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대와 극복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 [영화]

영화 <나의 올드 오크>
글 입력 2024.01.31 11:5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001 (1).jpg

 

 

*

본 글은 영화 ‘나의 올드 오크’의

내용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희망은 인간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우리는 장래에 대한 가능성이나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 같은 것들을 내다보며 살아간다. 꿈이나 기대가 실현될 가능성은 확실치 않지만 희망을 가지는 행위는 그 자체로 살아갈 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희망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종종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간절히 바라던 것이 이뤄지지 않을 때면 희망은 헛되고 허황된 것으로 변질된다. 희망이 생기고 좌절되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희망에 거는 기대는 점점 소멸되고 고통은 연장되는 식이다.

 

 

 

빼앗긴 희망의 자리에 들어서는 고통


 

003 (1).jpg

 

 

<나의 올드 오크> 속 영국 북동부의 작은 마을은 희망으로 인해 고통을 경험했다. 한때 탄광산업으로 번영기를 누렸던 주민들은 국가의 갑작스러운 폐광 조치로 인해 삶의 방식과 일자리를 모두 잃을 위기에 처했다. 광산 노동자들은 외압에 맞서 저항과 투쟁을 계속 시도했지만 결국 완전한 패배를 맞이했고 이제는 희망을 잃은 지 오래다.


낡은 폐광촌으로 전락한 마을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집값은 떨어질 대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활기를 잃은 마을에서 경제와 환경 회생에 대한 가능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오래도록 마을을 지키던 주민들도 살아가기 녹록지 않은 현실 때문에 우울과 무력의 그림자를 떨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던 중, 시리아 난민들이 살던 곳의 전쟁을 피해 영국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 역시 희망이다. 전장에 내던져진 가족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과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덧없는 꿈처럼 느껴진다.


고통을 겪는 이방인들에게 몇몇 주민들은 선의를 표한다. 오래된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는 그들이 마을에 머무르는 동안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앞장서서 친절을 베푼다. 반면, 다수의 주민들은 살기 힘든 처지에 타지인들까지 찾아와 본인들의 공간을 침범한다고 생각하며 반감 어린 혐오의 시선을 보낸다.


사진작가를 꿈꾸는 다정한 시리아 소녀 야라는 주민들에게 다가가려 노력하지만 맹목적인 배척과 차별을 이겨내기는 어렵다. 더해, 야라와 가까워진 TJ와 주민들 사이의 갈등까지 고조되면서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상실, 고통, 혐오가 짙어지며 희망이 자리할 공간은 사라져가는 마을의 모습이 묘사된다.


 

 

우리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


 

002 (1).jpg

 

 

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렇듯 해결책이 아예 없지는 않다. 영화는 더 이상 희망이 자리 잡을 곳 따위는 없어 보이는 마을을 배경으로 공간, 음식, 사진이라는 세 가지 매체를 통해 희망의 가능성을 말하려 시도한다.

 

그 시도는 한 공간에서 비롯된다. 올드 오크 안쪽에 존재하는 빈 방이다. 과거 국가의 폐광에 맞서 파업으로 저항하던 때, 주민들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따뜻한 음식을 나눠 먹고 결의를 다졌다. ‘우리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라는 구절을 새기며 삶에 대한 의지를 가다듬던 추억이 담긴 공간이다.

 

그때처럼 지금의 시점 역시 주민과 난민 모두가 함께할 공간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하게 된 TJ와 야라는 빈 방을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편하게 찾아와 무료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주린 배를 채우는 동시에, 소소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자리를 꾀한다.

 

물론 이 과정 역시 순탄치는 않다. 낡은 방의 전기는 끊기기 일쑤고 여전히 악의를 가진 몇몇 주민은 배관을 훼손하기에 이른다. 사람들 간의 느슨한 연대를 맺으려던 이 시도마저도 결국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마을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영화 후반부 야라의 카메라에 담긴 사진들에서 엿볼 수 있다.

 

야라의 카메라 렌즈를 올곧게 바라보며 미소를 띤 주민들의 모습에서 더 이상 적대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고 느끼는 순간, 여러 사람들이 함께할 때 생기는 힘은 비극 속에서도 연대와 화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희망이 그려진다.

 

 

 

연대와 희망의 힘


 

005.jpg

 

 

<나의 올드 오크>는 희망과 연대의 필요성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영화다. 희망은 어쩌면 헛되고 터무니없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희망을 가지지 않고 모든 걸 포기한 채 살아간다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야라의 말이 영화의 메시지를 대변하고 있다.

 

사실 혐오와 좌절을 이해와 연대로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이제 예사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가능성을 믿어보자는 간절한 부탁을 전하기 위해 2시간을 앞만 보고 곧게 나아가는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다.

 

연대를 위한 TJ와 야라의 시도가 좌절된 것처럼 현실에서 희망은 정말로 허황된 바람뿐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 야라의 집 앞에 조의를 표하려 꽃을 들고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하며 연대가 가진 힘과 희망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다시 한번 믿어보려 한다.

 

 

 

박지연_컬쳐리스트 태그.jpg

 

 

[박지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