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구는 날짜를 모른다 [사람]

하루하루 둥글게 사는 태도에 대하여
글 입력 2024.01.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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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언제나 나의 방을 비켜 간다. 이 안에선 낙엽이 저물지도 눈이 내리지도 않는다. 꿈속을 헤매다가 눈을 뜨면 나는 다시 이곳이다. 오늘치의 내가 어제의 침대 위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가장 먼저 목격하는 첫 번째 풍경. 고개를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방의 작은 전경.

 

방 안에서는 방밖에 보이지 않는다. 불투명한 시트지를 덧붙인 창문은 밖을 내다보는 용도라기보다는 스스로 밝기를 조절하는 크고 넓은 조명에 가깝다. 해가 뜨면 조도를 높이고 해가 지면 저절로 내린다. 아침이라 옅은 빛이 방 전체에 고르게 내려앉는다. 그리고 그 외에 모든 것이 어젯밤과 같다. 그저께도 같았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며, 변화하는 바깥을 보여주지도 않는 이곳에서 나는 마침내 나의 변화라도 꾀하고 싶어진다. 그건 사실 내가 아침에 일어나는 근원적인 이유 같기도 하다. 일어났으니 나는 살아있고, 살아있으니 다시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그건 말 그대로 근원적이다. 내 유전자에 새겨진 생존을 향한 몸부림이다. 먼 옛날 조상님들은 살아남기 위해 몸을 움직였을 것이다. 물론 나도 먹고 살기 위해 움직여야만 한다. 부엌으로 가서 밥을 먹고, 돈을 벌기 위해 출근해야 하며, 더 많이 벌기 위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아침에 일어나 “생존하자!”라고 선언한 후 목구멍 속으로 밥을 욱여넣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실질적인 동기는 시간. 나의 의식은 시간의 명령을 충실히 따른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행위는 시계를 보는 일이다. 세네개의 숫자에서 나의 걸음마는 출발한다. 오늘의 일과가 짜인다. 나의 미래가 한달음에 도착한다. 인생이란 하루의 연속이고, 그 모든 하루가 시간을 확인하며 시작한다는 건 곧 인생 전체가 시간의 지배 아래에 있다고 읽힌다. 그렇다면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정말 맞는 것 같다. 적어도 우리의 의식 절반은 시간의 궤도에 얽매여 있는 것 같으니.

 

시계를 본다. 몸을 일으킨다. 지금 세상은 어떠한가. 일기예보를 확인하듯 창문을 연다. 오늘은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절경을 나는 이제야 마주했다. 눈과 나의 낭만적인 조우를 작은 정육면체의 공간이 훼방 놓고 있던 셈이다. 정적인 공간은 둔하고, 동적인 시간은 부지런하다. 그 사이에서 나는 지치지 않게끔 적절히 균형 맞추며 매일의 리듬을 이어낸다. 눈이 언제부터 내린 거지. 하늘의 눈이 나의 눈에 담기고, 차가운 촉감이 짜릿하고, 눈 향기는 은은하다. 정말 겨울이구나. 오롯이 그 안이야. 역시 세상은 아름답고 산다는 건 축복이구나. 그윽한 표정으로 겨울을 음미하는 와중에 문득 생각이 스친다.

 

날짜를 인지하고 사는 것 같지는 않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1월 8일이네! 1월 하고도 8일이 지난 날이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계절로, 그리고 요일 정도로 시간의 경과를 가늠한다. 기온이 껄끄럽게 오르내리지만 여전히 겨울이다. 일요일은 방금 끝났다. 곧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은 지나가는 것일까, 반복되는 것일까? 냉혹한 초침마저 영원히 돌고 도는데 정녕 시간이란 건 지나가고 떠나버리는 것일까? 답을 알지만 그게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아주 쉬운 시험을 치른 모두가 답도 맞혀보지 않고 하교해 버린 기분이다. 각자의 답안만을 안락하게 품은 채. 텅 빈 교실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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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ude Monet

 

 

우리에게 시간은 과도하게 중요하다. 시간은 금이다. 시간 관리를 지향하고 시간 낭비를 지양한다. 시간을 확인하며 일어나고 시간에 따라 생활하며 다시 시간을 보며 잠드는 우리는 시간 속에 갇혀 있다. 시간의 규율 속에서 우리는 느긋하거나 촉박하다. 시간은 우리의 태도를 결정짓는다. 우리가 우리의 태도를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를 앗아간다. 시간은 필요하고 시간 없는 세상 역시 말도 안 되지만 우리는 그게 일상의 유일무이한 기준인 듯이 살아간다. 시간과 발맞추어 변한다는 이유만으로 태양과 계절 역시 시간의 전유물로 취급된다.

