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테레오 타입? 다 비꼬아줄게 [영화]

디즈니 플러스, <퀴즈 레이디>
글 입력 2024.01.31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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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 오와 아콰피나가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자매로 나오는 영화 <퀴즈 레이디>는 서양 영화에서 다루는 아시안걸 스테레오 타입을 팍팍 버무려서 대놓고 선입견을 까는 영화구나 싶어 편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스토리도 하나도 거슬리는 게 없었고 전체적인 내용도 가볍게 볼만했다. 


부모님의 이혼, 엄마의 도박 중독, 철딱서니 없는 언니 제니, 실질적 가장인 앤. 재활센터에서 걸려온 전화로부터 엄마가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 두 자매가 다시 재회한다. 도박 중독으로 빚쟁이인 엄마는 또 도박을 하러 마카오에 갔고 두 자매에게 사채업자가 찾아와 앤의 반려견 링귀니를 훔친다. 가족 같은 링귀니를 되찾기 위해 사채업자에게 갚을 돈을 구하기 위해 앤은 어릴 때부터 매일 챙겨 보던 퀴즈쇼에 나가게 된다는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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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내용은 여느 코미디 영화들이 그렇듯 예상가는 이야기지만 주인공들이 아시안이라 웃긴 포인트들이 많았다. 많은 아시안들이 서양 영화를 볼 때 밖에서 신던 신발을 그대로 신고 침대 위에 올라가는 장면을 거슬려 한다는 걸 의식한 것처럼, 신발을 벗고 침대 위에 올라간 장면을 프레임에 담은 것도 웃음 포인트 중 하나였다.


제니는 보라색 브릿지에 숱 많은 앞머리, 버블티를 마시는 캐릭터로, 앤은 주체가 안되는 앞머리로 이마를 덮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너드 같은 캐릭터로 설정하여 서양 영화에서 다루는 두 부류의 아시안 여성을 보여준다. 위기 상황을 모면할 때 말도 안 되는 말과 행동을 하고 ‘중국에 있는 속담이다’, ‘이 세계에서 아시안 여성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당신들은 이해할 수 없을 거다’ 등의 임기응변으로 넘어가는데 이걸 들은 백인 캐릭터들의 ‘아 그렇지. 이해할 수 있지’하는 그 시혜적인 태도가 중간중간 나오는데 어딘가 후련하기까지 했다. 그놈의 신비로운 아시아 이미지는 언제 갖다 버릴까.

 

요즘 뭐만 하면 mbti를 들먹이는 게 싫증이 나지만 이건 mbti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안될 것 같다. 제니는 옷 스타일부터 하는 행동까지 enfp 그 자체였다. 하도 주변에서 mbti를 물어보길래 해 본 테스트에서 enfp가 나왔는데 어디선가 본 mbti 요약 짤에 ‘enfp-대가리꽃밭’이라고 적힌 걸 본 적이 있다. 제니만큼 막장은 아니지만 현실 도피하는 성격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저 행동이 화면 밖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동생 앤과는 정반대되는 성격에 사이가 좋다가도 안 좋을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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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매가 서로를 재발견하게 되는 어떠한 사건이 있는데, 그 사건을 다름 아닌 똥으로 풀어나간다. 다른 소재도 많을 텐데 하필 똥으로 두 자매가 연대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감동적인데 어딘가 묘하다.

 

또 한때 어디에나 뜬금없이 등장해서 반감을 일으켰던 ‘가희 멀티밤’이 <퀴즈 레이디>에서도 등장한다. 그래도 여기에서는 나름 스킨케어를 하는 장면에서 나와 흐름을 깨지는 않았지만. 이게 B급 코미디의 맛 아닐까. 빌런도 흔히 나오는 아시안 갱이 아니라 뿌까 머리를 한 제법 하찮은 빌런이었다. 엄마의 실종과 빚 때문에 자매가 다시 조우하는 상황임에도 엄마는 끝까지 얼굴 한 번 나오지 않고 목소리로 대충 얼렁뚱땅 때워버리는데, 그게 이상하게 이 영화에서는 납득이 갔다.


가상의 인물들이지만 실존 인물을 토대로 만든 영화처럼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후일담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다. 마치 이 유쾌하고 이상한 염씨네 자매가 반려견 링귀니와 함께 미국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았다.


최근 아시안 가족에 대한 영화가 많이 나오는 추센데 대부분 그 문화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감상해야 감정선을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면, <퀴즈 레이디>는 아시안 가족 이야기임에도 어떤 인종이 봐도 순수하게 이해하며 웃을 수 있는 팝콘 무비라는 점이 좋았다.


아시안 가족 이야기가 언제나 진지하고 감동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스테레오 타입의 아시안, 아시안 가족만 다루던 서양 영화계에서 다양한 형태의 아시안과 그 가족을 다루고 있다는 것 자체를 높게 사야 할 듯한 분위기 속에서 더 원하는 건 욕심인 듯하지만, 그래도 아시안을 비롯한 다양한 인종으로 가벼운 영화들 또한 많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신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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