면을 두고 ‘썸네일각’,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사건을 두고 ‘유튜브각’이라는 새로운 단어까지 생길만큼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은 짧고 자극적인 쾌락을 즐겼다.

 

우연히 왼쪽으로 넘긴 화면에서 나타난 스크린타임 그래프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보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는지 생각했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부유물 중 어떤 그럴듯한 대답도 건져 올릴 수 없었다. 그러나 의식하지 않았던 그 시간들이 꽤 재밌었다는 사실만이 기억에 남고 그 시간들을 무엇으로 채웠는지는 대답할 수 없었다. 지각하지 못했던 시간들은 순간마다 잠깐의 즐거움을 남기고 어딘가로 버려졌다. 그 시간들을 회상하며 추억할 거리도, 느꼈던 감정들도 없었다.

 

 

 

인스턴트 행복


 

그제서야, 언젠가부터 인스턴트 행복만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분짜리 컵라면은 먹기도 쉽고 입에도 착 감긴다. 그러나 우리는 인스턴트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행복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순간의 재미를 위한, 유튜브의 오락적인 5분짜리 영상, 잠시의 쾌락을 선사하는 술, 3시간 시급과 맞바꾼 치킨과 치즈볼이 나에게 그런 행복이었다. 그러니까, 즉각적이고 분명히 즐겁지만 유효기간이 짧다. 인스턴트 행복이 보잘 것 없는 행복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떻게 행복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될 수 있겠는가. 인생에서 인스턴트 행복은 분명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빠르게 퍼지는 행복은 지친 마음에 조금의 위로가, 반복적인 일상에 작은 탈출구가 된다. 그러나, 인스턴트 행복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다. 더 멀리 뛰기 위한 발판에 서있는데 뛰지는 않고 발판에 서 있는 것이다. 물론, 착지하는 순간에 엉덩방아를 찧어서 이전보다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발목이 찌릿거리며 아플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발을 구르고 있는 것보다 유의미하다. 어떤 결과라도 냈기 때문이고, 한 번의 착지를 마무리했으니 다시 뛸 수 있기 때문이다.

 

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얻을 수 있는 행복과 성취감은 어느 순간부터 외면당하고 인스턴트적인 행복만 남은 나는, 그리고 누군가는,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당신의 진짜 행복을 채우는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답을 찾아야 한다. 한달동안 읽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의 아쉬움과 책이 나에게 알려준 인생의 교훈을 깨닫게 될 때의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었다. 마찬가지로, 한 학기 내내 공들였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을 때, 1년동안의 프로그램 공부를 마칠 때의 후련함과 행복감은 어떤 단어로도 특정할 수 없었다. 인스턴트적인 유흥을 소비하면서 그 시간들에 담긴 나의 마음을 조금 잊어버리게 되었다.

 

2분짜리 영상보다 2시간의 영화가 가슴 속에 더 울림이 남고, 2달에 걸친 학업의 결과가 더욱 그렇고, 20년동안 노력한 꿈을 이룰 때의 더욱 그럴 것이다. 쏟은 진심만큼 비례하는, 혹은 그 이상의, 행복을 위해 달려가는 과정 속에서 지치지 않도록 하는 작은 행복이 인스턴트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인스턴트 행복이 목표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짧고 지속적인 행복이 아닌 멀지만 큰 행복을 위해 지금을 인내할 수 있는 내가, 그리고 당신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거는 주문


 

다른 사람과 안부 인사를 주고받을 때, 새해 인사나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낼 때, 전화 통화를 마무리할 때마다 꼭 하는 말이 있다.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래.’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소중한 사람들에게 거는 주문이다.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고 싶다는 나의 소망이기도 하고 또 나의 행복을 위해 내가 사랑하는 이들도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일종의 이기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이들도 인스턴트적이든 슬로푸드적이든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이왕이면 인스턴트 행복이 더 큰 행복으로 이어지기 위한 수단적인 행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즉, 인생에 힘든 순간이 있다면 인스턴트 행복으로 일어섰으면 좋겠고, 당신이 시간과 마음을 쏟아 부어 하는 일의 끝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확실한 행복이 스몄으면 좋겠다.

 

 

[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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