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le me in a SMALL WORLD

2023 타이페이 비엔날레
글 입력 2024.02.1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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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사랑하는 겨울 여행지, 대만.

 

특유의 온화한 날씨와 기분 좋은 꿉꿉함으로 한국의 칼바람과 건조함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곳이다. 지난해에는 유난히 가을-겨울 대만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게 느껴졌는데, 나 역시 시류에 편승하여 친구와 함께 대만 여행을 떠났다.

 

기대와는 달리 강풍을 동반하는 흐린 날씨에 당황한 우리는 야외 활동에 제약이 생겼고, 나는 '이 때다' 싶어 미술관에 갈 것을 제안했다. 법학과 도시경관학 전공생을 이끌고 미술관에 가는 것은 이들을 지루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했지만, 마침 현대미술관에서 타이페이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기에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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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WORLD》(2023.11.18~2024.03.24, 타이페이 현대미술관) 

 

 

타이페이 비엔날레는 1998년부터 타이페이 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어 온 비엔날레(Biennale: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전시 행태)로, 이번 전시의 경우 코로나의 여파로 전시 개최일을 1년 미뤄 3년 만에 막을 열었다. 전시가 열리는 타이페이 현대미술관은 1983년 설립된 대만 최초의 근현대 미술관으로 20,000평 이상의 넓은 부지를 자랑하며 11,741평에 달하는 공간을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타이페이 현대미술관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그다지 넓어보이지 않는 입구와 달리 전시를 관람하면서 끝없이 나오는 공간에 나처럼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관의 공간감이 돋보였는데, 특히 전시 초입의 영상 상영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어둡게 조성된 공간이 등장했고 분리된 방에서 영상 작업을 감상할 수 있었다. 평소 긴 영상 작업을 오래 보지 못하는 나는 큰 기대 없이 들어갔으나 30분 이상 머물며 영상의 끝을 보고 나왔다. 키포인트는 완전한 암흑이었다. 옆 사람도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한 어둠을 구현한 덕분에 영상에 온전히 집중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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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agers, 2022, 사운드가 포함된 HD 비디오, 63분 34초

 

 

작품은 팔레스타인 출신 작가 주마나 만나의 영상으로, 야생 식용 식물을 중심으로 법과 토지의 관계 사이의 미묘한 지점에 주목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야생의 식용 식물을 채집해왔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은 자생 식물 부족을 이유로 수집을 금지한다. Foragers 법적인 제도가 생계의 원천인 토지를 통제하는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조용한 폭력을 고발한다. 골란 고원, 갈릴리, 예루살렘에서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촬영된 작품은 '무엇이 멸종되고, 무엇으로 살 수 있는지는 과연 누가 결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정치적 논점이 기저에 깔려 있는 작품임에 반해, 영상 속에는 평화로운 자연의 소리와 함께 야생 식물을 채집하는 장면이 오래 등장한다. 장소와 구도를 바꿔가며 둘러앉아 식물을 다듬는 여성들의 모습, 일하는 와중에 잠깐 담배를 태우는 남자의 모습을 관찰하듯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광활한 자연 속 한낱 개미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드넓은 자연 한 가운데서 자연으로부터 온 식량을 정리하는 인간은 사실은 너무도 작은 세상(small world)을 가진 존재일 뿐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빠르게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또 한 번 암흑 공간에 달했다. 웬 굴곡진 벽들이 미로같이 꾸며져 있는 방에 머리 위 스피커에서는 평온한 음악이 흘러나오기에 이 작품의 정체는 무엇인가 탐구하는 마음으로 구조물 사이를 파헤치고 있었다. 갑자기 사이렌 같은 큰소리가 나며 반질반질한 벽인 줄 알았던 것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풍선처럼 부푼 구조물은 파도처럼 요동치고 사운드도 극한으로 치닫았다. 왠지 거센 파도 혹은 재앙의 회오리 속에 갇힌 것 같은 기분에 황급히 전시장을 빠져나왔지만 부풀어오를 때의 충격과 신선함은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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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Exactly(Whatever the New Key Is), 2017, 복합매체, 복합크기

 

 

2017년부터 진행 중인 재클린 키요미 고크의 Not Exactly(Whatever the New Key Is) 는 송풍기가 PVC 벽을 부풀릴 때 스피커 시스템을 활용해 주파수를 폭발시키는 작업이다. 몰입감을 주는 음향과 공간의 재구성으로 공간 자체가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 긴장과 해방 등 양가적인 감정이 단지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주변과 공감하고 건축물과 공유할 수 있음을 표현했다.

 

드디어 끝인가 싶을 정도로 큰 전시장을 누비고 나면 마지막 한 방 마냥 드넓은 공간이 또 등장한다. 공간 만큼 커다란 글자까지. 바닥에 전시된 알 수 없는 테라코타(구운 흙) 글자는 필리핀 북부 바타네스 섬에 사는 이바탄 족의 시구다. 사물의 개인적, 정치적 연관을 탐구하는 피오 아바다는 현재의 우리를 만든 역사적 사건을 그림, 텍스트, 직물, 설치로 표현한다. 자신의 뿌리인 이바탄 족과 지리적으로 밀접한 란위 섬의 야미(타오)족의 관계성 연구를 통해 두 민족 사이 '라지(Laji)'라는 고대 시를 발견하고 작업의 소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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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ji No.97, 2023, 혼합매체, 가변크기

 

 

민족과 서식지가 다름에도 비슷한 생활을 행해 온 두 집단의 공통된 전통을 살펴봄으로써 또 한 번 우리는 결국 이토록 작은 세계에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름을 붙이고 다름을 두더라도 우린 다시 연결되고 하나로 모인다. 각기 다른 내용과 매체의 작품을 신선한 구성으로 표현한 전시지만내가 살아가는 이 세계, 그리고 나의 존재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게 유도하는, 잘 어우러진 전시였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우리가 쉽게 공감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전시이기도 하다.

 

전시 폐막까지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으니 타이페이를 방문하신다면, 꼭 한 번 들러 거대한 공동체와의 연대를 느껴보길 바란다.

 

 

[김예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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