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처가 편안한 아이 [사람]

어떤 소설
글 입력 2024.02.0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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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고백을 한다. 나는 종종 자의로 코피를 내서 학교 수업에서 빠져나온 적이 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벌어진 일이다.

 

어렸을 적부터 코피가 자주 났다. 세수하다. 길을 걷다. 고개를 숙이다. 자지러지게 웃다. 타고나기를 코의 안쪽 뼈가 미세하게 휘어있어 한쪽이 쉬이 건조해지기 때문이었다. 오른쪽 코에서 흐르는 피만큼은 본능적으로,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다룰 수 있었다. 그건 흐르는 피를 능숙하게 막는 것뿐 아니라, 내 멋대로 흐르게 할 수 있는 힘 또한 획득했다는 의미다.

 

코를 다스리는 능력은 기술이라고 칭하기에 손색이 없는데, 상황에 따라 훌륭한 생존방식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내성적이고 비밀을 품어야만 하는 아이일수록 학교는 투쟁의 장으로 다가온다.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기를 장려하면서 그것이 홀로만 생활해도 무방하단 의미는 아님을 알려주는 곳. 삶은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그 한없이 안온한 가치를 깨닫게 되는 순간은 대개 냉랭하다.

 

어떻게든 버려지거나, 버려질까 봐 한껏 불안 옆에 있어야 했던 아이만이 함께의 가치를 온몸으로 학습하게 된다.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는 일차적 욕구의 해소마저 홀로 하는 것이 엄금된 질서 속에서 누군가에겐 쉬는 시간과 수업 시간이 반대로 느껴졌을 테다. 홀로 내놓아 치열히 생존하는 10분의 수업 시간, 다 함께 숨을 고르는 40분 남짓한 쉬는 시간.

 

거대한 질서와 시시각각 변화하는 교우들의 이해관계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기민한 판단으로 자기 위치를 끊임없이 재설정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를 상상할 수도 없지만 구태여 관여하지도 않는다.

 

의지가 온전히 반영되지 않는 공간에서 통제 가능한 건 가장 가까이 있는 내 몸이다. 특히 몸이 취약해진 상태라면 여분의 온정을 얻기 용이하다. 찰나의 관심 혹은 긴장 어린 공간에서 합법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 시간은 모든 긴장이 집약된 순간이었다. 차갑도록 매서운 교실의 질서도 그 앞에선 라디에이터가 아니었을까. 저 많은 알 수 없는 공식과 기호들이 나를 분열하는 것만 같았다. 압도적인 맹수 앞에 굳어버린 초식동물처럼 나는 취약했다. 코피는 취약함을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기꺼이 아파짐으로써 한순간 편안해질 수 있는 출구였다.

 

그 시공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금의 회상이 문득 새삼스럽다. 당시엔 알 수 없었던 본능적 충동이 어떤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게. 그것이 내 손끝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자각몽을 꾼 듯, 언제 빠진 지 모른 축축한 늪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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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옆엔 열네 살 소녀가 앉아있다. 나를 늪에 빠트린 장본인 J다. 그가 마치 낡은 거울 같다고 여러 번 되뇌었다. J 역시 상처가 편안한 아이이기 때문이다. 1년 전 아동센터에서 처음 시작한 학습 봉사로 우린 만났다. 그토록 두려웠던, 아니 여전히 그러한 수학을 가르치기 위해. 수학에 치를 떨던 아이가 시간이 지나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니. 상투적인 삶의 논리가 나에게도 여지없이 작동했다.


또래에 비해 키와 몸무게가 작았던 J는 예상과 달리 활동적이었다.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계단을 두 칸씩 내리 오르고, 내리막길이 평지인 양 우르르 뛰어버리고, 과격한 손뼉 밀치기를 서슴지 않았으니까. 이제는 제발 바깥에서 뛰어놀라고 등 떠미는 시대가 아닌가. 보기 드물게 몸 쓰는 걸 좋아하네.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타지에서 대학에 다니는 나에게 가족이란 연례행사처럼 드물어졌다. 편안하기도, 적당하기도, 드물게 씁쓸하기도 한 낯선 거리감. 나와 가족 사이의 탄성은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다. 만남의 횟수로만 가족을 정의할 수 있다면, 우스꽝스러운 전제이지만 J는 현재 가장 가까운 가족 구성원이다.

 

자고로 가족은 자주 볼수록 싸우게 된다고 했던가. 무탈했던 지난날이 희뿌연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듯 J는 날카로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긍정하듯 올라가다 무심히 곤두박질치는 ‘네↗↘.’ 좋은 말로 할 때 그 입 다물라는 견고한 한 마디. 나의 모든 말은 그 앞에 힘을 잃었다.

 

“다치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오지랖이 화근이었다. 그 말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알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을 언어로 만들지 못하고 숨으로 내뿜기를 반복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정중한 무관심이란 그저 무심함의 유의어일 뿐이었다.

 

‘아, 이거요. 내리막에서 넘어졌어요,’ ‘계단에서 뛰다 굴렀어요,’ ‘친구랑 놀다가 인대 파열됐어요.’ 자기 상처를 말하는 그 무심한 눈과 억양을 모두가 들었더라면. 일주일에 한 번씩 다른 장소에서 다른 아픔을 적립하는 그 작은 체구를 모두가 보았더라면.

 

J는 어린아이의 상처가 동반할 수 있는 편안함이란 금기를 알게 됐다. 자연스럽게 몸에 흠집을 내어 생존하는 기술을 터득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엄마와 아빠가 전교 1등 했다’는 걸 진심으로 부러워했으니까. ‘공부 못해서 집에서 뒤지게 혼나’는 걸 루틴으로 알았으니까. ‘이번 시험 망하면 집에서 쫓겨난다’는 말을 달고 살았으니까.

 

감당하지 못할 요구를 과식하고 있는 아이가 내 옆에선 쉴 수 있길 바랐다. 동시에 문제집 네 장을 풀고 숙제까지 완벽히 해오길 바랐다. 교육이라는 시스템에 녹아들도록, 그러나 완전히 빠지지는 않기를 바랐다. 회색지대에서 우왕좌왕하는 어른만큼 기만적인 게 또 있을까. 괴물 같은 어른의 얼굴을 똑같이 짓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

 

우리의 1년에서 고통을 지울 수 없다. 반反교육의 생생한 증인이 건조한 어른으로 변모하는 순간의 연속이었으니까. 그런 선택의 반복이었으니까. 그 사이 아이는 상처와 친밀함을 쌓았으니까.

 

학습 봉사. 어느 한 어절도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그럼에도 뻔뻔하게 바랐다. 너만큼은 상처가 편안해지지 않길. 그 상처에서 멀어져 관망할 한 순간이 오길. 빌었다.

 

생생한 고백을 한다. 나는 왕왕 불안 속에서 평온을 느낀다. 어른이 되어 달라진 게 있다면, 외피에 흠집을 내는 게 두려워 내피를 쑤시게 됐다는 것이다. 삶의 책무는 여전히 불안 속에서 합법하게 유보된다. 어디까지 불안은 커질 수 있고 미래는 유보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상처는 점점 벌어진다. 다스리는 법을 아직도 알 수 없다.

 

크지 못한 아이가 크고 있는 아이를 가르친다. 아이는 자꾸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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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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