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테레오 타입? 다 비꼬아줄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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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 오와 아콰피나가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자매로 나오는 영화 <퀴즈 레이디>는 서양 영화에서 다루는 아시안걸 스테레오 타입을 팍팍 버무려서 대놓고 선입견을 까는 영화구나 싶어 편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스토리도 하나도 거슬리는 게 없었고 전체적인 내용도 가볍게 볼만했다.
부모님의 이혼, 엄마의 도박 중독, 철딱서니 없는 언니 제니, 실질적 가장인 앤. 재활센터에서 걸려온 전화로부터 엄마가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 두 자매가 다시 재회한다. 도박 중독으로 빚쟁이인 엄마는 또 도박을 하러 마카오에 갔고 두 자매에게 사채업자가 찾아와 앤의 반려견 링귀니를 훔친다. 가족 같은 링귀니를 되찾기 위해 사채업자에게 갚을 돈을 구하기 위해 앤은 어릴 때부터 매일 챙겨 보던 퀴즈쇼에 나가게 된다는 스토리다.
이후 내용은 여느 코미디 영화들이 그렇듯 예상가는 이야기지만 주인공들이 아시안이라 웃긴 포인트들이 많았다. 많은 아시안들이 서양 영화를 볼 때 밖에서 신던 신발을 그대로 신고 침대 위에 올라가는 장면을 거슬려 한다는 걸 의식한 것처럼, 신발을 벗고 침대 위에 올라간 장면을 프레임에 담은 것도 웃음 포인트 중 하나였다.
제니는 보라색 브릿지에 숱 많은 앞머리, 버블티를 마시는 캐릭터로, 앤은 주체가 안되는 앞머리로 이마를 덮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너드 같은 캐릭터로 설정하여 서양 영화에서 다루는 두 부류의 아시안 여성을 보여준다. 위기 상황을 모면할 때 말도 안 되는 말과 행동을 하고 ‘중국에 있는 속담이다’, ‘이 세계에서 아시안 여성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당신들은 이해할 수 없을 거다’ 등의 임기응변으로 넘어가는데 이걸 들은 백인 캐릭터들의 ‘아 그렇지. 이해할 수 있지’하는 그 시혜적인 태도가 중간중간 나오는데 어딘가 후련하기까지 했다. 그놈의 신비로운 아시아 이미지는 언제 갖다 버릴까.
요즘 뭐만 하면 mbti를 들먹이는 게 싫증이 나지만 이건 mbti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안될 것 같다. 제니는 옷 스타일부터 하는 행동까지 enfp 그 자체였다. 하도 주변에서 mbti를 물어보길래 해 본 테스트에서 enfp가 나왔는데 어디선가 본 mbti 요약 짤에 ‘enfp-대가리꽃밭’이라고 적힌 걸 본 적이 있다. 제니만큼 막장은 아니지만 현실 도피하는 성격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저 행동이 화면 밖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동생 앤과는 정반대되는 성격에 사이가 좋다가도 안 좋을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두 자매가 서로를 재발견하게 되는 어떠한 사건이 있는데, 그 사건을 다름 아닌 똥으로 풀어나간다. 다른 소재도 많을 텐데 하필 똥으로 두 자매가 연대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감동적인데 어딘가 묘하다.
또 한때 어디에나 뜬금없이 등장해서 반감을 일으켰던 ‘가희 멀티밤’이 <퀴즈 레이디>에서도 등장한다. 그래도 여기에서는 나름 스킨케어를 하는 장면에서 나와 흐름을 깨지는 않았지만. 이게 B급 코미디의 맛 아닐까. 빌런도 흔히 나오는 아시안 갱이 아니라 뿌까 머리를 한 제법 하찮은 빌런이었다. 엄마의 실종과 빚 때문에 자매가 다시 조우하는 상황임에도 엄마는 끝까지 얼굴 한 번 나오지 않고 목소리로 대충 얼렁뚱땅 때워버리는데, 그게 이상하게 이 영화에서는 납득이 갔다.
가상의 인물들이지만 실존 인물을 토대로 만든 영화처럼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후일담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다. 마치 이 유쾌하고 이상한 염씨네 자매가 반려견 링귀니와 함께 미국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았다.
최근 아시안 가족에 대한 영화가 많이 나오는 추센데 대부분 그 문화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감상해야 감정선을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면, <퀴즈 레이디>는 아시안 가족 이야기임에도 어떤 인종이 봐도 순수하게 이해하며 웃을 수 있는 팝콘 무비라는 점이 좋았다.
아시안 가족 이야기가 언제나 진지하고 감동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스테레오 타입의 아시안, 아시안 가족만 다루던 서양 영화계에서 다양한 형태의 아시안과 그 가족을 다루고 있다는 것 자체를 높게 사야 할 듯한 분위기 속에서 더 원하는 건 욕심인 듯하지만, 그래도 아시안을 비롯한 다양한 인종으로 가벼운 영화들 또한 많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신민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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