 

숫자는 정확하다. 정확한 만큼 냉철하고 이성적이다. 그라데이션도 없이 한순간에 전환된다. 그리고 사회적 시간은 날짜라는 숫자로 흐른다. 날짜는 월이 되고 월은 년이 된다. 떠나간 해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구도 이런 거 알까? 모를 테지. 봄·여름·가을·겨울만 알고 영원히 반복하다가 그냥 그렇게 영원히 살겠지. 인간은 죽으니까 불행히도 시간을 발명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서글프다. 다행히도 우린 조용히 늙는다. 시간의 흐름을 매 순간 체감하지 못할 만큼 충분히 둔하다. 시간이라는 저주와 둔하다는 축복. 그 양극 사이에서 은은히 미소 지으며 하루하루를 지구의 걸음걸이로 거닌다. 보이는 건 낮과 밤. 실재하는 건 겨울과 다가올 봄. 벌써 까마득한 가을. 여름이라는 꿈결. 그런 것들. 반복과 순환만이 태초적 사실이고 선명한 일상을 이룬다. 나는 이런 게 좋다. 시간보다 앞서는 것들. 시간 이전부터 늘 있었던 것들. 일출과 일몰. 개나리의 개화 시기. 밤새 내리는 눈. 여름밤의 선선한 온기.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것들. 눈에 보이는 대로 믿고 싶다. 느끼는 대로 살고 싶다. 나는 왜 이렇게 계절을 좋아하나 했는데 이런 이유인 것 같다.

 

연말·연초가 묘하게 낯선 이유도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설국열차처럼 긴 겨울이 끝나고 새싹이라도 발견한 것도 아니고, 숫자 몇 개가 바뀌었는데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 창밖을 내다보면 바뀐 게 아무것도 없는데 새롭게 시작했다고들 한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변함없는 변화이다. 모두가 순순히 속는 사기극이다. 사람들은 카운트다운을 하면서 새해를 맞이한다. 한 해의 마지막 순간마저 시간이라는 숫자를 세면서 보낸다. 이 퍼포먼스를 기원후부터 세도 2024번은 반복했을 것이다. 2024개의 점을 이은 선. 분명한 시작과 끝. 영원한 일방향. 인간이 만든 선형성. 건조하게 쭉 이어가다 어느 시점에서 뚝 끊기리라.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바에야 나는 시간을 무시하고 싶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닌 반복되는 거라고 믿고 싶다. 어제, 오늘, 내일 따위는 다 허상이며 이 세상은 낮과 밤의 끝없는 반복일 뿐이라 여기고 싶다. 직선에 홀려 조급해하지 않고 하루하루 둥글게 둥글게 살고 싶다. (예전에 김화영 선생님이 쓴 산문에서 읽은 표현 같다. 좋은 문장은 반드시 언젠가, 그리고 불현듯 찾아오는 법이다.)

 

다만 나도 사회에 살고 사회적 인간이며, 사람이 좋고 가끔은 싫지만 대체로 좋으니 사회적 시간을 따르고 있고 그래야 한다. 사실 시골에서 시계도 달력도 없이 나무나 하늘 같은 거 바라보며 살고 싶은 마음이다. 낙엽이 지니 가을이고 눈이 내리니 겨울일 테야. 기분이 좋아지면 여름이겠지. 계절 하나하나의 존재감이 명료했으면 좋겠다. 여름이 여름답고 겨울이 겨울답기를 바란다. 요즘 따라 그 경계가 뒤섞이는 느낌이 든다.

 

황인찬 시인의 시구절이 생각난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이런 태도가 나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전하는 마음으로 내가 사랑하는 이곳을 거스르지 않는 것. 시간에 쫓겨 앞만 보고 달리게 될 때면, 시간은 우리를 쫓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다 관념이고 허상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주 창밖을 내다보자. 머지않아 봄 내음이 풍겨올 테니. 그러리라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은 언제나 진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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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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