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들의 사랑은 무엇을 이기려 드나 [음악]

글 입력 2024.01.2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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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의 싱글 ‘Love wins all’이 한차례 역풍을 겪고 지난 24일 발매됐다. 2015년 미국 동성혼 합헌화 논쟁에서 퀴어들의 정치적 슬로건이었던 ‘Love wins’를 사용한 탓이었다. 제목을 수정하며 논란은 가라앉는 듯했으나 같은 날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뮤직비디오 주인공인 아이유와 BTS 뷔는 아포칼립스 속에서 거대한 의문의 개체에 쫓긴다. 수어를 사용하는 아이유와 한쪽 눈에 컬러 렌즈를 착용한 뷔는 각각 언어・시각 장애인이라는 설정인 듯 보인다.

 

이들은 우연히 발견한 캠코더를 통해 서로를 바라본다. 캠에 담긴 그들의 모습은 실제와 달리 깔끔하고 ‘정상적’이다. 영상 속 뷔의 두 눈동자가 모두 검은색이라는 점에서 장애가 소거된 모습이 일종의 이상화된 상태로 표현됨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상정하는 정상(正常)과 이상(理想)이란 이토록 비장애 중심적이다.

 

장애를 극복하고 치료해야 할 요소로 여기는 관점을 장애학에서는 의료 모델이라고 한다. 사회적 조건이 장애를 구성한다는 사실과 장애인의 주체적인 미래성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학계에서는 비주류가 된 지 오래다. 2024년에 이르러서까지 미디어에서 이 낡은 모델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은 통탄스러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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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글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팬들의 사랑으로 대혐오의 시대를 이겨 내자’는 요지의 곡이다. 그러나 뮤직비디오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름다운 이성 커플의 모습이 전부다. 야심차게 퀴어 슬로건을 전유하길래 어떤 정치적 선언을 하려고 이러나 싶었더니 결국 또 뻔한 ‘그 사랑’이다. 유사 이래 단 한 번도 진 적 없는 시스젠더 이성애자들의 사랑이 도대체 무엇을 이기고자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겪는 역경의 요소 중 하나로 장애가 이용되는 것은 두 번째 문제다. 장애란 누군가에게는 삶이고 당연한 상태다. 이를 정체성으로 받아들여 자긍심을 높이기도 한다. 장애 혐오의 단어인 ‘Crip’은 1980년대부터 장애인 하위문화에서 전복적인 뜻으로 사용되며 대안적 개념으로 확장해 자리 잡았다.

 

또한 장애는 지난한 투쟁의 역사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던 장애인이 추락해 사망한 사건 이후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오래 이어졌다. 그럼에도 참사는 꾸준히 발생하고 변화는 더디다. 불과 지난 22일에도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는 시위 중 강제 퇴거 당하며 휠체어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입었다.

 

대중은 음악가가 대단한 인권 투사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연출자 역시 작품에 늘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라 요구받는 것은 아니다. 나로서도 그에게 기대하는 바는 ‘바람을 세로질러’ 같은 참신한 표현이나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보낸다는 적당히 달콤한 밀어에 그칠 뿐이다.

 

그러나 존재하고 투쟁하는 장애의 정체성을 지우고 낭만의 도구이자 연민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들의 사랑이 이기려 드는 것 중에 장애가 있다면(이는 뮤직비디오에서 은유의 여지도 없이 명백히 표현된다) 그건 섬세하지 못한 비장애인의 편협한 시각으로 만들어진 시혜적 태도다.

 

어차피 가난하고 빈약한 상상력이라면 그것을 끌고 구태여 멀리 갈 필요 없다. 잘 모를 땐 함부로 선언하지 않는 것도 답이다. 무작정 내던진 언어에 상처받는 사람들은 늘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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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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